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경. ⓒ 데일리안 DB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안이 마침내 공개됐다.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매년 4명씩 3년에 걸쳐 26명으로 늘리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안대로 될 경우, 이재명 대통령 임기 중에 조희대 대법원장 등 10명의 임기가 끝나기 때문에 22명의 새 대법관을 이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다.
민주당은 ‘사건의 전문성과 다양성 및 심리 충실도를 제고해 재판받을 권리를 두텁게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증원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런데 저토록 좋은 명분이 가슴에 와닿지 않고, 그 의도에 의구심이 드는 것은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조 대법원장의 퇴진을 압박하고,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 취소를 결정했던 지귀연 판사에 대해 끊임없이 공격하는 것을 보면, 야당 등에서 주장하는 ‘사법장악 로드맵’, ‘이재명 대통령 무죄 만들기’라는 주장이 오히려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게다가 대법원에서 확정판결 난 사안에 대해서도 헌법재판소에 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재판소원’ 제도를 도입하려 한다거나, 심지어는 이른바 ‘대통령 재판중지법’까지 추진 중이다. 이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사건이 대법원에서 유죄취지로 파기 환송된 상황에서 말이다. 그러니 야당의 주장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대법관들이 격무에 시달리고, 대법관이 부족하다고 해서 늘려주겠다는데 무슨 문제냐”며, 마치 대법원의 애로를 해결해 주기 위한 것이라는 투다. 하지만 법원행정처는 앞서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재판연구관 인력 등 대규모 사법 자원의 대법원 집중 투입으로 인해 사실심 약화의 큰 우려가 있다”며 대법관 증원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민주당은 사법부의 신뢰도를 문제 삼고 있다. 이번 사법개혁안을 주도한 ‘사법개혁 특별위원회’ 백혜련 위원장은 여론조사 결과 국민 61.8%가 사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을 언급하며, “사법부의 존재 이유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경고”라고 했다.
박수현 수석대변인도 기자간담회를 통해 “국회에 대한 신뢰도보다 사법부의 신뢰도가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개혁할 수밖에 없다는 뜻인 듯하다.
<시사IN>이 올해에 실시한 국가기관 신뢰도 조사 결과를 보면, 10점 만점에 국회 4.19, 대법원 4.11이다. 도긴개긴인 국회가 사법부의 신뢰도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이지만, 사법부의 신뢰를 떨어뜨린 주요 장본인이 정치권임을 망각한 것 같다.
어떤 재판이건 그 판결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패소한 쪽에서는 불만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승복하는 것이 법치주의를 유지하는 근간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그래 왔고, 사법부는 가장 신뢰받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런데 근래 정치권에서는 재판 결과를 수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본인들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온갖 구실을 대며 불복하고 판사를 비난한다. ‘판사가 신이냐?’고 비아냥댄다. 탄핵하겠다고 협박까지 한다. 그러다 보니 일부 국민들도 그에 영향을 받아서 덩달아 사법부를 불신하게 되지 않겠는가.
여권에서 대법관 증원을 추진하는 모습이 전임 정부에서 의대 정원 증원을 밀어붙이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당시 정부는 의대 정원만 늘리면 모든 의료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오도했다. 2000명이란 증원 숫자도 과학적 근거에 의해 산출된 것이라고 했지만, 그 근거가 무엇인지 알려진 바 없다(이번 대법관 증원도 마찬가지다). 당시 정부의 일방적이고도 무리한 정책 추진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고, 그 후유증은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사법개혁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강화하고(특히 정치권력으로부터), 법관들이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할 최선의 환경을 만들어주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문형배 전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지적한 대로 지금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 방식은 “종합적인 진단과 처치가 필요한 환자를 동네 외과로 보내 바로 수술부터 하는 격"이다. 마땅히 대법원 등 법조계가 참여한 가운데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종합적으로,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
사회적 합의도 없이 특정 정파만의 시각과 입장에서 추진하는 개혁은 자칫 ‘개혁의 탈을 쓴 개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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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기선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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