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서 근무한 뒤 뇌종양이 발병한 직원이 제기한 업무상 재해 소송이 대법원으로부터 패소 판결을 받았다. 이번 판결에 따라 현재 진행중인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보상을 위한 조정위원회와 향후 이어질 업무상 재해 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한모(37·여)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를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9일 밝혔다. 뇌종양의 발병이 업무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앞서 한씨는 지난 1995년 10월 삼성전자에 입사해 경기도 기흥공장 액정표시장치(LCD) 사업부에서 6년 동안 근무한 뒤 2001년 7월 퇴사했다. 이후 한씨는 2005년 10월 뇌종양이 발병해 수술을 받았으며 2009년 3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2010년 1월 한씨의 뇌종양의 발병이 삼성전자에서 맡았던 업무와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요양급여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한씨는 이같은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에 불복하고 법원에 소송을 냈다.
한씨 측은 "삼성전자에 근무하며 장기간 납과 같은 유해물질에 노출됐으며 야간근무 및 교대근무가 반복되면서 건강이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1, 2심 재판부는 이같은 한씨의 주장에 대해 "현대의학상 뇌종양의 발병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재직 중 실시한 건강검진에서 측정된 혈중 납 농도의 범위도 건강한 성인 수준이었다"며 "이에 따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대법원 역시 "한씨의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은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에 해당, 이유 없음이 명백하다"며 판결 선고 없이 심리불속행 기각 처리했다. 심리불속행이란 대법원에 상고된 사건 가운데 상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더 이상 심리하지 않고 기각하는 제도다.
이같은 판결이 나자 업계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삼성전자의 직업병 피해자 보상문제를 다루고 있는 조정위원회에 쏠렸다. 업무상 재해가 인정된 직원들의 보상 문제를 논의중인 만큼 직간접적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측은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현재 진행중인 직업병 피해자 보상 논의와는 전혀 무관하다"며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해당 사안에 대한 인과과정을 따져 판결한 것으로 이미 업무상 재해 인정을 받고 보상안을 논의하고 있는 조정위원회와는 관련성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보상의 기준이 되는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대법원이 좀 더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 판례가 나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판결 이후 무분별한 업무상 재해 인정에 선을 긋는 한 사례가 될 것이라는 기대다.
한편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근무한 뒤 뇌종양으로 숨진 이윤정씨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현재 이 소송은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하면서 서울고법 행정9부(이종석 부장판사)에 계류 중이다.
이와 함께 서울고법 행정9부는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전직 삼성전자 직원 황유미·이숙영·김경미씨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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