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해' 발언에도 한국 음방서 1위…역사 앞에 침묵한 아이돌들[D:가요 뷰]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5.11.09 14:43  수정 2025.11.09 16:15

"케이팝 아티스트, 역사·문화 인식에 책임감 가져야"

케이팝(K-POP)의 세계화 속에서 역사 인식 논란은 되풀이되고 있다. 일본인 멤버 중심의 글로벌 그룹들이 ‘일본해’ 발언 후 침묵으로 일관하며 화려한 성과 뒤에 풀지 못한 과제를 남겼다.


ⓒ앤팀 공식 X

‘하이브 글로벌 그룹’ 앤팀(&TEAM)이 한국 데뷔와 동시에 음악방송 3관왕을 차지했다. 7일 KBS '뮤직뱅크'에서 미니 1집 타이틀곡 ‘백 투 라이프’(Back to Life)로 1위를 거머쥐며 SBS M '더쇼', MBC M, MBC every1 ‘쇼! 챔피언’에 이어 트로피를 연달아 들어 올렸다.


하지만 데뷔의 성과 만큼이나 풀지 못한 과제도 남았다. 그룹의 맏형 케이는 데뷔 초 라이브 방송 중 팬들에 대한 마음이 깊다는 멤버의 말에 “일본해보다?”라는 질문을 했다. 해당 방송은 삭제됐지만 캡처된 장면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됐다. 지난해 3월 31일에는 일본 NTV 예능 ‘행렬이 생기는 법률사무소’에 출연해 편의점에 대한 토크 중 “한국에서 생활해보면 일본 편의점은 모든 게 있는 토털 패키지”, “상품의 레벨이 다르다”고 말하기도 했다. 케이는 이후 어떤 입장도 내지 않은 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일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첫 단독 콘서트 '인투 더 위시 : 아워 위시'(INTO THE WISH : Our WISH)의 포문을 열고 8일 일본 이시카와에서 본격적인 해외 투어를 시작하는 엔시티 위시(NCT WISH)도 유사한 논란이 반복됐다. 일본인 멤버 료는 9월 4일 일본 라디오 ‘챗 위드 위시’(CHAT WITH WISH)에서 멤버 리쿠가 고향인 후쿠이 현의 게가 맛있다는 말에 “일본해의 게”라고 언급했다. 이후 료는 유료 소통 플랫폼 ‘버블’에 “많이 부족한 저를 사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더 노력하는 료가 되겠습니다”는 글만 남긴 채 직접적인 사과는 하지 않았다.


팬들 사이에서는 “의도 없는 실수”라는 옹호와 “한국에서 활동하는 아이돌로서 최소한의 역사 인식은 필요하다”는 지적이 엇갈린다. 두 그룹 모두 일본인 멤버 비중이 높은 그룹이라는 점에서 산업 전반의 교육 부재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일본해’라는 명칭은 1929년 국제수로기구(IHO)가 발간한 해도집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에서 일본의 주장만 반영된 채 표준화된 데서 비롯됐다. 당시 한국은 식민 지배를 받고 있어 의견을 제시할 수 없었다. 이후 1937년 제2판, 1953년 제3판에서도 ‘일본해(Sea of Japan)’ 단독 표기가 유지됐다. 한국은 1992년 유엔 지명표준화회의에서 처음으로 ‘동해(East Sea)’ 병기를 공식 요구했다. 2020년 제2차 IHO 총회에서는 ‘S-23’을 대체하는 디지털 표준 'S-130' 체제로 전환하기로 결정, 특정 국가명을 배제한 고유 식별번호 체계로 바뀌었다. 이는 ‘일본해’ 단독 표기가 더 이상 국제 기준으로 인정되지 않음을 뜻한다. 현재 한국 정부는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는 방안을 국제 원칙에 맞는 합리적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 등 일부 지역은 교과서에 ‘동해(East Sea)’ 병기 법안을 통과시켰고 세계 주요 지도 제작사와 언론사에서도 두 명칭을 함께 표기하는 추세가 확대되고 있다.


하이브, SM, JYP 등 대형 기획사들은 일본·미국 등 현지 멤버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그룹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세계 시장을 겨냥한 전략이지만 국가 간 역사 인식의 차이를 고려하지 못한 채 언행 논란이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역사 논란은 최근의 문제가 아니다. 2012년 그룹 카라는 미니 5집 발매 기념 쇼케이스에서 예민한 한일 관계 문제로 음악 관련 질문만 받겠다고 공지했으나 현장에서 “독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MC가 이를 막으며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당시 카라는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수익의 상당 부분을 일본 시장에서 얻고 있었기 때문에, 소속사 차원에서 민감한 이슈를 피하려는 분위기가 강했다. 질문 자체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상황을 정리한 것도 한국인이 역사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어려운 구조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해석된다.


2023년에는 YG 보이그룹 트레저가 일본 팬미팅에서 일본 투어 일정을 공개하는 화면에 독도를 표기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지도에는 제주도와 울릉도, 일본 대마도까지 포함돼 있었지만 독도만 빠져 있었다.


한편 대한민국 외교부는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라며 “영유권 분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외교 교섭이나 사법적 해결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는 “독도에 대한 어떠한 도발에도 단호히 대응하고, 앞으로도 확고한 영토 주권을 수호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문화와 외교 갈등을 분리하면서도 최소한의 역사 교육은 병행돼야 한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일본과의 외교·군사적 갈등을 문화 영역까지 끌어오면 한류 시장이 위축될 위험이 있다”며 “문화 교류와 외교 대립은 가능한 한 분리해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연예인들이 특정 국가를 대표해 역사 문제에 나서는 것은 과도한 요구일 수 있지만 소속사 차원에서 각국의 민감한 사안에 대해 발언을 조심하도록 교육하는 과정은 필요하다”며 “특히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케이팝 아티스트라면 기본적인 역사·문화 인식과 발언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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