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이 만든 기회의 양극화…연합 체제의 명과 암 [위기의 K콘텐츠, 연합 빅딜 시대②]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12.24 07:30  수정 2025.12.24 07:30

한국 콘텐츠 산업에서 연합 체제가 빠르게 확산하는 흐름은 단순한 협업 증가가 아니라, 제작비 상승과 투자 공백이라는 구조적 압박이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일례로 국내 드라마의 편당 평균 제작비는 2020년 약 5억 원 수준에서 최근에는 최소 10억 원 이상으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흥행작의 경우 상승 폭은 더욱 가파르다. tvN ‘눈물의 여왕’은 편당 약 35억 원, 총제작비 560억 원에 달했고,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즌2는 1000억 원 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개별 제작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 구조가 고착되면서,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한 연합 전략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제작비 부담이 급격히 커진 환경에서 여러 기업이 투자와 제작, 유통망을 묶는 선택은 불가피한 생존 전략으로 읽힌다. 자금 조달의 안정성은 작품의 완성도를 떠받치는 기반일 뿐 아니라, 콘텐츠 시장 자체가 유지되기 위한 최소 조건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생존 논리가 강화될수록 또 다른 균열도 함께 드러난다. 자본과 플랫폼을 확보한 대형 프로젝트로 자원이 집중되며, 창작 생태계 전반에서는 양극화가 심화하고 다양성이 위축되는 흐름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연합 구조가 고착될 경우 시장 의사결정은 자연스럽게 협력에 참여한 대형 스튜디오 중심으로 이동하게 된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프로젝트일수록 손실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전한 IP 기반의 기획이 선호되고, 이는 실험적 시도나 중·저예산 프로젝트가 설 자리를 잃는 결과로 이어진다.


한 독립 제작자는 “최근 투자사 포트폴리오가 대형 IP·장르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 체제에서는 그 경향이 더 뚜렷해질 수 있다”며 “새로운 형식과 언어를 탐색하는 영화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배제되기 쉬운 환경”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은 실제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5년 9월 기자회견에서 제작비 30억 원 이하 영화의 연간 제작 편수가 과거 약 100편에서 최근 약 20편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제작 건수가 50% 이상 축소됐다는 사실은, 중·저예산 영화가 투자 매칭 단계에서 이미 진입 장벽에 막히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신호기도 하다.


유통 단계에서도 불균형은 확장된다. 공동 배급·유통망 통합은 스크린 확보 안정성과 해외 개봉 창구 확대라는 장점을 제공하지만, 반대로 독립·중소 제작사에는 접근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극장 수 축소와 운영비 증가로 상영 전략이 대형 배급사 중심으로 짜이는 현 국면에서는, 연합 체제가 스크린 점유율을 더욱 집중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또한 연합 네트워크의 바깥으로 밀려나는 제작사도 존재한다. 기술·자본·인력 인프라가 충분한 회사들은 파트너십을 통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쉽게 추진할 수 있지만, 중소 제작사는 연합 구조의 외곽에서 투자 확보가 더 어려워졌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한 영화 관계자는 “연합 체제는 시장 안정성과 리스크 분산이라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동시에 산업 전반의 편향과 양극화라는 구조적 과제를 함께 드러내는 변화”라며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위해서는 연합을 장려하는 정책과 더불어, 중소 제작자·신인 감독·독립 프로젝트가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합의점도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 체제가 산업 전반의 기본 구조로 자리 잡기 시작한 지금, 한국 콘텐츠 산업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규모 확대’에 머물지 않는 새로운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연합 구조가 만들어낼 수 있는 힘과 그 안에 잠재된 위험을 정확히 진단하고, 향후 균형을 잡을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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