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당 협상 앞두고 '대응 전략' 구축
전권 조국에 위임, 당내선 與 의도 분석
"이제 민주당 차례…정치·검찰개혁 등
수용 여부 밝혀야 다음 스텝"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26일 국회 당 회의실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합당 논의로 내홍을 겪는 것과 달리, 조국혁신당은 전략적으로 주도권 확보에 나선 모양새다. 합당 찬성·반대 여부는 밝히지 않은 채 협상 관련 전권을 조국 대표에게 위임하는 등 차분하게 절차를 밟고 있기 때문이다. 당내 반발 수습에 곤혹을 치르는 민주당과 흡수합당 위기론에 '신중론'을 펼치는 혁신당 간 주도권 우위를 누가 점할지 주목된다.
혁신당은 2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건물에서 열린 당무위원회에서 합당 관련 논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독자적인 비전·가치·정책에 기초해 당원 총의에 따라 합당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나아가 합당 협상 관련 전권은 조 대표에게 위임하기로 당무위는 의결했다.
혁신당은 지난 24일 의원총회에서 합당에 대해 당내 논의를 차분하고 질서 있게 진행하기로 결정한 이후, 당 입장을 정하기 위해 절차를 밟고 있다. 당 소속 의원들은 개별 입장을 자제하고 있는 탓에 소통 채널은 조 대표로 자연스럽게 구축됐다. 조 대표는 당내 여론에 대해 "민주당 논의가 정리된 뒤 우리가 답을 해야 하는 것"이라는 입장이기 때문에 당의 합당 찬반 여론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선 혁신당이 합당과 관련된 카드를 숨기는 이유로 주도권 확보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합당 논의는 정청래 대표가 먼저 제안했지만, 혁신당 입장에선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사실상 당 크기 차이로 '당 대 당' 통합이 사실상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자칫 협상 국면에서 주도권을 민주당에 뺏길 경우, 합당 이후 민주당 안에서 영향력은 축소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협상이 결렬돼도 혁신당에 책임론이 제기될 수 있는 것도 당의 '신중론'에 영향을 미치는 분위기다.
혁신당 관계자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큰 정당이 손을 내밀었다가 접을 수 있는 상황에서 작은 정당 입장에선 단결해서 대응하지 않으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정무적인 감각이 당내 인사 모두에게 있다"며 "만약 민주당이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한 뒤 '혁신당이 수용하지 않았다'며 제안을 거두면 책임론에 놓이게 되는 국면인 것"이라고 토로했다.
당무위가 이날 조 대표에게 합당 협상 관련 전권을 위임한 것도 '신중론' 차원에서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 비공개 당무위에선 합당을 놓고 격론이 오갔는데, 찬성·반대가 아닌 민주당에 대한 대응 전략이 주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병언 대변인은 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어떤 경우에는 (합당 제안이) 철회될 수 있기 때문에 많이 휘둘려선 안 되며 조 대표를 중심으로 질서 있고 차분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에 견해가 일치됐다"고 설명했다.
혁신당이 카드를 숨긴 채 신중론을 택한 배경엔 민주당의 '흡수 합당론'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조 대표의 '혁신당 정치적 DNA 보존' 발언을 겨냥해 "민주당이라는 큰 생명체 내에서 혁신당의 DNA도 잘 섞이게 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합당 논의를 둘러싼 신경전이 본격화됐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혁신당은 민주당의 태도 변화에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조승래 사무총장은 25일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당 당명 유지' 의지를 드러냈는데, 혁신당은 조 사무총장의 발언이 협상에 긍정적인 요소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합당 이외의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혁신당 일부에선 "민주당이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기 위한 조치를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혁신당은 현재 민주당에 모든 공을 넘긴 상황이다. 이번 당무위 의결을 통해 합당 협상을 앞두고 당의 소통 채널과 기조 구축이 완료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합당 찬반을 수렴하기 위한 절차가 아닌, 민주당과의 협상에 대비한 시스템이 구축된 상황이다. 민주당이 당내 의견을 정리하면 곧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관계자는 "혁신당은 당의 기조가 반영되는 방식의 통합 논의를 해달라고 밝힌 셈"이라며 "이제 민주당에서 당내 일부에서 나오는 부적절한 '흡수 합당론'이나, 정치개혁·개헌·검찰개혁 등 사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얘기가 나와야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당은 합당 논의에 진척을 내지 못하고 있다. 정 대표의 기습적인 합당 제안에 당 안팎으로 반발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여기에 혁신당의 'DNA 보존' 발언은 분노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강득구 최고위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가 왜 혁신당과의 통합을 위해 여러 조건을 감수하며 구애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민주당의 고유한 역사와 전통성은 존중받아야 하며, 당명 변경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개인적으로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혁신당과의 합당이 선거 판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이언주 최고위원은 CBS라디오 '뉴스쇼'에서 "노선과 정체성이 민주당보다 더 왼쪽에 있는 혁신당과 (합당을) 하는 것은 국민의 국정 신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서울시장, 부산·울산·경남(PK) 등 중도 보수층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고, 그 비중이 큰 지역의 선거에는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당 지도부 입장에선 합당 논의에 앞서 풀어야 할 과제가 또 생긴 셈이다. 의견 수렴 절차라도 밟아야 하지만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의 별세로 필수 당무를 제외하고 애도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모든 계획은 순연됐다. 당원 의견 수렴으로 당내 일부에서 터져 나오는 반발을 진화해야 하지만 녹록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나아가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선 신경전도 펼쳐야 하는 탓에 고심이 깊은 분위기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민주당과 혁신당의 합당 여부는 지분을 얼마나 인정해 주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면서 "'DNA' 논쟁은 표면적인 이유이자 명분 확보 차원에서 나오는 얘기라고 볼 수밖에 없고, 내막은 결국 지분 나누기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대표는 조 대표가 민주당에 들어와도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겠지만, 조 대표는 달리 생각할 수 있다"며 "혁신당은 제값을 받고 싶어서 튕기는 모양새지만, 조 대표가 민주당에 들어가 해낼 수 있는지는 본인 역량에 달렸으며 당장 지선에서 자리를 많이 확보하려고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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