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김정호'가 찾아낸 봉수대의 어제와 오늘
<서평>전국 봉수 30여년간 찾아다니며 인문학적으로 풀어낸 '옛 이동통신 봉수'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가 이랬을까. 수십년동안 이 땅의 굽이진 켠켠마다 숨은 흔적들을 찾아내 사진에 담고 글을 써서 기록을 남겨온 최진연 작가.
데일리안의 문화 전문기자로 활약하고 있는 최 작가가 이번에 펴낸 책은 '옛 이동통신 봉수' (도서출판 강이)다. 그가 이뤄놓은 모든 작업이 그의 발길 손길이 처음이듯 전국의 봉수 현장을 일일이 밟고 눈에 담아온 이는 그가 처음이다.
저자는 집필을 위해 지난 30여년 동안 최전방 DMZ의 도라산봉수에서 제주도 오소포연대까지 봉수대가 있는 곳이면 발로 뛰며 찾아다녔다. 험준한 계곡을 따라 이동하다 자동차 추락 사고를 겪기도 했다.
그는 책에 직접 카메라에 담은 봉수대 사진 400컷과 역사자료, 주변 환경 등을 소상하게 정리해 인문학적 형식으로 풀었다.
봉수 대부분 산 정상에 세워진다. 이 때문에 연구가 입장에서 봉수를 조사하기란 여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이유에서 봉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었다. 소수의 연구자 학위 논문자료나 일부지역의 향토사가의 활약으로 다뤄진 게 전부다.
책은 우리나라 봉수 218개소 중 사라진 7개소를 제외한 현존하는 211개소와 봉수의 시원지로 알려진 진해 망산도비문 1개소를 처음으로 소개하고 있다.
"무거운 카메라장비를 둘러메고 접근이 어려운 산봉우리를 찾아다니는 것은 고행의 연속이었다"고 저자는 회고했다.
저자는 지난 30여년간 전국 관방유적만 전문으로 찍어 국내서 독보적인 사진과 영상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 그동안 그가 펴낸 책만 '경기도산성 여행', '우리 터. 우리 혼 남한산성', '수원화성 긴 여정', '옛 다리, 내 마음속의 풍경' 등 10여권에 이른다.
봉수 더는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봉수는 아직도 갖은 수난을 당하고 있다. 전망 좋은 봉수대는 해맞이 장소로 관광 상품화가 됐고, 지자체 이벤트 행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
몰지각한 지역의 수장은 타 지역 봉수축제에 영향을 받아 봉수를 복원한다며 마구잡이로 파헤쳤다. 일부는 고증절차 없이 복원해 정체불명의 봉수대로 만들었다. 경남과 부산지역의 봉수는 천편일률적으로 복원해 원래 모습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경북 영덕의 대소산봉수는 멀쩡하게 남아 있었으나 지난 2001년 복원하면서 원래 모습이 사라졌다. 유적전문가가 없는 업체가 공사했기 때문이다.
울산 소산봉수는 국회의원을 지낸 분이 산을 매입한 후 봉수 내부의 원래 있던 민묘를 이장하고 부친의 묘를 이곳에 옮겼다. 지난 2011년 본인도 타계하자 부친 묘 아래에 안장됐다. 호국유적에 호화판 묘지가 조성된 것이다.
최 전문기자는 "전국에 산재한 봉수를 연차적으로 조사해 원형이 잘 보존된 유적을 우선 선별해 숲길 따라 등산로를 개설할 필요가 있다"면서 "봉수 주변 잡목을 벌채한 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 국가브랜드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