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5분' 엄하늘 감독 "혐오의 시대 속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 [D:인터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11.10 07:45  수정 2025.11.11 20:17

5일 개봉

단편 '피터팬의 꿈', '찾을 수 없습니다', '부끄럽지만'을 통해 섬세한 감정선을 보여온 엄하늘 감독이 첫 장편 '너와 나의 5분'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장편 시나리오를 처음 완성한 건 2014년이지만, 여러 작업을 거쳐 실제로 촬영과 개봉까지 이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첫 시나리오로 완성된 첫 장편을 관객에게 선보이게 된 그는, 그 순간이 행운처럼 느껴진다.


'너와 나의 5분'은 모든 것이 낯설고 무엇이든 새롭던 2001년, 좋아하는 음악과 비밀을 공유하던 두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한국 독립영화 최초로 제이팝을 주요 모티프로 삼은 작품으로, 2000년대 초반의 공기와 음악, 그리고 청춘의 감정을 섬세하게 엮어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지난해 제2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한국경쟁 장편 부문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


엄하늘 감독은 이번 작품의 출발점을 음악에서 찾았다.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2001년 자신이 처음으로 일본 노래와 애니메이션에 빠져들던 시기를 작품의 배경으로 삼았다. 낯설고 새로움이 가득했던 그 시절의 공기 속에서, 서로의 비밀과 감정을 나누는 두 소년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태어났다.


"음악은 처음부터 중심이었어요. 글로브(globe)의 노래를 선택한 이유는, 제가 2001년 당시 글로브 세대는 아니지만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쓰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노래가 ‘디파처스'(Departures)였어요. 가사가 ‘불확실한 미래라도 너와 함께라면 괜찮다’는 내용인데, 그게 경환이의 감정과 완전히 맞아떨어졌어요. 재민이의 노래로는 ‘페이시스 플레이시스'(Faces Places)를 골랐어요. 이 노래 테마도 재민이의 정서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영화 속에서 노래가 나올 때마다 가사를 자막으로 넣었어요. 관객이 감정선을 따라가길 바랐고, 그 시절 VHS나 자막 영화의 감성을 살리고 싶었거든요."


대구를 배경으로 한 선택 역시 감독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20년 가까이 경북 대구에서 살아온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익숙한 언어와 공간 속에서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서울의 청소년을 표준어로 그리는 대신, 자신이 살아온 지역의 공기와 말투를 담아내는 것이 훨씬 진솔하다고 느꼈다.


"성소수자, 일본 문화 같은, 겉으로는 개방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시대 이야기를 다루고 있잖아요. 여기에 대구라는 지역 자체가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 중 하나인데 그 공간 안에서 개방적이지만 또 폐쇄적인 이야기를 다루게 된 게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의도했다기보다, 그 배경을 택하고 나니까 서브텍스트가 풍부해졌어요."


경환 역은 현서, 재민 역은 현우석이 맡았다. 엄 감독은 두 인물의 감정선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캐스팅 단계부터 세심하게 고민했다. 두 배우에게서 자신이 그리던 경환과 재민의 얼굴을 발견한 그는 현장에서의 연기를 지켜보며 더욱 확신을 갖게 됐다.


"심현서 씨는 제가 원래 알고 있던 배우예요. 예전부터 눈에 띄던 이미지가 있었어요. 근데 그 당시 키가 180cm라 너무 커서, 재민 역을 하기엔 어렵겠다 싶었죠. 그래서 다른 배우를 찾다가, 현우석 씨가 먼저 캐스팅이 됐어요. 이전 출연작에서는 거친 캐릭터가 많았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너무 서글서글하고 착하더라고요. 그 모습이 오히려 제가 찾던 재민의 따뜻한 면이었어요. 키가 큰 현우석 씨가 캐스팅 되고 나니 현서 씨가 경환 역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현서 씨를 만났는데 정말 제가 찾던 경환이 모습 그대로였죠. 오디션이 끝나고 바로 연락을 드리면 너무 급해 보일까 봐 이틀쯤 고민했는데, 그 사이 현서 씨는 '떨어졌구나' 싶어서 우울해 했대요. 그걸 나중에 듣고 좀 미안하더라고요."


두 배우의 호흡은 감독의 세세한 디렉션보다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관계에서 나왔다. 엄하늘 감독은 연기 톤을 인위적으로 맞추기보다는 두 사람이 실제로 쌓아가는 친밀감이 화면에 스며들길 바랐다.


"연기 톤이나 디렉션은 많이 주지 않았어요. 둘이 실제로도 많이 친해져서 현장에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줬거든요. 두 배우가 나이 차이가 조금 있어서 화면에서는 그게 좀 덜 보였으면 싶었는데 우석 씨가 촬영 전에 10kg 정도 증량해 왔어요. 그래서 얼굴선이 더 부드러워졌고, 친구 같은 감정이 잘 보였죠. 정말 고마웠어요. 현서 씨는 질문이 정말 많았어요. 그래서 제가 장면의 의도를 자세히 설명해줬고, 그걸 이해하면 바로 연기에 반영하더라고요. 반면 우석 씨는 제가 예상하지 못한 표현을 자주 보여줬어요. 재민이의 감정이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왔어요. 표정 하나, 시선 하나로 감정을 표현해내는 게 너무 좋았어요."


이동휘는 경환과 재민의 담임 선생님으로, 공민정은 경환의 엄마로 출연한다. 두 배우 인상적인 연기로 극의 정서 한 축을 지탱한다.


"이동휘 씨는 제가 예전에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에서 고등학생 단역으로 잠깐 출연했을 때 뵀어요. 그때 제 대사가 한 줄이었는데, 그걸 기억해주시고 시나리오도 보여 달라고 하셨어요. 시나리오를 보내드리니까 바로 '이거 하고 싶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선뜻 출연료도 상관없다고 하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공민정 씨는 예전부터 알고 지내다가 시나리오 드렸는데 사투리 연기에 관심도 많고 평범한 어머니가 아니다보니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셨어요."


엄하늘 감독이 이번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시대를 넘어 여전히 유효하다. 처음 시나리오를 썼던 2014년과 달리, 지금은 혐오의 언어가 더욱 교묘하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퍼져 있는 현실을 마주하고 싶었다.


처음에 시나리오 썼을 때 경횐이가 일진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장면에서 왜 자꾸 괴롭히냐고 하니 '토할 것 같다'라는 대사 정도만 있었는데 이번에 시나리오가 수정하면서 "여기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잖아. 내가 누구를 좋아하든 말할 자유가 있다"라는 대사를 새로 넣었어요. 요즘 성소수자 관련 기사나 콘텐츠를 보면 혐오 표현이 너무 많아요. '역겨워서', '이해가 안 가서' 같은 말을 쓰던 시대보다 더 문제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고 오히려 그게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개인적으로 지금이 더 무서운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이런 이야기를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엔딩은 재민의 이후를 보여주지 않은 채 열린 결말로 마무리된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타이밍은 어긋난 상황에서 '페이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라는 관객의 해석에 맡긴다.


"일부러 재민의 이후를 보여주지 않았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둘 다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열린 결말로 두었어요. 가끔 혼자 상상하곤 해요.(웃음) 이 이야기를 웹소설처럼 재민이의 시점을 이어써보면 어떨까 싶어요."


앞으로의 목표는 장르의 확장이다. 독립영화 시장의 여건상 먼저 단편으로 변주를 이어왔지만, 이번 장편을 완성한 뒤에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시도하고 있다. 하정우가 연출한 '로비'에서 호식 역으로 배우로서도 가능성을 보여준 그는,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층 깊어진 연기를 선보이고 싶다.


"이 시나리오가 나왔지만 독립영화 시장이 찍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 만든게 단편 '찾을 수 없습니다'와 '피터팬의 꿈'이었어요. 그래도 찍어야겠다 싶어서 '너와 나의 5분'을 완성했고요. 이걸 찍고 나니 든 생각이 연출자로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지금 B급 코미디 쓰고 있고 호러도 한 번 써볼까 하고 있어요. 배우로서는 사실 제가 연기 트레이닝을 받은 배우가 아닌데 캐스팅 되는것 자체가 신기해요. '로비'를 하면서 느낀 게 많았어요. 현장에서 다른 배우들이 정말 철저하게 준비해 연기하는 걸 보며 이 기회를 헛되이 하면 안되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다음에 또 배우로 인사드릴 기회가 생긴다면, 더 발전한 모습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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