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회색 코뿔소’ 5대 위기 정조준
기획·예산 연동 ‘전략 컨트롤타워’ 선언
2026 지선 앞둔 與 ‘외연 확장’ 비판도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29일 오전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지명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정부가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이혜훈 전 의원을 지명하면서 관가 안팎이 술렁이고 있다. 보수 진영 대표 경제통이면서 과거 박근혜·이명박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뱉었던 그의 이력 때문이다. 이 후보자 발탁을 두고 탕평 인사라는 평가와 함께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정무적 포석이라는 분석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29일 이 후보자는 서울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임시 집무실로 첫 출근하며 본격적인 청문회 준비에 돌입했다.
그는 출근길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 경제 상황을 ‘퍼펙트 스톰(복합적 위기)’과 ‘회색 코뿔소(예견된 위기)’로 규정하며, 기획처의 역할을 ‘국가 전략 기획의 컨트롤타워’로 명확히 했다.
이 후보자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5대 핵심 과제로 ▲인구위기 ▲기후위기 ▲양극화 ▲ 산업기술 대격변 ▲ 지방소멸을 꼽았다. 그는 이를 두고 “이미 오래전부터 수많은 경고가 있었음에도 방관해온 회색 코뿔소와 같은 상황”이라며 “기획처는 이러한 위협을 사전에 인지하고 대응하기 위해 탄생한 부처”라고 강조했다.
야권 인사 발탁에 관가 술렁…인사청문회 ‘격전’ 예고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가장 뜨거운 쟁점은 이 후보자의 ‘정치적 포지셔닝’이다.
이재명 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강조해온 보수 인사를 곳간지기 후보자로 세운 것은 내년 6월 3일로 예정된 제9회 지방선거를 앞둔 ‘외연 확장’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보수 진영 인물인 이 후보자가 정부의 예산안을 발표할 경우, 야당의 ‘포퓰리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방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 강남권에서 3선을 지낸 이 후보자의 존재감은 수도권 중도층과 보수층의 민심을 흔드는 카드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야권이 이번 지명을 두고 “탕평을 빙자한 선거용 회유”라며 강력히 반발하는 이유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중도 보수 성향의 인물을 기용하면서 이재명 정부는 내년 지방선거 압승 카드를 꺼냈다”며 “이같은 인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야권 출신 인사 추가 기용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재명 정부 들어서 환율이 급격히 오르면서 경제 정책 전반에 불안감이 커졌다”며 “보수 인사를 데려다 경제 정책을 맡김으로써 실패 시 책임 회피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야권 일각에서는 내년 지선을 불과 5개월 앞둔 시점에서 보수 인사를 발탁한 것을 두고 ‘민심 잡기용 방패’라는 비판이 거세다. 특히 이 후보자가 과거 현 정부를 비판했던 SNS 게시물을 대거 삭제한 것을 두고 이 후보자의 이념 정체성 논란이 인사청문회의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도 있다.
할 말은 하는 ‘소신파’…부처 장악력 및 전문성 주목
이 후보자는 과거 종합부동산세 개정안을 18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발의하고 서초구 재건축 활성화를 주도한 확고한 시장주의자다. 동시에 재벌 총수의 특별 사면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공약 후퇴를 강하게 질타했던 ‘소신파’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후보자는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 공약에서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여당 내 야당’ 역할을 자처했다.
이 후보자는 정치권 입문 전 KDI(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정책 실무를 익힌 대표적인 ‘정책통’이다.
이 후보자는 국회 진출 이후에도 기획재정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정부 예산안 허점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송곳 검증’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는 과거 국정감사장에서 날카로운 논리로 피감기관장들을 긴장시켰고, 정부 역점 사업에 제동을 걸었던 사례가 있다.
이 후보자가 임명될 경우 강력한 부처 장악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관료 조직의 생리를 꿰뚫고 있는 만큼, 예산 편성 과정에서 부처 간 이기주의나 선심성 예산 편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관행적으로 이어져 온 이른바 ‘쪽지 예산’이나 선심성 사업들이 대거 퇴출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신 교수는 “이 후보자는 평소에도 확장 재정 기조에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며 “그동안 본인이 주장해 왔던 것을 소신 있게 밀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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