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섭 빗나간 초구욕…톱타자의 품격?

데일리안 스포츠 = 김윤일 기자

입력 2012.10.09 11:18  수정

준PO 1차전서 6타석 동안 10개의 공

어울리지 않는 1번 옷, 클린업 배치?

지나친 '초구 사랑'으로 1번 타자의 품격을 잃어버린 손아섭.

프로 6년 차 롯데 손아섭(24)의 야구 인생에 있어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은 역시나 지난해 SK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이다.

손아섭은 6-6으로 맞서던 9회말 1사 만루 찬스 때 타석에 들어섰다. 안타 또는 희생플라이 하나면 경기가 그대로 끝나는 상황. 하지만 상대 투수 정우람의 초구에 방망이가 나가버린 그는 병살타로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순간 사직구장은 정적에 휩싸였고, 하필이면 곧바로 이어진 10회초 정상호의 결승 홈런이 터지며 팀은 패하고 말았다. 손아섭은 5타수 3안타의 불방망이를 휘두르고도 역적으로 몰렸고, 팀 역시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아쉽게 탈락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았다.

당시 손아섭은 1차전이 끝난 뒤 “미치겠다. 잠을 한숨도 못 잤다. 무서워서 휴대폰을 못 보겠다”며 적지 않은 맘고생을 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의 악몽은 지금까지도 손아섭을 괴롭히고 있다. 지난 7일 준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 참석한 손아섭은 당연히 초구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손아섭은 “이제는 상황에 맞게 쳐야겠다. 병살타는 경기의 일부분이고, 그 일로 많이 배우고 공부도 했다”며 한층 성장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초구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그렇다고 초구타율이 5할이 넘는데 안 칠 수는 없지 않는가. 흐름을 봐서 공이 보이면 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손아섭은 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경기 내내 적극적인 스윙으로 임했다. 연장 10회에는 재치 있는 스퀴즈 플레이로 팀 승리에 쐐기를 박기도 했다. 기록지에 적힌 손아섭의 기록은 5타수 1안타 2타점. 무난한 활약이었다.

물론 손아섭의 ‘초구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연장 10회까지 6차례 타석에 들어서는 동안 그는 무려 3번이나 초구에 방망이를 댔다. 나머지 타석 역시 초반에 승부를 걸었다. 1회와 3회에는 2구째 볼에 손이 나갔고, 가장 끈질긴(?) 승부를 펼친 7회에는 3구 만에 포수 땅볼로 물러났다. 이날 6타석 동안 손아섭이 지켜본 볼은 10개에 불과했다.

사실 손아섭은 타석에서의 적극적인 승부로 큰 효과를 보는 타자다. 지난해 포스트시즌에서 ‘초구 악몽’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초반 승부는 올 시즌도 어김이 없었다. 이에 대한 지적도 끊이지 않았지만 손아섭은 결국 실력으로 자신을 향한 비난을 잠재웠다.

올 시즌 손아섭은 초구에 배트가 나갔을 때 무려 0.507의 타율을 기록했다. 1볼 또는 1스트라이크 등 2구째 승부에서도 그의 타율은 각각 0.333과 0.397에 이른다. 또한 초구 또는 2구째에 방망이가 나가는 비율은 37%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만하면 초구 승부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만하다.

올 시즌 손아섭의 볼 카운트별 타율.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133경기가 아닌 단 5경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포스트시즌이다. 전력 분석원들의 눈은 더욱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고 상대 배터리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경기에 임한다.

무엇보다 손아섭에게 주어진 역할이 1번 타자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의 ‘초구 사랑’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흔히 1번 타자는 투수의 투구수를 최대한 늘려 후속 타자에게 보다 많은 공을 볼 수 있게 해야 하는가 하면, 출루를 염두에 두는 플레이를 펼쳐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1번 타자 손아섭은 낙제점에 가깝다.

두산의 1차전 선발이었던 니퍼트는 초반부터 제구가 잡히지 않으며 힘든 경기를 펼쳐야 했다. 특히 3회에는 볼넷으로만 세 타자를 내보내 만루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첫 타자 조성환을 8구째 만에 볼넷으로 내보냈고, 희생번트로 인한 1사 2루 상황에서도 다시 볼넷을 내줘 위기를 자초했다. 하지만 후속타자였던 손아섭은 2구째 만에 배트를 내밀어 1루수 앞 땅볼로 물러났다.

정작 롯데의 1번 타자 역할은 2번이었던 김주찬이 수행했다. 손아섭과 함께 타석에서의 참을성 없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김주찬이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김주찬은 7회까지 연속 네 타석 5구째까지 가는 인내심을 발휘했고, 10회에도 볼넷을 얻어내 출루했다. 손아섭과 똑같이 6타석에 들어서 김주찬이 걸러낸 볼은 2배가 훨씬 넘는 25개였다.

양승호 감독의 선수기용도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안타 생산 능력이 뛰어난 손아섭을 1번에 배치해 보다 많은 찬스를 잡겠다는 의도를 내비쳤지만 결과적으로 악수가 되고 말았다. 오히려 그의 적극적이고 뛰어난 타격기술은 테이블세터진보다 클린업에 어울리는 것이 사실이다.

손아섭은 지난 미디어데이에서 “흐름을 보고 상황에 맞게 타격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1차전에서의 손아섭은 흐름도 읽지 못했고, 상황에 맞는 타격과도 거리가 멀었다. 양승호 감독도 지난해 플레이오프에서 3번이던 손아섭을 2번으로 끌어올렸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적어도 1차전에서 나타난 양승호 감독의 전략과 손아섭의 마인드는 지난해 실패의 되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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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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