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마트 직원 성칠은 70세 까칠한 노인이다. 해병대 출신인 그는 진열대 위에 놓인 우유 하나도 흐트러지면 안 된다는 철칙을 지녔다. 혼자 사는 성칠에겐 다정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주변 사람들에겐 '버럭'만 일삼는다.
나무토막처럼 딱딱한 그의 마음은 앞집에 이사 온 금님(윤여정)으로 인해 사르르 녹아내린다. 꽃집을 운영 중인 금님의 미소는 꽃처럼 화사하다. 소녀같이 맑은 얼굴과 작은 체구, 여성스러운 옷차림은 성칠도 변하게 한다.
"예쁘다"는 말이 성칠의 입에서 나온다. 헛헛했던 마음은 이내 설레고 떨리기 시작한다. 장수마트 사장 장수(조진웅)의 조언으로 첫 데이트에 나선 두 사람은 이제 막 사랑의 첫걸음을 뗀 젊은 커플과 다를 바 없다.
금님의 딸 민정(한지민)뿐만 아니라 온 동네 사람들이 성칠과 금님의 만남을 알게 된다. 주민들은 재개발 사업에 유일하게 반대한 성칠을 금님이 설득할 수 있을 거라 판단해 두 사람을 '팍팍' 밀어준다. 그러나 남녀 간의 사랑이 항상 행복하지 않듯 두 사람에게도 위기의 순간이 찾아온다.
영화는 70세 연애초보 성칠과 꽃집 여인 금님을 통해 첫사랑보다 서툴고, 첫 고백보다 설레고, 첫 데이트보다 떨리는 특별한 러브스토리를 그렸다. '은행나무침대(1996), '쉬리'(1999), '태극기 휘날리며'(2004) 등 그간 선 굵은 영화를 만든 강제규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 280억원을 들여 만든 '마이웨이'(2011)의 참패 이후 37억원의 소규모 영화로 돌아왔다.
'장수상회'는 사랑 앞에선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똑같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늘 서툴고,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는 모습이 공감을 자아낸다. 부족한 성칠을 보듬어주는 금님의 따뜻한 시선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박근형 윤여정 주연의 영화 '장수상회' 스틸. ⓒ CJ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말한다. 젊은이들의 사랑만 뜨겁고 소중한 건 아니라고. 황혼 로맨스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찾아온 감정이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더욱 놓치고 싶지 않고 한편으로 짠하게 느껴진다. 영화는 성칠과 금님, 선한 사람들을 통해 소소한 웃음, 감동을 잔잔하게 담아냈다.
극 후반부에 성칠과 금님의 관계가 드러나는 반전이 꽤 충격적이다. 영화는 이때부터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단, 억지로 쥐어짜는 신파는 아니다.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가벼운 연애'가 유행이 된 요즘 영화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묻고, 가족 간의 눈물 나는 사랑도 되새겨보는 기회가 된다.
'꽃할배' 박근형과 '꽃누나' 윤여정 두 노장 배우의 힘은 스크린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MBC '장희빈'(1971) 이후 44년 만에 연인으로 만났다. 노년의 로맨스가 진부하지 않게 느껴진 이유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 배우의 연기 내공 덕분이다.
박근형 윤여정 외에 조진웅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코믹 눈물 연기 모두 나무랄 데 없다. 한지민 엑소 찬열 등 조연들의 연기도 무난하다.
강 감독은 "'장수상회가' 전 세대를 끌어안으며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한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영화는 중년의 삶과 죽음, 사랑을 그린 '화장'(임권택 감독)과 같은 날 개봉한다. 두 영화를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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