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뀔 때마다 CEO 교체…‘외풍 경영’ 악순환 끊어야
한 시민이 서울의 한 KT 판매점 앞을 지나고 있다.ⓒ연합뉴스
김영섭 KT 대표가 국회 과방위 국정감사에서 연임 의사를 사실상 포기하면서 후임 수장 선임 절차가 이달부터 본격화될 전망이다.
KT 이사추천위원회는 11월 초부터 차기 CEO 공개 모집을 개시한다. 올 상반기 사이버 침해 사고를 겪은 SK텔레콤은 지난달 말 인사에서 이미 수장이 교체됐다. 실제 피해 사례가 확인된 KT 역시 김 대표의 연임 명분이 약해졌다. 추천위가 새 인물을 물색하고 추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해에만 두 통신사 수장이 교체되는 이례적 상황에서, 유독 KT만 정치권의 퇴진 압박에 시달렸다. 청문회부터 국정감사까지 총 네 차례 출석에서 김영섭 대표는 사태 수습 못지 않게 거취 표명을 요구받으며 난감한 상황에 내몰렸다.
KT는 민간기업이다. 지분 구조상 특정 지배주주는 없지만 공시 기준상 현대자동차그룹(현대차+현대모비스)이 8.07%로 최대주주로 등재돼 있다. 국민연금(7.7%)과 외국인 투자자(약 49%) 등 다수 기관이 지분을 나눠 보유한 전형적인 소유분산기업이다.
그럼에도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수장이 교체되는 잔혹사를 반복해왔다. 내부 출신인 구현모 전 대표 역시 연임 과정에서 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문제 삼은 윤석열 정부의 외풍 속에 연임을 포기해야 했다.
이번에도 여당이 김 대표의 사퇴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사이버 침해 사고를 빌미로 정권 입맛에 맞춘 전리품 인사를 시도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
그동안의 잦은 CEO 교체는 통신 인프라 기업으로서의 체력 약화와 AI·보안 중심의 신성장 전략 추진 차질로 이어졌다. 김 대표 선임 전 세 차례(2022년 12월·2023년 2월·7월) 신임 대표 공모를 진행한 CEO 공백 기간, KT는 정권·정치권 외풍 속에서 흔들리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김영섭 체제 하의 KT는 AI 시대에 발맞춰 ‘AI+ICT 기업’으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 기반 서비스 및 플랫폼을 강화하고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MS) 등 해외 유수의 기업과 손잡고 네트워크·데이터센터 측면에서 신성장동력을 모색하고 있다. 정체기를 맞은 IPTV(인터넷방송), 유료방송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다양한 미디어·콘텐츠 사업도 도모하고 있다.
단순 통신사를 넘어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핵심 사업이 안정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조직 체계의 일관성과 리더십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 외부 정치적 영향에 흔들리지 않는 리더십 복원이 절실하다. 민영기업에 정치권이 감놔라 배놔라 하며 입맛대로 기업 위에 군림하려는 처사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번에도 정권 코드 인사, 전리품 인사가 반복된다면 잃어버린 시간을 반복하게 된다. 새 CEO 선임 과정에서 정권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의혹이 남는다면 다음 정권에서 또 다시 CEO 교체의 빌미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
이를 방지하려면 낙하산 논란이 아닌 기술과 시장을 깊이 이해하고 혁신을 추진할 실력형 리더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며, 그에 앞서 공모 방식·후보 다양성·투명한 평가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KT 인사는 단순한 리셋으로 바라볼 수 없다. 더 이상의 CEO 잔혹사가 재현되지 않도록 내부적으로는 조직 기반을 다지고, 기업 독립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정치권의 협조가 필요하다.
'AI 3강'은 이재명 정부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할 만한 중요한 경제·산업정책 기조다. 통신 기업들은 'AI 3강' 전략의 AI DC, AICC 등 핵심축을 담당해야 한다. 이들이 본연의 저력을 발휘하는 게 정권의 입맛에 맞는 수장을 앉히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다. KT가 이재명 정부의 경제·산업정책 성공에 핵심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차기 수장 선임을 둘러싼 외부 잡음은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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