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감독의 감각과 캐스팅 디렉터의 안목이 배우의 가능성을 결정했지만, 이제는 배우의 SNS 팔로워 수, 화제성, 글로벌 팬덤 반응이 새로운 지표가 됐다. 시장과 투자자를 설득하는 데 이 요소들은 강력한 무기로 작용한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AIMC·미스틱액터스· FN엔터테인먼트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셀럽 출신’ 배우의 약진이다. 유튜브, SNS, OTT 예능 등에서 이미 대중성을 확보한 인플루언서들이 연기 무대에 진입하고 있다. 이는 시장이 ‘검증된 인지도’를 안전한 선택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예능인 덱스, 유튜버 양유진 뿐 아니라, '하트시그널2' 오영주, 임현주, 유튜버 출신 김아영도 그 흐름을 대표한다. 김아영은 2018년 웹드라마 ‘짧은 대본’으로 데뷔했고, 개인 유튜브 채널 ‘아영세상’을 통해 촬영 현장과 일상을 공개하며 팬덤을 쌓았다. 이후 예능 ‘SNL 코리아’에서 끼를 발산하며 얼굴을 알렸고, 이를 계기로 드라마와 영화에 잇달아 출연했다.
배우 지망생들 역시 개인 채널을 통해 오디션 영상, 연기 브이로그, 일상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며 스스로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고 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여기에 전통적인 엘리트 코스는 여전히 견고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중앙대, 한양대 등 주요 연극영화과 출신 배우들은 체계적인 훈련과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독립영화나 단편 필모그래피를 쌓는다.
특히 한예종은 대한민국 유일의 국립예술대학으로, 연극·영화·무용·음악 등 다양한 예술 분야를 아우르며 ‘예술가 양성소’로 기능해 왔다. 연기과는 수많은 실력파 배우를 배출하며 한국 대중문화의 인력 풀 중심에 서 있다. 업계에서는 ‘믿고 보는 한예종’이라는 표현이 통용될 만큼 “신인이 한예종 출신이라면 한 번 더 이력서를 살핀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최근 이를 가장 잘 입증한 한예종 출신들이 있다. 김고은, 박소담, 안은진, 이유영, 이상이, 김성철 등은 연극 무대와 단편·독립영화에서 단련된 연기를 기반으로 영화와 드라마 주연으로 성장했다. 한예종 출신을 비롯해 유명 연극영화과 출신들은 연출·촬영 전공생과 협업하며 자연스럽게 필모그래피를 쌓고, 영화제에 출품 등을 통해 접점 가능성을 높인다. 이러한 시스템은 여전히 ‘연기력 중심 신인’을 배출하는 가장 안정적인 루트로 작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상업영화나 미니시리즈보다 숏폼 시장으로 향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10분 내외의 짧은 러닝타임과 실험적인 포맷 덕분에 숏폼은 신인 배우에게 드물게 주어지는 실전 무대가 된다.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 ‘설강화’의 김도형 감독, ‘하이에나’의 창우 감독 등 상업영화 연출자들이 잇따라 진입하며 제작 신뢰도 역시 높아졌다.
한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숏폼을 통해 단기간에 화제성을 확보하고, 해외 반응을 이끌어 상업영화 오디션으로 연결하는 전략이 늘고 있다”며 “지금의 숏폼은 신인에게 남은 마지막 진입 루트이자, 글로벌 팬층을 형성할 수 있는 실험 무대”라고 말했다.
이렇게 보면 선택지가 다양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좁아진 현실의 경쟁 안에서 오히려 더 치열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 구조 속에서 얼마나 많은 새로운 얼굴들이 기회를 얻을 수 있느냐다. 산업이 다시 활력을 찾기 위해서는, 신인을 리스크가 아닌 잠재력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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