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광수-김승환, 첫 법적 '동성 부부' 될까
국내 첫 결혼 사례, 혼인신고 불수리 '소송'
"동성결혼 합법화·성소수자 인권 보장" 주장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자들의 삶과 권리를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지난해 9월 국내 최초로 공개 동성 결혼식을 올린 영화감독 김조광수와 영화제작·수입업체 레인보우팩토리 대표 김승환이 혼인신고 불수리 통보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며 이 같이 밝혔다.
이들은 21일 오전 서울 통의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성결혼 합법화과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주장했다.
이 부부는 지난해 9월 동성 결혼식을 올린 뒤 같은 해 12월 10일 서울 서대문구청에 등기우편으로 혼인신고서를 제출했다. 김조 감독은 당시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과 민법 어디에도 동성애자는 결혼할 수 없다는 조항이 없다"며 "국가가 이성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혼인신고를 거부하고,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빼앗는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대문구청 측은 혼인은 양성 간의 결합을 전제로 한 헌법 36조 1항을 근거로, "혼인신고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법원과 함께 법률적 검토를 마쳤고 서류가 도착하는 대로 '불수리 통지서'를 보내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김조 감독 부부가 불수리 처분에 대해 불복하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조 감독 부부 외에 이정미 정의당 대변인, 하승수 녹색당 운영위원장, 장석준 노동당 부대표,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박래군 인권중심 사람 소장 등이 참석했다. 이석태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류민희 변호사 등이 변호인단을 꾸렸다.
변호인단 "평등한 가족구성권·성소수자 인권 존중받아야"
하승수 녹색당 운영위원장은 "한국에서는 다양한 가족구성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할 수 있는 권리, 가족을 이룰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조 감독 부부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했다고 밝힌 이정미 정의당 대변인은 "세상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이 얼마나 큰 고통을 받게 될까 생각하고 있다"며 "모든 인권의 가치가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며 두 사람을 응원했다.
장석준 노동당 부대표는 "유럽에서는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해서 작년에 프랑스까지 동성간의 혼인을 합법화했다"며 "한국은 선진국이라고 자부하지만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변호인단 또한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주장하며 이 부부를 지지했다. 변호인단은 "편견과 차별이 가해지는 성소수자에 대한 보호는 법원의 책무"라고 강조한 뒤 "서대문구청장의 혼인신고 불수리처분은 민법 조항을 오해해 위법하고 부당한 것"이라며 "법원은 결혼식을 올렸고 혼인 의사의 합치가 있는 이 부부의 혼인신고를 수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 민법 어디에도 동성간의 혼인을 금지하는 조항이 없다"며 "혼인의 자유와 평등을 규정한 제36조 제1항에 따라 혼인에 관한 민법 규정을 합헌적으로 해석하면 동성혼 역시 인정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헌법 제36조 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남성과 여성, 양성이 평등해야 하는 것이지 혼인이 성립하려면 두 사람이 반드시 이성이 돼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동성애자가 한국 사회에서 처한 현실은..."
변호인단의 발언이 끝난 뒤 이날 기자회견의 주인공인 동성부부 김조 감독과 김 대표가 등장했다. 두 사람은 담담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했다.
먼저 김조 감독은 "기자회견을 한다는 기사가 나간 후에 헤어진 것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며 "동성애자들은 쉽게 만나고 금방 헤어진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어 "이런 말을 들으면서 왜 사람들이 이런 인식을 갖고 있는지 생각을 했다. 이성애자들도 쉽게 만나고 금방 헤어지는 사람이 있는데 왜 선입견을 갖고 동성애자들을 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조 감독은 또 "변호인단이 우리가 헤어질까봐 걱정하고 있지만 결혼해서 지금까지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소송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동성결혼 합법화와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해 묵묵히 나아가겠다. 우리 부부가 함께 하는 이런 행동이 한국 사회가 발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악성 댓글따위 신경쓰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살겠다"고 강조했다.
김조 감독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말문을 연 김 대표는 "동성간 혼인신고를 합법화하기 위한 투쟁을 벌였다"며 "김조 감독과 부부라는 사실을 매일 느끼고 있다"고 행복감을 드러냈다.
이어 "최근 어머니께서 몸이 편찮으셨는데 김조 감독이 많은 힘이 됐다"며 눈물을 글썽인 뒤 "(저 원래) 냉철한 사람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대표는 "저희가 공개 동성 결혼식을 올린 뒤 많은 동성 커플들이 관심을 보였다"며 "동성결혼 합법화와 성소수자 인권 보장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동성 커플의 인권이 이른 시일내에 존중받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를 향한 시선은 곱지 않다. 지난해 열린 김조 감독과 김 대표의 결혼식에서는 한 시민이 오물을 투척했고 일부 기독교 단체 회원들이 동성 결혼식을 반대하기도 했다. 악성 댓글의 공격 또한 만만치 않다. "참 몹쓸 짓이다", "이런 기사 보기도 싫다", "더럽다" 등 혐오성 댓글이 줄을 이었다.
김조 감독은 이런 반응을 예상한 듯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결혼식을 할 때부터 한국 사회에서 쉽게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혼인신고가 불수리 됐을 때 기분이 나빴지만 처음부터 순탄치 않을 거라 예상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안 썼죠. 대한민국 법원이 올바른 판단을 해줄거라 생각합니다. 성소수자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여러가지 일들을 할 거예요."
김조 감독에 따르면 이번 소송은 한국 민법에 동성부부의 혼인 관련 조항이 없는 것에서 출발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자가 한국사회에서 처한 현실과 삶, 그리고 권리 등을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사회가 변하고 있고 동성애자들을 향한 시선도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있다"며 "우리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길만이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을 깨는 길"이라고 미소지었다.
김조 감독 부부의 소송으로 동성혼인에 대한 논쟁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동성 커플이 혼인신고를 통해 합법적 부부가 된 선례가 없기 때문에 이 부부가 '법적 부부'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2004년 3월 한 동성 커플이 서울 은평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했으나 구청은 "법원의 유권해석을 받아본 결과, 한국에서 혼인신고는 남녀간 결혼을 전제로 한다"며 수리를 거부한 바 있다.
현재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국가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캐나다, 스페인, 뉴질랜드, 프랑스, 남아공 등 14개국이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