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에도 불참, 탈당 정동영의 당내 위치란
<기자수첩>당 정체성 야당성 논할 자격 있느냐 비판 소지 많아
탈당설의 당사자인 정동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지난 7일 2.8 전국대의원대회 예비경선에 불참했다. 같은 날 정 고문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났다. 예비경선이 진행된 건 오후 2시부터 3시간 가량. 일정 중 국회에 들러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정 고문은 끝내 국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최근 정 고문의 국민모임 합류 여부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이다. 정 고문은 그간 새정치연합을 향해 수차례 쓴 소리를 뱉어왔다. 야당이 야당 노릇을 못하고, 진보적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것. 문희상 지도부에 대해서도 정 고문은 지난해 11월 전주 시민강좌에서 “구태정치의 전형이자 혁신대상”이라고 비판했다.
정 고문의 지적은 일반적인 야권 지지자들의 목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강성 진보세력은 새정치연합의 우클릭을 경계하고, 일부에서는 세월호 특별법을 비롯한 원내 협상 과정에서 새정치연합의 태도를 놓고 새누리당 2중대라는 비아냥도 나오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정 고문의 목소리는 일정 부분 타당하다.
문제는 정 고문에게 당의 정체성이나 야당성을 논할 자격이 있느냐이다.
먼저 정 고문이 진보정치를 주장하고 나선 건 2008년 총선 이후이다. 이때 서울 동작을에서 낙선한 정 고문은 쌍용차 파업 현장, 한진중공업 파업 현장, 용산참사 현장, 구룡마을, 팽목항 등을 누비며 친서민적 이미지를 강조했다. 처음엔 쇼라는 지적이 잇달았지만, 정 고문의 현장 정치는 7년 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정 고문은 열린우리당 의장 시절인 2004년 당 좌표로 실용적 개혁정당을 제시했었다. 사실상 중도의 개념에 가까운 실용적 개혁은 현재 새정치연합 비대위의 정책노선과도 유사하다.
운동권 출신들의 말을 빌리자면 현재 정 고문의 행보는 변절에 가깝다. 새정치연합은 열린우리당 시절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인데, 정 고문의 생각만 바뀌었다. 또 바뀐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며, 당이 틀렸다고 비판하고 있다. 자신이 보고 느낀 것만 진리라면, 당은 그동안 진리를 외면했단 말인지 모르겠다.
아울러 정 고문이 정계에 발을 디딘 건 1996년 15대 총선 때이다. 이후 16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정 고문은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 급격히 세를 불렸다. 17대 총선에서 정 고문은 노인폄하 논란으로 비례대표직을 사퇴했으나, 같은 해 통일부장관으로 내정됐고, 2006년 열린우리당 의장으로 재선출됐다.
현재 당내에는 정 고문의 정치 선배들이 수두룩하다. 문희상 위원장은 정 고문의 입당 선배이자 의정 선배이다. 여기에 나이도 정 고문보다 여덟 살 많다. 문 위원장과 함께 14대 국회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단 박지원 의원은 문화관광부 장관과 대통령 비서실장, 당 최고위원과 원내대표까지 역임했다.
특히 정 고문은 18대 국회 때 재선거로 당선돼 정치인들이 쓰는 말로 2.5선이지만, 당내에는 4선 이상 중진의원이 14명이나 된다.
정 고문이 당원으로서, 상임고문으로서, 전직 당대표와 대통령 후보로서 당에 조언하고 잘못된 정책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이어진 당의 정체성을 바꾸라고 강요할 상황은 결코 아니다. 현재 정 고문이 당을 향해 내뱉고 있는 발언들은 조언과 비판을 넘어 평론과 비난, 강요에 가깝다.
그렇다고 정 고문의 현재 위치가 탈당을 운운할 만큼 가볍지도 않다.
정 고문은 2004년과 2012년 두 차례의 노임폄하 발언으로 17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당에 민폐를 끼쳤고, 17대 대선 때에는 원내 1당이었던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 26.1%라는 굴욕적인 득표율을 기록했다. 새정치연합이 지속적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은 데에는 정 고문의 책임도 크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 고문의 탈당은 본인의 목소리를 부각하려는, 또는 정치적 존재감을 키우려는 시도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정말 당을 올바른 길로 이끌고 싶다면 비대위에 합류하거나 적극적으로 당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는 것이다.
문 위원장은 지난 6일 국회 출입기자단과 오찬에서 “비판의 끝까지 가는 것은 괜찮지만 탈당과 신당 창당은 이야기가 다르다”며 “그 분은 상임고문을 지낸 분으로 이 당에 99% 책임감을 느껴야 할 사람이다. 오히려 당당하게 비대위에 들어와 어떻게든 배를 건지는 데 몸을 바치겠다고 해야 옳다”고 지적했다.
당 원로 행세를 하며 당 지도부를 훈계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가라앉는 데 자신도 일조한 당을 버리는 것은 상임고문이라는 직책을 떠나 자신을 키워준 당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정세균 의원은 19대 총선 때 자신의 지역구를 버리고 야당의 열세지역인 서울 종로에 출마해 당선됐고, 2011년 재보선 분당 신화의 주인공인 손학규 상임고문은 7.30 재보선에서 낙선한 뒤 정계를 은퇴했다.
정 고문도 이들처럼 불모지에 출마하라는 말도, 정계를 은퇴하라는 말도 아니다. 당 원로로서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다면, 야성을 잃고 정체성이 흔들리는 당을 제 자리로 돌려놓고 싶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위치에서 책임감을 먼저 보였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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