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 이니셔티브 시험대…'美中韓 외교전' 무대 될까
'트럼프-시진핑' 회담 성사 땐 한반도 의제 급부상 전망
경주 보문단지 ⓒ연합뉴스
오는 31일부터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한반도 정세의 변곡점이 될지 주목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제안한 'END(Exchange·Normalization·Denuclearization) 이니셔티브'가 이번 회의의 핵심 의제로 부상하면서, 국제무대에서 '한반도 평화 구상'이 다시 시험대에 오른다.
이번 회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첫 대면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도 외교가의 이목이 쏠린다. 양국이 미·중 패권경쟁의 수위를 조절할지, 혹은 경주 회담을 또 다른 기싸움의 무대로 삼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메시지도 막판 변수로 거론된다.
'END'로 외교전 돌입…트럼프-시진핑, '국빈 방한' 유력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END 이니셔티브는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의 3단계를 통해 북핵 문제의 구조적 해법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현실적 비핵화 접근을 위해 미국과 중국, 북한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협의 틀을 만들겠다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APEC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2.0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는 "한반도 문제가 한·미·중 3자 협의의 부속 의제가 아니라, 아시아·태평양의 안정 구조 속에 재편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외교가 일각에서는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받지 않는 한 대화에 복귀할 가능성은 낮다는 회의론도 여전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비핵화는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잇달아 내놓은 만큼, 'END'가 공허한 선언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회담의 진짜 관심사는 트럼프-시진핑 두 정상의 만남이다. 미중 갈등이 군사·경제·기술 전 영역으로 확산된 가운데, 경주에서 두 정상이 얼굴을 마주할 경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 노선을 가늠할 첫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외교 소식통은 "두 정상의 회담이 성사된다면 한반도 의제는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오를 것"이라며 "한국 정부의 중재 역할이 재조명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 내부에서는 '한반도보다 대중 견제'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다. 워싱턴 외교가 한 인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다시 뛰어들 가능성은 낮지만, 한국이 제시한 구상을 통해 중국을 간접적으로 압박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계산이 달라질 것"이라고 전했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정부는 미·중 두 정상의 국빈 방한을 전제로 구체적인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 정상의 방한은 통상 '국빈 방문' '공식 방문' '실무 방문' 등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국빈 방문이 가장 격이 높다. 국빈 자격으로 방한할 경우 의장대 사열과 정상회담, 청와대(또는 대통령 주최) 국빈 만찬 등 최고 수준의 예우가 제공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는 29일 한국을 찾아 한미 정상회담을 가진 뒤, 다음 날인 3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미·중 정상회담을 가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시 주석 역시 30일 방한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가 안팎에서는 양국 정상이 나란히 한국을 찾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경주 APEC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가 새로운 외교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정은의 '그림자 변수'…경주가 열쇠 쥐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APEC 개막에 맞춰 '대미 메시지'를 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공식 참석국이 아닌 만큼 직접적인 참여는 어렵지만, APEC 계기에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하려 할 수 있다”고 했다. 일부 전문가는 김 위원장이 비핵화 전제 없는 대화 재개를 다시 언급하며 한미 공조를 흔들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다만 이번 APEC이 북미대화를 이끌 '신(新)외교 무대'로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15일 MBC '질문들'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이 결심한다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계기에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정 장관은 "한반도의 평화·안정에 대해 현상을 변경할 의지와 능력을 가진 유일한 미 대통령"이라며 "김정은 위원장도 트럼프 대통령 시기를 놓치면 기회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며 대화를 촉구했다.
하지만 외교 현실은 녹록지 않다. 북한과 중국은 여전히 '한미일 안보협력'을 견제하고 있고,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동시에 남북미 관계에 물꼬를 트려 노력 중이다.
결국 이번 각국 정상 회담의 성패는 트럼프와 시진핑이 '한반도 리스크'를 공동관리 대상으로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END 이니셔티브는 외교적 이벤트로 끝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결국 이번 APEC은 경주라는 공간보다, 정상들이 어떤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외교 소식통은 "한반도 평화 구상이 다시 국제무대의 조명을 받는 것은 분명한 일"이라면서도 "그 빛이 '새 지평'이 될지, 또 하나의 '의제 홍수'로 끝날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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