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방송연설에서의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모습. ⓒ 로이터/연합뉴스
이란 정부가 1일(현지시간)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86)의 사망을 공식 확인했다. 이란 국영 프레스TV 등에 따르면 방송 앵커는 이날 “이슬람혁명의 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공격으로 순교했다"고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흐느꼈다. 30여년 동안 이란을 철권 통치하며 반(反)미·서방노선을 일관되게 걸어온 인물의 타의에 의해 강제로 퇴장된 것이다.
28일(현지시간) 미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86)는 지난 37년 간 신정(神政)체제의 정점에 올라 절대 권력을 행사해 왔다. 1939년 4월19일 이란 북동부 마슈하드에서 태어난 하메네이는 시아파 이슬람 성직자 가문의 후손이다.
네 살 때부터 이슬람 경전 쿠란을 익힌 것으로 알려졌다. 아랍·페르시아 문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의 이름 앞에는 고위 성직자를 뜻하는 ‘아야톨라’,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의 직계 후손임을 의미하는 ‘세예드’ 등의 호칭이 붙는다. 1958년 시아파 성지인 이란 서부 도시 곰으로 옮겨 루홀라 호메이니에게 신학을 배운 그는 정치적으로도 밀착했다.
두 사람은 샤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정권에 맞선 반정부 운동을 함께 전개했고, 하메네이는 이 과정에서 여섯 차례 체포되고 3년간 추방되기도 했다. 이후 초대 최고 지도자에 오른 호메이니는 하메네이를 국방차관에 발탁하기도 했다. 하메네이는 1981년 대통령 모하마드 알리 라자이가 암살된 뒤 치러진 대선에 출마했다.
선거운동 중 녹음기에 숨겨진 폭탄이 터지는 암살 시도를 겪어 오른팔을 크게 다쳤지만 생존했다.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97%의 득표율로 당선돼 이란 최초의 성직자 출신 대통령이 됐다. 그는 취임 연설을 통해 ”일탈과 자유주의, 미국의 영향을 받은 좌파 세력 제거“를 천명하며 강경 노선을 분명히 했다. 재선에 성공해 1989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 워싱턴DC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연설을 통해 이란에 대한 군사 작전을 알리는 모습이 영상 모니터로 송출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1989년 호메이니가 사망하자 일찍이 후계자로 낙점됐던 하메네이가 뒤를 이어 제2대 최고 지도자에 올랐다. 이란에서 종신직인 최고 지도자는 국가정책의 최종 결정권자이자 권력 구조의 최고위직일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신의 대리인’으로 받아들여진다.
즉 최고 지도자는 국내정책의 최종 승인과 집행 감독권, 각종 선거 승인권을 비롯해 사법부 수장과 국영매체 경영진 임명권, 대통령·내각 임면권, 사면권 등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한다. 파트와(종교지도자의 칙령 또는 이슬람 율법 해석)를 내릴 수도 있다.
그는 이후 반대 세력을 숙청하고 충성파를 육성하며 권력 기반을 더욱 공고히 했다. 이란이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 축’ (Axis of Resistance)’ 구축을 목표로 지원한 팔레스타인 무장테러 단체 하마스,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예멘 시아파 무장단체 후티반군과의 관계를 강화하며 대외 강경노선을 주도했다.
국내 통치에서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근거로 여성과 성소수자,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억압 정책을 지속했다. 2022년 히잡 착용 규정 위반으로 체포된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 이후 촉발된 전국적 반정부 시위를 강경 진압한 것도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말 서방 제재로 리알화의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극심한 인플레이션(물가상승) 등으로 누적된 경제난 속에서 테헤란 상인 시위가 전국적 반정부 운동으로 확산되자 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 민병대를 동원한 유혈 진압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수천~수만명에 이르는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해 국제사회 비판이 고조됐다.
이 같은 내부 불안과 대외 긴장이 격화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소요 사태를 계기로 군사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며 핵협상 재개를 압박해 왔다. 이후 미국과 이란 간 3차 협상이 열린 지 이틀 만인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이 단행됐고, 하메네이는 테헤란 거처에서 사망했다.
샤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축출 직전인 1978년 이란 수도 테헤란 반정부 시위 모습. ⓒ AP/연합뉴스
하메네이 사후 이란·중동 정세는 중대한 분수령을 맞을 전망이다. 하메네이는 자신이 숨질 경우를 대비해 공개하지 않은 3명의 후보를 후계자로 낙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기적으로 최고지도자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체제 안정이 최우선 과제다.
혁명수비대와 보수 성직자 네트워크가 후계 구도를 관리하며 급격한 노선 변화를 자제할 전망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차기 최고 지도자의 종교적 권위와 정치적 정당성이 하메네이만큼 강력하지 않을 경우 내부 권력 균열과 민심 이반이 가속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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