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범 감독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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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남동생과 할머니를 부양하며 살아가는 지훈(변요한)은 대학 마지막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그는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챙겨 동생과 이웃집 소녀에게 나눠줄 만큼 빠듯한 일상을 버틴다.
등록금 마감일이 다가오지만 돈은 좀처럼 마련되지 않고, 사장에게 가불을 부탁해보지만 거절당하며 마음은 점점 조급해진다.
어느 날 밤, 편의점 근무 중이던 지훈은 횡단보도에서 발생한 뺑소니 사고를 목격한다. 그 사건 이후 지훈의 일상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얼마 뒤 편의점에 찾아온 한 남자가 맥주병을 깨뜨리며 “아직 신고하지 않았지?”라고 묻고, 목격 사실을 침묵해달라며 돈을 건넨다. 지훈은 이를 거절하지만 남자는 돈뭉치를 그대로 두고 사라진다.
같은 시기 지훈은 경찰로부터 남동생이 신발을 훔치다 붙잡혔다는 연락을 받는다. 동생은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제대로 된 신발 한 켤레도 사주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 앞에서 지훈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진다. 결국 그는 남자가 두고 간 돈으로 등록금을 납부하고, 오랜만에 동생과 할머니와 함께 따뜻한 저녁 식사를 한다.
등록금을 해결한 지훈은 교생 실습에 나갈 기회를 얻는다. 수학교육과 학생인 그는 면접을 본 고등학교에서 수학 교생 자리가 이미 찼다며 윤리 교생을 제안받고 이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학교를 찾아 교무부장을 만나는 순간, 지훈은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한다. 바로 그가 뺑소니 사고의 가해자였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남동생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이 또 다른 비극을 전한다. 이웃집 소녀의 유일한 가족이었던 어머니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다.
영화는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 절박한 청년의 현실 속에서, 우연히 범죄의 목격자가 된 한 인물이 어떤 선택 앞에 서게 되는지를 차분히 따라간다.
침묵의 대가로 건네진 돈은 그에게 마지막 학기 등록금을 해결해 주는 구원이 되는 동시에, 평범한 일상을 갉아먹는 균열이 된다. 변요한은 이 모순된 상황 속에서 흔들리는 청년의 내면을 과장 없이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눈에 띄는 감정 폭발보다, 상황을 외면하려는 체념과 양심 사이에서 미묘하게 흔들리는 표정과 침묵으로 인물의 무게를 전달한다.
이야기는 교생 실습을 통해 또 다른 층위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수학교육과 학생인 지훈은 수학 교생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윤리 과목 교생을 제안받고 이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학교의 교무부장이 바로 뺑소니 사고의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윤리를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 범법과 양심을 저버린 행위의 주체라는 설정은 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무엇이 옳은지, 어디까지가 책임인지, 그리고 침묵의 대가로 얻은 삶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윤리적 딜레마가 지훈의 현실과 겹쳐진다.
영화는 명확한 결말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마지막에 작은 균열 하나를 남긴다. 사고의 피해자가 이웃집 소녀의 어머니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암시되면서, 지훈의 선택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삶과도 이어져 있음을 떠올리게 한다. 그 여지는 관객에게 질문을 되돌린다. 침묵으로 유지된 삶이 과연 정당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침묵이 누구의 희생 위에 서 있는 것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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