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바로잡자고 법을 넘어서겠다는 단원고 유가족의 아집
<기자수첩>입법권은 국민에 위임받은 의원이 행사
3차 합의안마저 거부 특검 참여하겠다는 고집일뿐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을 또 다시 거부했다. 지난달 7일 1차 합의안 거부, 19일 2차 합의안 거부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유가족 대책위원회는 세월호 특별법 3차 합의 직후인 30일 저녁 기자회견을 열어 “최종 합의안을 보면 가족들은 완전히 배제한 채 오히려 여당이 한발 깊숙이 잡아서, 거꾸로 특별검사의 중립성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왔다”면서 “합의안에 대해서 우리는 이 자리에서 받아들일 수 없음을 말한다”고 밝혔다.
유가족 측이 합의안을 거부한 가장 큰 이유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자신들과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초 새정치연합은 여야와 유가족들이 참여해 4명의 특별검사 후보군을 선정하고, 이 가운데 2명을 특검추천위원회가 특검 후보로 추천하는 안을 제시했는데, 합의문에선 유가족들이 제외됐다는 것이다.
유가족 측이 세 번째 합의안까지 거부하면서 더 이상의 협상도 무의미한 상황이 됐다. 재차 협상에 합의한들 유가족들이 만족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입법권은 본래 국회의 권한, 민간이 위임하고 회수할 수 있는 권한 아냐
이날 협상은 장장 7시간 30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첫 협상에는 여야 원내대표와 원내수석부대표, 정책위의장 외에 전명선 유가족 대책위원장도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유가족 대책위가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에게 협상권을 위임했는지 확인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우리가 협상했는데, 다시금 여러분이 ‘우리가 요구한 건 이게 아니다’라고 하면 어쩌느냐. 또 협상이 뒤집어지는 것이다. 그런 걱정을 갖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전 위원장은 “우리와 충분히 논의된 법안에 대해서는 (여당과) 논의하라고, 최소한의 부분에 있어서는 박 위원장에게 (권한을) 충분히 위임한다”면서 “(우리와 논의한 법안이) ‘이 정도 법안이면 진상규명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면 박 원내대표에게 협상테이블에서 (논의)해달라고 위임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유가족 측은 박 원내대표의 협상 결과물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대책위가 위임했다는 협상권은 특별검사 후보군 추천에 유가족들이 참여하는 안 하나뿐이었다. 사실상 협상권을 위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내세운 안에 대한 타결 의무를 부여한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도구에 불과했다.
문제는 법안에 대한 협상권이 애초에 유가족들이 박 원내대표에게 위임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도 “(협상권을 위임한다고 하면) 입법권을 유족들이 가져야 되는데, 전권 위임은 아니다. (이건 국회가 입법권을 민간으로부터) 결제 받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물론 유가족들이 세월호 특별법의 이해관계자라는 점에서 입법 과정에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다. 다만 입법 자체는 국회의 고유 권한이다. 여야 협상 과정에서 민간이 개입해 의안의 가부(可否)를 결정하고, 자신들의 내세운 안에 대해 특정 정당에 입법을 압박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고, 의회민주주의 부정이다.
대책위가 독자적으로 총회를 열어 특정 안을 의결하고, 이 안을 하한선으로 야당 원내대표에게 타결을 요구하는 것은 자신들이 입법에 직접 참여하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세 차례 합의 거부…수사·특검 추천 과정에 직접 참여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밖에
유가족 대책위가 특별법 협상 과정에서 보인 또 다른 문제는 이들의 요구 그 자체다. 표면적으로는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수사의 독립성 보장을 요구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들이 세 차례에 걸쳐 합의안을 거부했던 이유는 자신들이 수사와 기소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앞서 여야 원내대표는 지난달 7일 특별법상 진상조사위원회를 여야 추천 10명(각 5명씩)과 대법원장·대한변호사협회장 추천 4명(각 2명씩), 유가족 대표단 추천 3명 등 모두 17명으로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당초 새누리당은 유가족 추천분을 2명으로 하는 안을 제시했으나, 협상 과정에서 3명으로 늘어났다.
1차 합의안의 가장 큰 성과는 진상조사위원 중 야당과 유가족 측 인사의 비중이 과반을 차지하게 됐다는 점이었다. 일반적인 특위 의사결정이 다수결로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가족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상조사를 진행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진상조사위 내 의결정족수(과반) 확보였다.
하지만 유가족 측은 같은 날 1차 합의안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혔다.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부여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이에 여야는 다시 협상을 벌여 지난달 19일 특검추천위 구성과 관련해 2차 합의를 이뤘다. 상설특검법에 의거, 특검추천위원 7명 중 2명은 여당이, 2명은 야당이 각각 추천하게 돼있는데, 여당 추천분 2명에 대해 야당과 유가족 측이 사전 동의권을 갖는다는 내용이 합의안의 골자였다.
다만 2차 합의안 역시 유가족들의 요구에 한참 모자랐다. 유가족들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라고는 여당이 추천하는 특검추천위원에 대한 동의권이 전부였다. 자신들이 직접 특검추천위원이나 특검 후보군을 추천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2차 합의안 역시 유가족들로부터 거부당했다.
이번 3차 합의안 역시 마찬가지다. 2차 합의안에 따라 야당이 특검추천위에서 의결정족수를 확보하고, 최종 특검 후보 2명 중 1명을 사실상 야당이 직접 추천할 수 있게 됐지만, 유가족 측은 거부했다. 새정치연합과 논의했던 안에서 후퇴해 특검 후보군 추천 과정에서 자신들이 제외됐기 때문이다.
세 차례에 걸친 합의에서 새정치연합은 나름대로 성과를 얻었다. 여야 동수로 구성돼 여당에 발목 잡혔던 과거의 특위, 특검과 비교하면 이번에 특위, 특검 내 의결정족수를 확보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새정치연합은 할 만큼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 직접적인 특검 추천 과정에서 제외되긴 했지만, 지금껏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온 야당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유가족들이 특검 추천 과정에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유가족 측은 이날 합의까지 거부, 자신의 이익이나 권리를 방어·확보·회복하기 위해 사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자력구제금지의 원칙을 부정하며 자신들에게 수사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누구의 말마따나 자신들이 잡아넣고 싶은 사람들을 다 잡아넣어야 직성이 풀릴 모양이다.
자식 잃은 슬픔을,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들을 엄벌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진상규명이든, 책임자 처벌이든 현행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불법을 처단하기 위해 불법을 행하는 것은 결국 또 다른 불법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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