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록바·피를로, 월드컵 베테랑 왜 필요한가

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입력 2014.06.16 11:48  수정 2014.06.16 11:59

드록바, 존재감만으로 경기양상 흔들며 대역전극 견인

피를로, 넓은 시야-패싱력-완급조절 ‘잉글랜드 붕괴’

코트디부아르는 드록바의 투입으로 2-1 대역전극을 만들어냈다. (MBC 화면캡처)

월드컵 같이 큰 메이저 대회일수록 베테랑 가치가 재조명받는 경우는 흔하다.

경험과 연륜이라는 것은 흔히 정형화된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기에 과소평가받기 쉽다. 하지만 그 어떤 젊은 천재의 재능으로도 경험을 살 수는 없다. 정말 어려운 시기가 닥쳐왔을 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의 노련미에서 나온다.

2014 브라질월드컵도 예외는 아니다. 실력과 노련미, 리더십을 두루 겸비한 베테랑이 존재하는 팀들이 월드컵에서도 초반 강세를 드러내고 있다.

디디에 드록바(36)를 앞세운 코트디부아르나 안드레아 피를로(35)를 보유한 이탈리아가 좋은 예다. 30대 중반을 넘긴 둘은 축구선수로서는 고령이다. 나이를 감안할 때 마지막 월드컵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어지간한 선수들이 전성기를 지나 은퇴를 생각할 시기에도 두 선수는 변함없이 팀의 중심이며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고 있다.

드록바는 15일(한국시각) 2014 브라질월드컵 C조 조별리그 일본과의 1차전에서 후반 16분 교체 투입돼 2-1 역전승을 이끌었다. 드록바는 비록 이날 직접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그가 투입되자마다 경기 분위기가 달라지며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드록바가 가세하면서 코트디부아르는 공격이 살아나며 전혀 다른 팀이 됐다.

드록바는 일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유형의 공격수다. 괴물 같은 피지컬을 앞세운 제공권과 문전 장악력은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변함이 없었다. 일본 수비수들은 드록바에게 공이 연결될 때마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록바를 상대하느라 쩔쩔매는 사이에 다른 선수들에게 공간이 열렸고 그 틈에 후반 19분, 21분 보니와 제르비뉴의 연속골이 터졌다. 오리에는 정확한 크로스로 2개의 도움을 기록했다. '조커' 드록바의 효과를 톡톡히 보여준 장면이었다.

피를로의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노장임에도 여전히 세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피를로는 15일 잉글랜드를 2-1로 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이날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된 피를로는 역시 공격 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했지만 특유의 패싱력과 넓은 시야로 잉글랜드 수비를 무너뜨리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이탈리아의 첫 골은 잉글랜드 수비가 몰린 틈을 타 훼이크로 볼을 가볍게 뒤로 흘린 피를로의 센스가 돋보였다.

잉글랜드는 웨인 루니, 라임 스털링, 대니 웰벡, 다니엘 스터리지 등 빠르고 역동적인 공격수들을 앞세운 스피드 축구를 선보였다. 반면 이탈리아는 다소 정적이다 싶을 만큼 안정된 수비를 바탕으로 중원에서부터 차근차근 경기를 풀어나가는 완급조절이 돋보였다. 그 중심에 미드필드에서 자유자재로 경기를 조율하는 피를로의 노련미가 있었다.

잉글랜드에서는 과거 챔피언스리그에서의 박지성처럼 피를로를 제어할 수비 스페셜리스트가 없었다. 피를로의 봉쇄 유무가 곧 1차전에서 양 팀의 운명을 갈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록바와 피를로의 존재감은 단지 눈에 보이는 기록이 아니라, 승부처에서 혼자 힘으로 경기흐름을 바꿀 수 있는 장악력과 팀원들에게 안정감을 안겨다주는 리더십에서 비롯된다. 젊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된 홍명보호에도 과거 박지성, 이영표 같은 선수들처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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