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물 협·단체 “법 개정”…AI 관련 협회 “경쟁 밀려”
EU·일본, TDM 허용 후 권리자 보호
미국, 공정이용 고수…판결은 법원 몫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2025 대한민국 법률 산업 박람회에서 관계자가 증거분석 인공지능(AI)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
인공지능(AI)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AI 학습과 저작권의 경계 설정을 두고 각국의 제도 선택이 산업 지형을 가르고 있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주요국들은 저작권 체계 안에서 텍스트·데이터마이닝(TDM) 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권리자 보호를 위한 조건과 통제 장치를 명문화하는 방향을 택했다.
반면 미국은 공정이용(fair use)이라는 유연한 원칙 아래, 개별 사안에 대해 법원이 사후적으로 판단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각국의 규제 방식은 다르지만 AI학습을 둔 법적 불확실성을 최소화해 혁신의 속도를 유지하겠다는 정책적 합의에서는 공통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AI 학습, ‘저작권’ VS ‘산업 발전’ 딜레마
‘대한민국 AI 행동계획(AI 액션플랜)’에서 AI 학습을 둘러싼 저작권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AI 학습은 텍스트·이미지·영상 등 대량의 데이터를 입력해 인공지능이 예측·분류·생성 방법을 스스로 익히도록 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최근 원저작물의 저작권 침해 논란이 불거지면서, 학습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적 책임을 두고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특히 AI 학습에 이미 공개된 저작물을 활용해 데이터를 서버에 저장·분석하는 행위가 저작권법상 ‘복제’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AI 학습을 통해 생성된 결과물이 특정 작품과 실질적으로 유사한 경우, 저작권 침해로 볼 수 있는지도 또 다른 쟁점으로 제기된다.
이 같은 논란은 정부가 제시한 AI 액션플랜 32번 과제인 ‘AI 학습·평가 목적의 저작물 활용 및 유통 생태계 활성화’와 맞물려 있다.
해당 과제는 AI 학습 과정에서 저작물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고, 관련 제도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지난 15일 저작권·콘텐츠·인공지능 분야 유관 협·단체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서는 이른바 ‘저작물 선사용 후보상’ 개념이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정부는 온라인 공개 게시물 등 거래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저작물의 경우, 저작권자가 AI 학습에 대한 거부권을 보다 쉽게 행사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학습 금지 의사 표시를 간소화해 권리자 선택권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은 저작물이나 원저작권자가 명확하지 않은 저작물에 대해서는 적법한 접근을 전제로 제3자의 우선 활용을 허용하되, 추후 수익 공유 체계를 활성화해 장기적으로 새로운 저작물 거래 시장을 조성하겠다는 구상도 함께 제시했다.
이에 대해 일부 협·단체는 AI 학습에 대한 면책과 함께 정당한 보상 원칙이 법 개정을 통해 명문화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인공지능 관련 협회들은 저작물 활용을 과도하게 제한할 경우, 국내 AI 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져 ‘기술 종속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호소했다.
美, AI 학습은 허용...출력 결과는 법적으로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EU는 2019년 저작권 지침을 통해 연구 목적의 텍스트·데이터 마이닝(TDM)은 물론 상업적 활용까지 폭넓게 허용하는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 TDM은 대규모 텍스트·이미지·음성·영상·데이터를 컴퓨터가 자동으로 수집·분석해 정보를 추출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다만, EU는 권리자가 명시적으로 활용을 거부할 수 있는 옵트아웃(opt-out) 제도를 허용하고, 데이터 보안 및 저장 방식에 대한 요건을 두는 등 권리 보호 장치도 병행했다.
일본은 2018년 저작권법 개정으로 정보 분석 목적의 저작물 이용을 허용했다. 이를 통해 AI 개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불확실성을 줄여 산업계의 기술 개발에 안정성을 부여했다.
싱가포르 등 일부 국가들도 AI 학습을 위한 저작물 이용을 명확히하며 글로벌 기업과 연구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제도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AI 산업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저작권 규율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움직임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반면, AI 강국인 미국의 선택은 다소 다르다. 미국은 명문 규정을 두기보다는 공정이용(fair use) 원칙에 기반하고 있다. 이는 AI 학습을 활용한 후 그 결과물이 변형적 이용에 해당하는지, 저작물의 잠재적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법원이 판단하도록 맡기는 것이다.
최근 잇따르는 소송으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동시에 기술 발전을 제도적으로 선제 차단하지 않는 개방성을 유지한다는 평가을 받고 있다.
AI 학습 모호한 회색지대에...AI 투자 포기로 연결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1차 발표회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한국의 AI 학습 규제 범위는 여전히 명확한 기준이 없는 회색지대에 놓여 있다. AI 학습과 저작권 침해의 경계를 분명히 설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성급한 규제는 자칫 AI 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외에서는 합법으로 인정되는 AI 학습 방식이 국내에서는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고, 이는 곧 데이터 확보 경쟁에서의 열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AI 학습 목적의 저작물 이용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 부재가 장기화될 경우, 산업계와 연구 현장에서는 이 같은 불확실성이 곧바로 비용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스타트업과 중소 개발사들은 소송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려워 실험적 연구나 신규 서비스 개발을 포기하거나, 상대적으로 규제가 명확한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는 국내 AI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이병태 KAIST 명예교수는 “AI 학습 행위에 대해서는 국제적으로도 아직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사안”이라며 “사회적 합의를 모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AI 분야에서 뒤늦은 추격자에 해당하는 만큼, 규제보다 기술과 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기업들이 AI 분야에 충분히 투자하지 못한 것이 경쟁력 저하의 원인 중 하나인데, 정부 규제가 많아질수록 기업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AI 시장을 우선 개방해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뒤, 사회적 합의를 거쳐 규제를 정비하는 순서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AI 저작권 전쟁’ 속 한국형 해법 과제[AI시대와 저작권③]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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