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위협의 연대기: 조건부에서 노골적 선언으로
정부 노력과 반대의 핵 위협
안보의 세계는 역설의 세계
전작권 전환, 대통령의 영토 수호 의무인가
북한 노동당 제9차대회기념 열병식이 지난 25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핵 위협의 연대기: 조건부에서 노골적 선언으로
북한 지도부가 우리를 향해 핵 공격을 공개 위협한 사례를 추적해 보았다. 요즘은 AI 덕분에 누가, 언제, 어떤 계기로 발언했는지 찾아내는 데 채 1분이 걸리지 않는다. 편리한 세상이지만, 그 내용은 전혀 편치 않다.
노골적인 핵 사용 위협의 서막은 2022년 4월이었다. 당시 서욱 국방부 장관이 미사일 발사 징후 시 원점과 지휘 시설을 정밀 타격(Precision Strike)할 태세를 언급하자, 김여정 부부장은 이를 ‘선제 타격’으로 규정하며 맞받아쳤다. “남조선이 군사적 대결을 선택한다면 우리의 핵 전투 무력은 자기 임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2024년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한술 더 떴다. 전쟁 시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헌법에 명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들의 수사는 ‘한국의 공격이 있을 경우’라는 전제를 단 일종의 조건부 위협에 가까웠다.
정부 노력과 반대의 핵 위협
이재명 정부는 그간 남북군사합의 복원, 흡수통일 부정, 무인기 침투 사건에 대한 유감 표명 등을 통해 북한의 날 선 반응을 누그러뜨리려 애써왔다. 최근 부장으로 승진한 김여정이 “다행으로 생각한다”라거나 “높이 평가한다”라는 반응을 보인 것도 그 노력의 산물일지 모른다.
그러나 9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은 이틀간의 보고를 통해 본심을 드러냈다. “한국의 부잡스러운 행동이 안전을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선제공격을 포함한 모든 물리력을 사용할 것이며, 한국의 완전 붕괴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겠다”라고 일갈한 것이다. ‘부잡스럽다’라는 말은 얌전하지 못하고 까불거나 짓궂다는 뜻이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한국이 까불면 선제공격으로 없애버리겠다”는 협박이다. 간접 보도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향한 김정은의 인식이 얼마나 오만하고 명확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안보의 세계는 역설의 세계
안보의 세계는 본래 역설(paradox)로 가득 찬 공간이다.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문장을 다시 떠올려 보자. 4세기 로마의 군사 전략가 베제티우스(Vegetius)는 그의 저서 『군사학 논고』에서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는 불멸의 문장을 남겼다. 이는 훗날 클라우제비츠 등 수많은 전략가에 의해 인용되며 안보의 본질을 꿰뚫는 경구로 자리 잡았다. 로마 제국이 수백 년간 지중해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숭고한 평화주의가 아니라, 감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군단의 존재였다.
1대당 1억 달러가 넘는 F-35 첨단 전투기를 내년까지 60기나 도입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이 막강한 화력은 상대를 섬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히 우리를 공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이 역설적인 논리 구조를 두고 ‘전쟁광의 의지’라 치부하는 것은 지독하게 순진한 발상이다. 반대로 “너랑 싸우고 싶지 않다”며 보여주는 무조건적인 호의가 안보의 세계에서 곧장 ‘약점’으로 치환되는 현실을 간과하는 것 역시 치명적인 어리석음이다.
전작권 전환, 대통령의 영토 수호 의무인가
북한의 호기로운 위협에 대해 대통령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평화와 안전”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유연하게 대응했다. 이러한 태도가 국민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수사라면 지혜롭다고 하겠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군사적 대응 능력과 의지 자체가 저하되는 쪽으로 북한이 오해하거나 우리 군이 실제로 그렇게 움직인다면 그것은 위험천만한 도박이다.
노골적인 핵 위협이 만천하에 공개된 지금,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임기 내에 완수하겠다는 계획이 과연 대통령의 영토 수호 의무에 부합하는지 냉정하게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안보는 말 잔치가 아니라 실재하는 힘의 균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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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인배 한반도미래포럼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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