조선시대로 간 뮤지컬, '팩션 사극'이 불러올 새 바람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5.10.15 11:21  수정 2025.10.15 11:21

최근 뮤지컬 무대에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현대적 상상력을 결합한 ‘팩선(Faction)’ 사극 바람이 거세다.


백암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쉐도우’(11월 2일까지)는 조선시대 영조와 사도세자 간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 ‘임오화변’을 소재로 했다. 다만 시간여행(타임슬립)이라는 설정을 과감히 도입하고, 록음악을 입혀 이야기를 지극히 현대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다. 뒤주에 갇혀 죽음을 앞둔 사도세자가 11년 전 과거로 돌아가 어린 시절의 자신과 아버지 영조를 만난다는 설정이다. 뒤주가 타임슬립의 매개체가 된다.


오는 12월에도 역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개막한다. EMK뮤지컬컴퍼니는 12월 2일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한복 입은 남자’를 선보인다. 이상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조선 시대 과학자 장영실과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시공간을 초월한 공간에서 만난다는 기발한 상상을 무대로 옮겼다. 장영실 역에 박은태·전동석·고은성이, 세종 역에 카이·신성록·이규형 등이 캐스팅됐다.


이러한 흐름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다. 시조가 국가 이념인 가상의 조선을 배경으로 한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전통적인 소재에 현대적인 힙합 문화를 결합해 큰 성공을 거뒀고, 1591년 한양에서 유행한 놀이 ‘등등곡’을 소재로 선비들의 욕망을 그린 ‘등등곡’, 병자호란 이후 환향녀들의 삶과 고전소설 ‘박씨전’을 엮어낸 ‘여기, 피화당’, 조선 최고의 여류 시인 허난설헌의 삶을 조명한 ‘난설’ 등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내며 호평받았다.


뮤지컬계가 조선시대와 팩션에 주목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먼저, K-콘텐츠의 세계적 위상 강화와 맞물려 가장 한국적인 소재인 ‘조선’을 활용하려는 시도로 분석된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조선시대는 해외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국내 관객에게는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는 매력적인 소재다.


또한, 이는 한국 뮤지컬 시장의 소재 다변화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동안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을 중심으로 서구의 역사나 문학을 차용하는 경향이 짙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한국 뮤지컬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단순한 역사 재현을 넘어선 ‘팩션’이라는 장르적 특성도 중요한 성공 요인이다. 역사적 사실은 관객의 이해를 돕는 기본적인 틀을 제공하고, 그 위에 더해진 허구적 장치는 극적 재미와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이는 역사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한 관객도 쉽게 극에 몰입하게 만들며, 이미 역사를 잘 아는 관객에게는 새로운 해석의 즐거움을 준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팩션 사극 뮤지컬의 등장은 한국 창작 뮤지컬계의 중요한 전환점을 시사한다. 이는 우리 고유의 이야기를 현대적인 감각과 상상력으로 재창조해 국내외 관객 모두에게 소구하려는 새로운 전략의 일환이다.


한 공연 제작사 관계자는 “역사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오히려 역사를 자유로운 상상의 무대로 삼는 창작자들의 과감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도들이 이어지면서 무대의 소재가 더욱 다양해지고 있는 셈”이라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를 실현하며, 팩션 사극 뮤지컬이 K-뮤지컬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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