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시즌의 전반기를 마친 가운데 7승3패 평균자책점 3.09의 좋은 성적과 팀 관계자와 전문가, 그리고 현지팬들에게도 호평을 받고 있다.
류현진을 향한 우려의 시각은 대부분 사라졌다. 이제 관심은 류현진이 당차게 설정한 ‘신인왕’ 수상 여부다. 출국 당시 “신인왕과 2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을 때만 해도 기대보다는 배포에 박수를 쳐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젠 진지하게 접근할 수 있는 상황까지 왔다.
류현진은 신인치고 상당히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독보적인 것은 아니다. 적어도 2~3명의 투수가 류현진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성적을 올렸다. 타자들 중에도 라이벌이 될 만한 선수가 있다.
전반기 최고의 신인으로 꼽히는 쉘비 밀러(23·세인트루이스)를 비롯해 호세 페르난데스(21·마이애미)와 훌리오 테헤란(22·애틀란타 )이 투수들 중에는 류현진과 비슷한 선상에서 평가를 받고 있다.
밀러는 신인 투수들 가운데 가장 많은 승수를 쌓으며 최다탈삼진을 기록 중이다. 페르난데스는 평균자책점과 WHIP가 매우 좋다. 류현진이 앞서있는 것은 경기당 투구이닝. 평균자책점이나 다승에 비해 눈에 띄지 않을 뿐, 이 또한 선발투수가 갖춰야 하는 중요한 덕목이다.
현 시점에서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류현진이 일단 밀러에 뒤지는 게 사실이다. 전반기 마지막 등판에서의 부진으로 평균자책점이 3점대로 치솟은 것이 치명적이다. 승수가 팀 전력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최약체팀에서 투구내용이 월등한 페르난데스보다도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후반기 전망은 다르다. 적어도 류현진이 이들에 비해 크게 유리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경험’이다. 류현진은 한국에서 7년 동안 쌓은 경험이 있다. KBO 1군 무대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얻은 그 7년이란 시간은 다른 신인 투수들이 마이너리그에서 얻은 것과 결코 같은 무게일 수 없다.
밀러는 지난해 트리플A와 메이저리그를 합해 150이닝 정도 던진 것이 프로 생활 최다다. 페르난데스 역시 작년에 134이닝 소화한 것이 경력의 전부다. 후반기부터는 경험하지 못했던 체력과의 싸움을 치러야 한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워싱턴이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에게 했던 것처럼, 소속팀에서 투구이닝을 조절하기 위해 시즌 막판 등판횟수를 줄일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그만큼 이제 막 빅리그에 첫 발을 내디딘 신인들에게 162경기라는 메이저리그의 기나긴 시즌은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니다.
류현진과 NL 신인왕 경쟁 레이스에 있는 선발투수 성적. ⓒ 데일리안 스포츠
상대적으로 류현진은 그 점에서 유리하다. 이미 한국에서 7년 동안이나 1군에서 풀타임을 소화했고, 5시즌은 180이닝을 막았다. 200이닝 돌파도 두 번이나 있다. 그 차이는 매우 크다. 적어도 후반기 체력싸움에서는 류현진이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유리한 고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장의 성적만 놓고 보면 밀러나 페르난데스가 더 높아 보이지만, 정작 시즌이 종료된 시점에는 류현진의 성적이 더 돋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정작 류현진의 신인왕 수상을 가로막을 가장 큰 경쟁자는 팀 동료 야시엘 푸이그(23)다.
푸이그는 6월이 되어서야 빅리그에 올라왔지만, 출현과 동시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38경기 8홈런 19타점 28득점 5도루 타율 0.391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다. 당장은 경기수가 적은 편이라 신인왕 경쟁 레이스에 뛰어들기 어렵지만, 4할에 가까운 높은 타율과 10할 이상의 OPS(1.038)는 리그 최고 수준이다.
전반기 94경기 소화한 LA다저스는 후반기에 68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푸이그가 지금의 홈런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시즌 20개를 넘길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서 0.330 이상의 타율과 9할대 OPS를 유지한다면, 다른 신인투수들의 성적과 상관없이 푸이그의 몫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난해 NL 신인왕은 139경기에서 22홈런 59타점 98득점 18도루를 기록한 브라이스 하퍼(워싱턴)였다. 하퍼의 타율은 0.270이었고, OPS는 8할대 초반이었다. 그리고 그 하퍼에 밀려 신인왕 투표에서 2위에 머문 웨이드 마일리(애리조나) 성적은 16승 11패 평균자책점 3.33이었다.
아메리칸리그(AL)에서는 마이크 트라웃(LA에인절스)이 만장일치로 신인왕을 수상한 가운데 텍사스의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16승9패 221삼진 평균자책점3.90)는 오클랜드의 쿠바 출신 타자 요이네스 세스페데스(23홈런 82타점 16도루 0.292)에게도 밀려 3위에 머물렀다.
그만큼 메이저리그의 수상자 선정은 타자 쪽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 비슷한 성적일 경우 한국에서는 투수의 손을 들어주는 경향이 있지만 메이저리그는 다르다. 지난 10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신인왕을 수상한 20명의 선수들 중 투수는 7명, 그 중 4명은 리그 정상급 기록을 남긴 마무리투수였다. 선발투수가 신인왕을 차지한 건 고작 3회다.
지금의 추세라면, 푸이그의 예상성적은 지난 시즌의 하퍼나 세스페데스를 능가한다. 류현진이 푸이그를 넘기 위해서는 최소 200이닝 이상 소화하며 평균자책점을 2점대로 끌어내리고, 16승 이상은 거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다.
류현진의 승수 쌓기를 위해선 경쟁자이자 동료인 푸이그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한 둘의 후반기 행보는 더욱 흥미롭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