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상급 한국 쇼트트랙, 중장거리 위주 훈련
단거리 키울 수 없는 구조..지구력과 근육 상극
박승희(22)가 쇼트트랙 500m에서 따낸 동메달이 무척이나 값지다.
한국 쇼트트랙이 세계 정상급을 자랑하면서도 유독 단거리에 약했기 때문에 그 가치는 더욱 올라간다.
박승희는 13일(한국시각)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벌어진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500m 파이널A에서 엘리스 크리스티(영국)에 걸려 넘어지는 불운 속에 전체 4위로 들어왔지만 크리스티의 실격으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날 박승희가 목에 건 500m 동메달은 1998년 전이경이 나가노 동계올림픽(동메달)에서 딴 이후 16년 만에 온 메달이다. 그러나 전이경이 동메달을 획득한 것은 파이널A에서 2명의 선수가 실격되는 바람에 파이널B 1위 자격으로 가져온 것이었다.
파이널A 진출은 1994년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 이후 20년만이었고 파이널A에서 동메달을 따낸 것은 박승희가 처음이다. 이쯤 되면 의문이 생긴다. 왜 한국 쇼트트랙이 유독 단거리에서만 힘을 쓰지 못할까. 실제로 남녀 쇼트트랙이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은 지난 1994년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 때가 유일하다. 여자부에서는 전이경과 박승희 밖에 없다.
이렇게 약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단거리를 극복하지 못할까. 말하자면,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우사인 볼트(자메이카)가 100m와 200m 단거리를 석권하면서도 중거리나 장거리를 뛰지 못하듯, 또는 마라톤 선수가 단거리 종목을 뛸 수 없듯이 단거리 종목과 중거리와 장거리 종목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이상화(24)만 보더라도 여자 500m에서는 볼트만큼 빠르다는 찬사를 받지만 1000m에서는 메달권에 근접하지 못했다.
스피드 스케이팅 강국인 네덜란드도 마찬가지로 단거리에서 약점을 드러낸 것도 같은 이치다. 네덜란드는 스피드 스케이팅이 축구 이상으로 가는 국기이긴 하지만 올림픽에서는 금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소치 동계올림픽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이 사상 최초의 기록이었을 정도다. 스피드 스케이팅 강국인 네덜란드가 단거리까지 가져오기 위해 10년 이상의 각고의 노력과 스포츠 과학 연구가 필요했다.
이처럼 중거리나 장거리에 강하면서도 단거리에서 약점을 보이는 것은 운동량과 근육 사용에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단거리는 단시간에 폭발적인 힘을 내야 하기 때문에 근육이 발달한 선수가 유리하지만 중거리와 장거리는 지구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반대다. 근육이 많으면 많을수록 운동을 하면서 생기는 젖산이 많아지기 때문에 쉽게 지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한국 쇼트트랙은 1000m와 1500m 등에 집중한다는 정책을 세웠다.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은 각 종목에 맞는 선수를 육성할 수 있지만 쇼트트랙 선수들은 개인의 모든 종목은 물론이고 릴레이 종목까지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단거리 전문 선수를 키우기 힘든 구조다. 한국 쇼트트랙은 일찌감치 500m보다는 중거리 및 장거리 전문 선수 육성에 주력해왔다. 중거리와 장거리 선수를 육성하는 것은 나아가서 릴레이 종목에도 큰 도움이 된다. 한국 쇼트트랙이 릴레이에서 강한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박승희의 동메달은 더욱 값지다. 어느 정도 메달권은 기대했지만 그래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따낸 성과다. 박승희가 "메달 색깔은 중요하지 않다. 올림픽 결승에 나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광이기 때문에 메달을 땄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