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케이팝 안무에 생애 첫 올림픽 서사 투영
차준환, 국악인 송소희곡 '낫 어 드림' 선곡
지난 22일(한국시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펼쳐진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갈라쇼에서 한국 피겨스케이팅 간판 차준환(서울시청)과 이해인(고려대)이 한국 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무대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차준환은 이번 대회 남자싱글 4위, 이해인은 여자싱글 8위에 그쳤지만 높은 연기력을 인정받아 갈라쇼에 초청됏다.
ⓒ뉴시스
이해인은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OST ‘왓 잇 사운즈 라이크’(What It Sounds Like)로 관중 앞에 섰다. 케이팝 특유의 빠른 비트를 기반으로 전개되는 이 곡에 맞춰, 무대 의상과 안무를 통해 영화 속 세계관을 빙판 위에 직접 구현했다. 무대 초반 검은 갓과 부채, 두루마기를 입은 채 등장했다. 이는 ‘케데헌’의 등장하는 ‘사자보이즈’(저승사자)의 외형을 차용한 것이다. 전통 복식을 입고 무대를 꾸민 그는, 음악 전개에 맞춰 두루마기를 벗고 극중 걸그룹인 ‘헌트릭스’ 의상으로 변신하는 퍼포먼스까지 수행하며 현장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해당 곡의 가사는 산산조각 난 상처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해인은 우여곡절 끝에 21세의 나이로 생애 첫 올림픽 무대에 서게 된 자신의 개인적 서사를 케이팝 안무에 투영해 전달했다. 이해인은 첫 올림픽이었던 이번 대회에서 여자 피겨 스케이팅 싱글에서 총점 210.56점을 기록하며 24명 중 8위로 대회를 마감해 TOP10 진입에 성공했다.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모두 시즌 베스트를 기록했다.
이해인이 무대 소재로 활용한 ‘케데헌’은 지난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애니메이션 영화다. 케이팝 아이돌 그룹이 퇴마사가 되어 노래로 악령을 물리친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대중음악과 한국 무속신앙을 결합했다. 이 작품은 2025년 하반기 기준 전 세계 플랫폼에서 4억 8000만 이상의 시청 수를 기록했다. 올해 1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받았고, 제53회 애니 어워드에서는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포함해 총 10개 주요 부문을 석권했다. 2026년 3월 개최되는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도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과 주제가상 후보로 지명된 상태로, 전 세계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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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이 케이팝과 한국적 의상을 내세웠다면, 차준환은 국악인 송소희의 곡 ‘낫 어 드림’(Not a Dream)을 선곡해 한국 전통음악을 세계에 알렸다. 국악인 송소희의 ‘낫 어 드림’은 한국 전통 국악 창법에 현대적 악기 편곡을 덧입힌 크로스오버 장르로, 치열하게 살아온 과거를 돌아보며 위로를 건네는 메시지를 지녔다. 차준환은 베이지색 장식이 추가된 넉넉한 형태의 흰색 상의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빙판을 활주할 때 의상 자락이 흩날리도록 유도해 한복 특유의 선과 형태를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안무는 고난도 점프 배치를 최소화하고 서정적인 움직임을 강조했다. 빙판 위를 활주하며 양팔을 날갯짓하듯 들어 올리는 동작, 벽을 짚고 관중석을 응시하는 동작 등이 주를 이뤘다. 단일 조명 아래서 국악 선율과 함께 스케이트 날이 얼음과 마찰하는 소리를 무대의 요소로 활용해 곡의 성격을 부각했다.
이번 2026 밀라노 올림픽 갈라쇼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와 그 위상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평창 대회 당시에도 다수의 해외 선수가 케이팝과 국악을 갈라쇼 음악으로 선택한 바 있는데, 이는 올림픽 개최국에 대한 예우와 현지 관중을 위한 팬서비스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 제3국인 이탈리아에서 K-컬처는 더 이상 낯선 볼거리가 아니었다. 서양 고전 음악과 팝송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은반 위에서 한국의 전통 복식, 무속신앙 서사, 국악 창법이 당당히 무대를 장악했다. 이는 K-컬처가 언어와 국경의 장벽을 허물며 전 세계인의 보편적 감성을 관통하는 거대한 문화적 흐름으로 자리 잡았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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