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타워 사고 원인 규명 수사 착수
현장 안전관리 책임 놓고 공방
법률상 도급인 규정 모호
지난 12일 울산 남구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5호기 붕괴 사고 현장에서 매몰자와 실종자 구조를 위해 4·6호기를 발파한 뒤 소방당국과 관계자들이 매몰자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당국이 7명의 사망자를 낸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타워 붕괴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현장 안전관리 책임 소재를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현행법이 갖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처벌을 목적으로 하기보다 예방을 중심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부는 지난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노동자 김용균 씨가 사고로 숨지자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면 개정했다.
이른바 ‘김용균법’으로 불린 산안법 개정은 위험 업무가 광범위하게 하청업체에 전가되는 구조를 개선하고, 원청의 안전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중대재해 발생 시 도급인, 즉 사업을 발주한 주체도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게 했다.
이번 울산화력발전소 사고는 보일러타워 해체 작업을 발주한 ‘한국동서발전’과, 시공사로서 공사를 맡은 ‘HJ중공업’ 누구에게 도급인의 책임을 묻느냐가 관건이다. 도급인으로 인정된 기관은 현행법상 무거운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모호한 도급인 판단기준…시공 관여도 관건
일반적으로 ‘도급인’은 공사를 발주하는 주체를 말한다. 따라서 울산화력발전소 해체 작업에서 일차적인 도급인은 공사를 의뢰한 동서발전이다. 반면 공사를 맡은 HJ 중공업은 수급인이 된다.
문제는 일반적인 개념의 도급인이 아닌, 법적으로 책임을 묻는 도급인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산안법 제2조 7호에 따르면, “‘도급인’이란 물건의 제조·건설·수리 또는 서비스의 제공, 그 밖의 업무를 도급하는 사업주를 말한다. 다만, 건설공사발주자는 제외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말하는 건설공사발주자는 건설공사를 발주(도급)했으나, 공사(시공)는 주도해서 총괄·관리하지 않는 자를 뜻한다. 쉽게 말해 공사를 다른 업체에 맡기고 자신들은 주도적으로 관여하지 않는 경우 도급인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의미다.
현행법에는 시공을 주도·총괄·관리하는 부분에 관한 구체적 기준이 없다. 따라서 발주업체가 어느정도 공사에 관여했을 때 시공을 주도적으로 총괄 관리했느냐를 판단하기 어렵다.
이번 경우 동서발전이 공사(보일러타워 해체 작업)에 얼마나 직접 관여했느냐가 도급인 지위를 판단할 기준이 된다. 동서발전이 책임이 없다면 HJ중공업이 도급인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HJ중공업은 자신들이 맡은 공사를 발파업체 ‘코리아카코’에 다시 도급(하도급)을 줬기 때문이다.
현재 동서발전과 HJ중공업 측은 상반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동서발전 관계자는 “시공사인 HJ중공업에서 모든 안전관리 감독을 하게 돼 있다”며 “해체 작업을 총괄했던 곳도 HJ중공업이다”고 말했다.
반면, HJ관계자는 “해체 작업 과정에서 발주처인 동서발전이 감리를 선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감리 선임 등에서 동서발전이 관여한 만큼 도급인 책임이 있다는 의미다.
참고로 붕괴된 보일러타워는 건축물관리법상 공작물이라 법적으로 감리 유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안전관리 책임 주체 불명확…피해는 노동자한테”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시공을 주도하면 도급인이고 그렇지 않으면 발주자가 되는데, 산안법이 그 기준을 모호하게 정의하면서 자의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생겼다”며 “이는 ‘도급인’과 ‘발주자’ 용어 정의를 잘 못 내린 입법 참사”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안전관리 책임의 주체가 모호하게 되면서 그 피해는 하청 노동자에게 돌아가고 있다”며 “실제 산안법 개정 이후에도 하청 노동자 사망재해 감소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도급인과 발주자의 판단 기준이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는지 여부가 되면서, 정부도 관련 지침을 마련했다.
고용노동부가 지침으로 제시한 ‘도급 시 산업재해 예방 운영지침’에 따르면, ▲사업의 유지 또는 운영에 필수적인 업무 ▲상시적으로 발생하거나 이를 관리하는 부서 등 조직을 갖췄는지 ▲예측가능한 업무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발주를 주는 일정규모 이상 기업이라면 대부분 공사가 사업의 유지·운영에 필수적이고 예측가능한 업무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또 안전 및 시설관리를 위한 전담조직을 운영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에 많은 기업들이 ‘노동부 지침’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으며, 도급인 책임을 피하기 위해 안전관리조직을 두지 않으려는 역효과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책임자 찾기에 혈안된 현행법…“예방이 우선돼야”
무엇보다 책임자 처벌에만 급급한 현행 산안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의 구조적 문제가 지적된다.
정 교수는 “안전관리의 첫째 목적은 책임자 처벌이 아닌 ‘사고예방’이어야 한다”며 “사고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서 개선하지 않는 한 ‘산재 공화국’ 오명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영국·독일·일본 등 안전선진국은 도급을 줬다는 이유만으로 수급인이 해야 할 의무를 도급인이 지도록 하지 않는다.
안전선진국은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 대상을 건설업 일부작업, 밀폐공간 등과 같이 산재발생위험장소로 한정하고 있으며, 원청에게 하청과 다른 별도의 의무와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7월 발표한 ‘도급 시 안전관리 정책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보고서는 “도급인과 수급인 역할에 적합한 안전보건 의무와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며 “과도한 의무부과에 따른 안전관리 혼란 등의 부작용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게시됐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장에 있지도 않은 원청 등 도급인에 대한 과도한 처벌은 헌법상 ‘자기책임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모호한 법 조항으로 인해 사회적 비용이 빠져나가는 것은 국가경제에도 좋지 않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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