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이대로 저물어갈까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12.27 08:00  수정 2025.12.27 08:00

한국 영화계는 코로나19 사태로 큰 타격을 받은 후, 혹시 시장 상황이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될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었다. 올해는 그런 희망이 무너진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해마다 한국 영화 위기론이 제기됐었지만 작년엔 그래도 ‘파묘’, ‘범죄도시4’ 등 두 편의 천만 영화가 나왔고 ‘베테랑2’가 700만 관객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 작품들은 흥행성적도 성적이려니와 사회적 파급력도 상당히 컸다.


반면에 올해는 그런 정도의 파급력을 발휘한 한국 영화가 전무하다. 천만 영화는 당연히 없었고, 대목이라는 여름 방학과 추석 연휴 등 성수기도 사라져버렸다. ‘좀비딸’이 563만 관객으로 연간 흥행 3위에 오르면서 그나마 체면치레를 했는데, 올 한국 영화 중에서 300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은 ‘좀비딸’과 ‘야당’ 두 작품에 불과하다.


12월 15일 기준 올해 한국 영화의 극장가 시장 점유율은 43.7%로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0년 이후 최악의 상황이다.


올핸 외국 영화가 우리 극장가를 이끌었다. '주토피아2'가 12월 18일 기준 누적관객수 571만 명을 돌파하면서 올 한 해 국내 흥행 1위에 올랐다. 2위는 568만 명을 동원한 일본 만화영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다. 이밖에 ‘F1 더 무비’(521만 명),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341만 명),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339만 명) 등 여러 히트작들이 나왔고 지금 현재 연말 극장가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는 작품도 외화인 ‘아바타: 불과 재’다.


이렇게 흥행이 되지 않으니 한국 영화의 수익률도 떨어져간다. 기대 수익률이 떨어지니 자연스럽게 자본 투자가 줄었다. 제작비 조달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한국에서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의 상업영화 연간 제작 편수가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엔 45편에 달했었는데 올해엔 16편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렇게 제작 편수가 줄어들고, 개별 작품에 투입되는 제작비 규모도 축소되니 영화계에 한파가 몰아닥쳤다. 영화 산업계의 기반이 흔들릴 지경이다.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각 제작사들은 더욱 안전한 기획에만 매달리게 됐다. 그러니 신인과 참신한 이야기가 발굴되질 않는다. 그에 따라 관객이 더욱 한국 영화를 외면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일부 스타들의 출연료가 너무 오른 것도 문제다.


내년 전망도 암울하다. 씨제이이엔엠(CJ ENM), 롯데시네마, 쇼박스 등 국내 주요 투자·배급사들이 12월 중반까지도 내년 라인업을 정하지 못했다. 현재 주요 회사들에서 거론되는 내년 장편 상업영화가 총 10편에서 20편 사이라고 한다. 이렇게 제작 편수가 쪼그라들면 인력이 빠져나가고 시스템이 무너진다. 일단 그렇게 되면 복구가 어려울 것이다.


과거 스크린쿼터 논쟁 당시에 소자본 한국 영화가 외국 영화에 대적하기 어렵다는 영화인들의 우려가 나왔었다. 한동안은 다행히 그런 우려가 기우에 그치는 것 같았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 영화의 열세가 시작되는 분위기다.


관객들이 과거엔 관성적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극장에 갔었다. 극장에선 으레 최신 한국 영화를 선택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영화관에 관성적으로 가지 않는다. 이 영화가 극장에 가서 볼 만한 작품인가를 꼼꼼히 따지기 시작했다. 한국 작품이라고 특별히 잘 봐주지도 않는다. 과거 국산품에 우호적이었던 기성 세대와 달리 요즘 젊은 세대는 국내산을 외산과 똑같이 대하거나 심지어 국내산에 더 까다로운 태도를 취한다. 국내산에 더 적대적인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렇다보니 한국 영화도 조롱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조금 모자라도 국내 산업을 밀어줘야 한다는 의식이 사라졌다.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하는 헐리우드의 대형 블록버스터나 매니아들을 끌어들이는 일본 만화영화 같은 확실한 경쟁력이 한국 영화엔 부족하다. 이러니 위기감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신드롬으로 한국 문화가 대 전성기에 접어든 것 같지만 내부적으론 위태위태한 것이다.


영화인들은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한다. 정부는 중예산 영화 제작지원에 나섰다. 다양한 개성의 중예산 영화들이 활성화되면 한국 영화의 허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인감독도 지원한다고 한다. 하지만 얼어붙은 영화산업계를 살리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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