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12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12·3 윤석열 비상계엄 등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제보자 보호 등에 관한 특별법에 대한 무제한 토론을 이어가는 가운데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눈을 감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5년 베이징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당시 이 말은 큰 반향을 일으키며, 정치권과 정부에 자성과 혁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 후 무려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정치는 몇 류쯤 될까. 주관적인 평가여서 각자 다르겠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4류도 과하다. 당시의 정치는 나름 정치다웠다. 적어도 국민을 두려워했고, 국민의 눈치를 보는 정치를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반 국민쯤이야 안중에도 없는 듯, ‘강성지지층 중심의 팬덤정치’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정당은 국익이 아니라 정파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처럼 돼버렸다.
여당과 야당은 국정의 파트너다. 국민의 다양한 의견과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최대공약수를 찾아 국정에 반영하는 것이 정치다. 그런데 지금 정치를 주도하는 양대 정당은 서로 배척하며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내란 정당으로 몰아 해산시켜버릴 기세고, 국민의힘은 현 정권을 독재정권으로 규정하며 끝장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양 당의 지지자들도 서로 상대 정당 지지자를 적대시한다. 주변에서 친구 간에, 심지어는 가족 간에도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의절했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이런 사태는 여론조사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4일과 5일에 실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86%가 ‘우리 정치가 양극화돼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충격적인 것은 무려 70%가 ‘매우 그렇다’고 응답했다는 사실이다. 보수층(84%), 진보층(91%), 중도층(89%) 등 정치적 성향에 상관없이 정치 양극화에 동의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심리적 내전’ 상태인 셈이다.
나라가 이 지경까지 된 데는 이전 정부에도 책임이 있지만, 국회 권한을 남용해 온 민주당에 더 큰 책임이 있다. 민주당은 야당이었던 21대 국회 후반기와 22대 국회 1년간 절대 다수의석을 이용해 윤석열 정부를 무력화시키는 데 당력을 집중했다. 눈에 거슬리는 공직자들을 무리하게 탄핵소추 발의하고, 독단적으로 입법하고, 심지어는 대통령실 특수활동비를 일방적으로 전액 삭감하는 폭거까지 서슴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도 계엄 선포문에서 민주당의 그런 권한 남용이 계엄의 한 원인임을 밝히고 있다. 물론 그것이 계엄을 정당화할 명분은 결코 아니지만, 그 책임의 일단은 분명 민주당에게도 있다 할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집권 여당이 됐으면 제대로 된 정치를 하려는 시늉이라도 내야 할 텐데, 야당일 때보다 오히려 한술 더 뜨고 있다. 사법개혁이란 미명 하에 법원의 독립성을 훼손하려 들고(필자의 10.29자 칼럼 참조), 내란청산이란 명분으로 야당을 옥죄고, 강성 정치인들 중심으로 지지층의 입맛에 맞는 입법 독주를 가속화하고 있다. 위헌성 논란쯤이야 개의치 않겠다는 투다. 좋은 정치로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는 게 아니라 경쟁자를 무력하게 만들어 권력을 유지하려는 심산인 듯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시절 윤 정부를 향해 “그까짓 5년 정권 뭐 대수라고 이렇게 겁이 없느냐”며 신랄하게 비난한 바 있다.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여야 정권교체는 이제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 그리고 정권이 교체되면, 칼자루가 칼날이 되기에 십상이다. 지금 잡은 칼자루를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더 매섭고 예리한 칼날이 되어 돌아올 것은 불문가지다. 언제까지 이런 극한적 대립의 정치를 거듭할 것인가.
지금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정치다운 정치를 복원할 적임자이자 책임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9.12. ‘강원의 마음을 듣다’ 발언)인 이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의 회담에서는 “진영 정치를 하지 않겠다”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 약속이 지켜지고 있다고 믿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야당 대표 시절의 입장으로 돌아가 좀 더 적극적으로 야당과 반대진영의 목소리도 포용하는 통 큰 정치를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정치를 모르는 백면서생(白面書生, 오로지 글만 읽고 세상 일에 경험이 없는 사람)의 순진한 기대인가.
2025년 세밑에서 돌아보는 대한민국의 정치, 참으로 암울하기 그지없다. 마치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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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기선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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