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유행은 지났지만…의료 인프라 적용은 현실화"[내일의 닥터]

김효경 기자 (hyogg33@dailian.co.kr)

입력 2026.01.24 06:00  수정 2026.01.24 06:00

의료메타버스학회장 정용기 삼성서울병원 교수 인터뷰

교육·치료·수술 영역으로 확장되는 의료 메타버스

“도입보다 중요한 것, 의료적 검증과 제도 설계”

“가상화 기술, 기존 의료보다 나은 이유 증명해야”



‘내일의 닥터’는 의료산업의 혁신 흐름을 읽습니다. AI·로봇·데이터가 바꾸는 병원 생태계, 그리고 그 변화를 이끄는 기술·정책·시장 트렌드를 심층 분석합니다.



제4대 의료메타버스학회장으로 취임한 정용기 삼성서울병원 교수가 19일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의료 현장에서 가상현실(VR)과 메타버스는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니다. 수술 교육과 간호 교육, 정신질환 치료 등에서는 활용 영역이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병원 밖에서 한때 열풍을 일으켰던 ‘메타버스’라는 단어의 온도는 낮아졌지만, 의료 분야에서 가상화 기술의 존재감은 오히려 선명해지는 상황이다.


이 같은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의료 메타버스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인물이 있다. 제4대 의료메타버스학회장으로 취임한 정용기 삼성서울병원 교수(이비인후과)다. 지난 19일 삼성서울병원에서 정 교수를 만나 의료 메타버스 기술의 발전과 제도적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현장’에서 출발한 ‘의료 메타버스’


의료메타버스학회는 2022년 출범했다. 시기적으로는 메타버스 열풍과 겹쳤지만, 출발점은 유행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미 수술과 치료, 간호 교육 현장에서 가상현실을 활용해 온 의료진과 연구자, 그리고 의료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느껴온 ‘현장의 공백’이 계기였다. 정 교수는 “가상기술을 가진 기업은 의료 진입 방법을 몰랐고, 의료진은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연결고리가 없었다”며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한 플랫폼이 학회였다”고 설명했다.


학회의 구성 역시 기존 의료 학회와는 다르다. 의료진뿐 아니라 간호 분야, 법조계,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가상기기 개발사까지 참여하고 있다. 의료 현장에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규제와 법, 제도 문제를 함께 논의하기 위해서다.


가상현실·메타버스 기술을 의료에 접목하는 일을 앞당기고 보편화시키는 게 그가 이끄는 학회의 역할이지만, 그가 가장 강조하는 단어는 ‘속도’도 ‘확대’도 아닌 ‘검증’이다. 그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원을 요구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가상화 기술이 왜 의료에 필요하고, 왜 기존 치료보다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는지를 의료계 안팎에서 모두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할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그 역할이 바로 학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데일리안 AI 디지털 아트

현재 의료 메타버스 기술의 수준에 대해 그는 ‘임상 적용 직전’이라고 설명했다. 의료기기 개발에 적용되는 기술성숙도(TRL) 기준으로 9단계가 돼야 적용 가능한데, 현재 다수 기술이 6~8단계에 도달했다는 평가다.


‘메타버스의 유행은 끝났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그는 다른 시각을 내놨다. 정 교수는 “끝난 건 메타버스라는 용어의 유행이지, 가상화 기술 자체가 아니다”라며 “가상현실과 디지털 트윈, 가상 융합 기술은 오히려 눈에 띄지 않게 꾸준히 발전해 왔고, 거품이 빠진 지금이 의료에 적용하기에는 더 적절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현장에서 가장 빠르게 자리 잡은 분야는 교육이다. 의학 교육과 간호 교육에서 VR 활용은 이미 일상적인 도구가 되고 있다. 그는 직접 개발한 두경부 해부학 VR 도구를 전공의 교육에 활용했고, 그 결과를 연구 논문으로도 발표했다. 다수 병원에서는 신규 간호사 교육과 의료기기 사용 교육에 VR 솔루션을 도입하고 있으며, 이를 전문 사업 모델로 삼은 국내 기업들도 활동 중이다.


정 교수는 수술 영역에서도 가상화 기술 적용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기반의 수술 내비게이션 기술이 활발히 준비되고 있다”며 “개인적으로도 두경부 수술에 적용할 수 있는 가상·증강현실 기반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범부처 의료기기 개발 사업을 통해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피지컬 AI와 가상기술, 의료 현장 이끌 것”
삼성서울병원 전경 ⓒ삼성서울병원

환자 혼란과 안전성 문제 역시 그가 중요하게 보는 지점이다. 가상기술이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기술’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가상 기술 역시 ‘디지털 리터러시’와 마찬가지로 ‘가상 기술 리터러시’로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며 “고령 환자나 어지럼증을 느끼기 쉬운 환자, 시력 문제를 가진 환자에게는 적합성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의료계에서 주목받는 ‘피지컬 AI’ 역시 의료 메타버스와 분리된 개념은 아니다. 정 교수는 가상화 기술을 활용하면 가상 공간에 피지컬 AI가 적용된 의료기기와 주변 환경을 구현하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통해 학습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시뮬레이션 기반 학습은 실제 의료 현장에 적용하기 전 피지컬 AI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며 “가상 기술과 피지컬 AI는 향후 5~10년 이상 의료 연구를 이끌어갈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지원에 대해서는 보다 장기적인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상 기술 과제가 유행처럼 늘었다가, 붐이 꺼지면 급격히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며 “기반 기술부터 상용화 단계까지 지속적인 연구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정 기술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안정적인 연구 생태계 조성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학회 운영과 연구 인력 확보는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남아 있다. 그는 “연구를 하려는 의사 풀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진료·수술·행정 부담 속에서 연구가 가장 먼저 줄어드는 구조가 현재 의료계의 가장 큰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그가 내다본 5년 뒤 의료 현장은 비교적 분명하다. 의과대학과 전공의 교육의 상당 부분이 가상화 기술로 대체되고, 간호 교육에서는 그 비중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 교수는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기술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보수적으로 봐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며 “의료 메타버스는 의료 인프라의 한 축으로 준비해야 할 기술이다. 이제는 속도보다 방향과 설득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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