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집권당의 노골적인 사법부 핍박
혁명법정 느낌 주는 내란전담재판부
파국으로 치닫는 국회 호 폭주기관차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12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12·3 윤석열 비상계엄 등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제보자 보호 등에 관한 특별법에 대한 반대토론으로 역대 최장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위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 기록을 세운 뒤 동료 의원들의 격려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국회의 해제요구안이 의결된 직후부터 ‘내란’으로 규정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로서 더불어민주당을 이끌던 시점이었다. 압도적 의석을 가진 거대정당은 그때까지 윤 당시 대통령의 국정 지휘권을 박탈하기 위한 압박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었다. 퇴진·탄핵을 요구하는 군중시위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던지, 입법권으로 정부의 국정운영에 제동을 걸었다. 거기에 더해 고위 공직자 탄핵소추안, 특검법 발의 등을 기총소사 식으로 퍼부어댔다.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 해소와 정권교체를 겨냥한 위력과시였다.
중과부적(衆寡不敵), 윤 전 대통령은 돌파구를 찾지 못하자 헌법 제77조 1항의 규정에 따른 비상계엄령 선포로 맞섰다. 고도의 통치권적 판단은 대통령의 몫이다. 그게 적법했느냐의 여부는 훗날 사법부나 헌법재판소에 의해 가려지게 된다. 그 이전에는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라는 정치적·법적 성격을 갖는다. 그런데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은 선포 즉시 자기를 묶는 포승이 되고 말았다.
거대 집권당의 노골적인 사법부 핍박
헌법재판소는 민주당의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다각적인 위협과 압박을 ‘헌법 및 법률에 따라 국회에 부여된, 대정부 견제권 행사’로 인정했다. 반면에 대통령의 계엄선포에 대해서는 아주 인색한 입장을 보였다. 국회의원과 국회, 그리고 정당의 권한 남용과 자유의 한계 일탈을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는 만큼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평상시의 권력 행사 방법으로 대처했어야 한다’고 판시한 것이다.
어쨌든 민주당은 집요한 윤 전 대통령 밀어내기에 성공했다. 사법적 리스크 완화 또는 해소에 급급하던 민주당의 이 대표는 대통령이 되어 12개 혐의, 8개 사건, 5개 재판을 모두 무기한 연기 시키는데 성공했다(법원들이 자발적으로 재판기일 추후지정을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의미로는 그렇다). 민주당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아예 ‘이재명 영구 면소’를 위한 법률의 제·개정을 시도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하자면 선결돼야 할 조건들이 있다. ① 윤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 세력들이 “국가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 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문란(國憲紊亂)을 목적으로 하여 폭동하는 죄(형법 제87조)”를 저질렀다는 것이 사법부의 판단에 의해 신속히 확인돼야 한다. ② 이에 따라 민심이 윤 전 대통령을 내란 우두머리로, 그 측근 세력을 내란 공범으로 인식하게 돼야 한다. 그럴 때 민주당의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그간의 정치적 압박은 국가적 위험요소를 사전에 제거하기 위한 노력으로 정당화할 수가 있다. 그리고 마침내 탄핵에 성공함으로써 이 대통령을 구국의 영웅으로 미화할 여지도 생긴다. 그 부수적 효과로 이 대통령이 윤석열 정권의 정치보복 정치탄압의 희생양이었다는 해명도 가능해진다.
그런데 아무래도 미덥지 못한 쪽이 사법부다. 1심, 2심을 담당할 법원과 판사들도 부담스럽겠지만 더 큰 벽은 대법원이라고 여길법하다. 대법원이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둔 시점(5월 1일)에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취지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당시 전원합의체 참여 대법관 12명 중 10명이 파기환송에 찬성했고 2명이 반대했다. 민주당은 대법원에 대해 국회 법사위의 청문회 형식 긴급 현안 질의와 공식 청문회를 열어 유죄취지 파기환송의 부당성을 주장했지만,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해당 대법관들과 일선 판사들은 출석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지속적으로 조 대법원장 위협·망신주기를 계속했고, 대법관 대폭 증원, 재판소원제(사실상의 재판4심제) 도입 등 사법부를 입법·행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을 시도해 왔다.
혁명법정 느낌 주는 내란전담재판부
이런 수단만으로도 ‘이재명 영구 면소’를 확신할 수 없었던 듯 민주당은 마침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12·3 윤석열 비상계엄 등에 대한 전담 재판부 설치 및 제보자 보호 등에 관한 특별법안)을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국민의 힘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나서서 장동혁 당 대표가 24시간 발언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지금과 같은 국회 의석구도 하에서는 ‘무력한 저항’일 수밖에 없다. 24시간이 경과하면 국회 재적의원 5분의 3이상 찬성으로 중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이 대통령에게 ‘재의 요구권 행사’를 요청하겠다고 했지만 그게 수용되리라고 기대할 여지는 전혀 없다. 이 대통령의 의지와 궤를 같이하는 법, 혹은 그의 뜻이 반영된 법일 텐데 왜 재의 요구를 하겠는가.
이 법은 내란죄·외환 및 반란 범죄 등 중대한 국가범죄를 심리할 ‘전담재판부’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중대 사건은 별도 전담 재판부가 신속하고 전문적으로 다루게 한다는 취지다. 서울중앙지방법원(1심)과 서울고등법원(2심)에 설치한다. 다만 시행 당시 이미 진행 중인 사건(윤 전 대통령 관련)은 기존 재판부가 계속 담당하도록 부칙에 규정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재판부가 ‘내란전담재판부’로서의 역할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내란 재판부 판사 보임은 법원장이 하지만 그 이전에 사무분담위원회가 사무 분담을 보고하고 판사회의가 의결한다. 그 기준안에서 법원장이 보임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결정권을 회의 및 위원회에 넘기는 의도는 뻔하다. 재판이 ‘내란’이라고 이미 정치적 사회적으로 규정된 범죄에 대해서는 기소의 취지에 맞게(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하는 게 아닌) 재판토록 하자는 것 아닌가?
특정 범죄 유형(그러니까 내란·외환·반란죄)만을 떼어 내서 전담재판부를 설치한다는 것은 특별재판소를 둔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말하자면 혁명재판소를 설치해 반혁명 범죄를 처단하겠다는 의지로 인식될 개연성이 충분하다.
파국으로 치닫는 국회 호 폭주기관차
이런 의도의 입법이 정당화된다면 전담재판부가 필요한 범죄는 늘어나게 마련이다. 죄명은 짓기에 달렸다. ‘헌정질서 부인 범죄’. ‘민주주의 파괴 범죄’, ‘가짜뉴스·허위정보 전파 범죄’, ‘폭력적 시위 범죄’도 국가 존립과 헌정질서를 위협하는 대단히 중대한 범죄로 분류될 수 있다.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는 뜻이다.
전담재판부든 특별재판부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증진시키자고 만드는 것일 리는 없다. 이런 재판부가 생기면 국민을 옥죄는 정권 측의 힘은 강해지기 마련이다. 재판의 전문성과 신속성을 높인다는 취지가 강조되면 될수록 권력에 의한 ‘죄목 단정’이 재판 과정을 좌우하고 특별법정의 수요를 늘릴 것임은 상식적 추론이다.
제왕적 대통령에게 거대 집권당이 장악되고, 그 여당의 입법권 행사를 통해 정권이 사법부를 통제하게 되면 자유민주정치는 파산의 길로 치닫게 된다. 입법·사법·행정권이 마리오네트처럼 한 손에 장악된 체제가 자유민주정치를 지향한다는 말은 계모가 백설공주를 독사과로 유혹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렇게 예쁜 사과 처음 보지? 한 입만 먹어도 몸에 아주 좋단다.”
국가 3권 중에서도 입법권의 오·남용은 국가의 재앙이다. 그것은 입법권의 우월성 과시에서 비롯된다. 이른바 ‘선출 권력’론이다. 이 대통령은 권력에도 서열이 있다고 하면서 입법권을 사법권의 우위에 두는 언급을 했다. 선출권력(대통령직을 포함)에 대한 아전인수 격 오해에서 비롯된 인식이다.
선출의 대상자인 국회의원에게는 사법부나 행정부 주요 구성원들에게 요구되는 특별한 자격 요건이 따로 없다. 누구나 법적 하자만 없다면 출마할 수가 있고 당선되면 국회의원의 자리에 앉는다. 사법·행정부 구성원들이 변호사 시험, 각종 각급 공무원 시험 등을 거쳐 갖게 되는 자격 요건을 국회의원들은 선거로 얻게 된다. 3권 사이에는 서열의 차이가 있는 게 아니라 역할 책임 기능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민주당의 일당독재 식 입법 전횡이야말로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대의민주정치의 자기파괴 행위임을 명심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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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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