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기훈이 K리그에서의 맹활약에 힘입어 슈틸리케 감독의 부름을 받고 태극마크를 다시 달았다. ⓒ 수원 삼성
아직도 많은 축구팬들은 염기훈(32·수원삼성)을 보면 2010 남아공월드컵 아르헨티나전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당시 염기훈은 결정적인 득점찬스를 놓쳐 국민적인 비난을 들었다. 돌이켜보면 염기훈은 일종의 희생양이었다. 1994 독일월드컵 황선홍이나 1998 프랑스월드컵 하석주처럼, 월드컵에서 아쉬운 순간이 나올 때마다 대중은 책임을 집중적으로 전가하고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했다.
아르헨티나전에서 1-4의 실망스러운 참패를 당한 이후 경기를 통틀어 가장 아까운 득점찬스를 놓친 염기훈이 집중표적이 됐다.
그러나 당시 경기에서 부진했던 것은 염기훈만이 아니었다. 당시 대표팀 주장이었던 에이스 박지성조자 아르헨티나전에서는 존재감이 지워졌고, 최전방 공격수였던 박주영은 자책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은 염기훈의 실수를 더 크게 기억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같은 세계적인 공격수들도 득점찬스를 놓치는 일은 드물지 않다.
경기 내내 세계적인 강팀이었던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찬스가 많지 않았던 것을 떠올릴 때, 단지 한 번의 찬스를 놓친 염기훈에게 과도한 비난이 쏟아진 것은 지금 생각해도 억울한 부분이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 한 번의 아쉬움으로 염기훈이라는 선수가 그동안 지역예선 과정부터 대표팀에 공헌해온 모든 노력과 성과까지 폄하되는 현실이었다.
염기훈은 남아공월드컵 이후 차츰 대표팀과 멀어졌다. 2014 브라질월드컵과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도 모두 최종 엔트리 승선에 실패했다. 어느덧 30대를 넘긴 염기훈에게 더 이상 대표팀에서 기회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2015년 6월, 염기훈은 보란 듯이 다시 대표팀으로 돌아왔다. 2014년 1월 미국 전지훈련 이후 처음이다.
K리그에서의 미친 활약이 다시금 염기훈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염기훈은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 7골 6도움으로 두 부문에서 모두 리그 선두권를 달리고 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2골 5도움, FA컵 2도움까지 합치면 무려 9골 13도움, 제2의 전성기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맹활약이었다.
소속팀에서의 활약이라는 원칙을 누구보다 중시했던 슈틸리케 감독은 염기훈을 대표팀에 불러들였다. K리그에서의 맹활약에 따른 당연한 보상이었다. 사실 염기훈은 2018 러시아월드컵을 향해 세대교체를 추진 중인 대표팀에 장기적인 관점에 어울리는 선택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기존 주전들의 공백에 따른 일시적 발탁으로 본다..
염기훈은 일단 먼 미래보다 현재에 충실하겠다는 각오다. "주전 경쟁보다는 내 위치에서 대표팀에 도움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각오를 밝혔다. 선발이 아닌 후반에 투입되더라도 상관없고 오직 대표팀에 기여하겠다는 베테랑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분명한 것은 염기훈의 선발이 본인에게나 K리거들에게 좋은 선례와 자극이 된다는 점이다. 실력만 있으면 나이나 이름값에 상관없이 누구든 대표팀의 문은 열려있다. 더구나 염기훈은 K리그에서의 활약에 비해 대표팀에서는 아직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이번 대표팀 복귀는 염기훈의 진가를 재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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