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삼킨 청춘…한지수 감독·김준호 '맨홀'이 보여준 독립영화의 힘 [D:현장]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11.06 08:41  수정 2025.11.06 08:41

문학과 영화의 결합이 스크린 위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CGV에서는 한지수 감독, 배우 김준호, 권소현, 민서가 참석한 가운데 영화 '맨홀' 언론배급시사회가 진행됐다.


'맨홀'은 응어리진 상처를 삼킨 채 일상을 살아가는 고등학생 선오가 예상치 못한 사건들을 맞닥뜨리며 딜레마에 빠져드는 심연의 스릴 드라마다. 고(故) 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한지수 감독은 '맨홀'을 스크린에 옮긴 배경에 대해 "원작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가정폭력과 청소년 범죄라는 무거운 주제지만, 서사 전반에 깔린 다층적인 아이러니에 강하게 끌렸다. 책을 덮는 순간 바로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소설이 1인칭 시점의 내레이션 중심이라 영화에서는 비언어적 표현, 편집, 음악으로 감정을 옮기는 데 집중했다. 또한 원작에서 한국인이던 형부를 이주노동자로 설정을 바꿨다. 이유는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관계 속의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소설과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김준호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상처를 안고 자란 고등학생 선오를 연기했다.


김준호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정답을 주지 않지만 이상하게 나를 위로해 주는 이야기였다"라고 출연한 이유를 밝혔다.


이어 "선오는 사람이 싫으면서도 다시 좋아하려고 시도하는 모순적인 존재다. 어정쩡하지만 끊임없이 시도하는 인물의 진정성이 매력적이었다"라고 캐릭터에 애정을 표했다.


선오의 복합적인 감정 연기가 정점으로 드러나는 장면은 죄를 묻는 법정신이다. 아버지를 원망하지만 자신의 안위를 위해 포장해야만 하는 상황을 절제된 연기로 보여줬다.


김준호는 "첫 테이크에서는 오열했지만, 감독님이 절제된 감정으로 담아내길 원하셨다. 결국 담백한 연기로 정리됐다. 감정의 층위를 감독님과 세밀하게 나눠 연기했다. 감독님이 편집을 잘해주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선오의 누나이자 아버지에게 받은 가정폭력의 상처를 용서하는 선주 역의 권소현은 "시나리오와 원작 모두 글이 주는 힘이 강렬했다. 선호를 안아줄 수도, 탓할 수도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오래 남았다"라고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를 회상했다.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선 "트라우마가 사라진 게 아니라, 건드려지면 반응하는 인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 지점을 세심하게 연기하려 했다”고 전했다.


민서는 선오의 여자친구이자 미용사를 꿈꾸는 희주로 분했다.


민서는 "차가워 보이는 제 외형이 희주와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면의 따뜻함이 닮아 있다고 느껴서 희주를 연기하고 싶었다"며 "감독님께 제가 꼭 이 역할을 하고 싶다고 여러 번 설득했다"라고 말했다.


민서는 희주에 대해 사랑과 두려움을 동시에 품은 인물이라고 해석하며 "연기 과정에서는 친구들과 웃을 때조차 내면의 불안을 감추는 이중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영화의 중요한 공간인 맨홀 설정도 많은 신경을 썼다. 한 감독은 "크지 않고 아담해야 인물들에게 일시적 안식처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며 "초 조명과 따뜻한 톤을 써서 밀폐된 공간 안에서도 감정적 온기가 느껴지게 했다"고 설명했다.


엔딩에 대해서는 "처음엔 선호가 혼자 남는 결말을 구상했지만, 결국 누군가의 손길을 받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럼에도 선호의 삶이 결코 순탄하지 않겠지만 타인의 손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길 바랐다"라고 말했다.


한 감독은 마지막으로 "삶은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행운이 불행이 되기도 하고, 불행이 성장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며 "그 모든 아이러니를 받아들이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건강한 태도라는 걸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11월 1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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