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아이' 이어 '진짜 사나이'도 남성 성희롱 "왜들 이래"

김헌식 문화평론가

입력 2015.09.08 09:40  수정 2015.09.08 09:48

<김헌식의 문화 꼬기>경쟁 격화 탓만 하지 말고 방송 환경 개선을

2014년 11월 4일, '매직아이'의 출연자 곽정은이 장기하에게 "'장기하가 침대에서는 어떨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로이킴에 대해서도 "어리고 순수해 보이는데 키스 실력이 궁금하다"고 언급했다. 곽정은이 다른 방송에서 성적인 발언을 많이 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 발언은 그냥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다.

더구나 '매직아이'가 19금 토크를 지향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강도는 쎈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이효리는 이미 질외사정까지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곽정은의 발언은 곧 논란이 되었다. 곽정은의 발언은 단지 성적인 수위의 발언 문제가 아니었던 데 이유가 있었다. 그 말은 성희롱이 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그 발언을 누가 했는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일까.

즉 만약 침대와 키스에 대한 발언을 곽정은이 아니라 장기하나 로이킴이 했다면 상황은 매우 달라졌을 것이다. 여성에게 '침대에서 어떨까' 라든지 '키스 실력'을 운운했다면 그 스튜디오 자체가 논란의 도가니가 되었을 것이다. 출연자가 발언자를 제지하거나 질타하는 목소리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행자와 게스트는 알아차리지 못했으며, 제작진도 그것을 편집하지 않고 방송에 내보냈다. 이유는 바로 그 발언을 여성이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발언은 남성과 여성을 통해 삼가야할 말이었다. 이런 오류는 '진짜 사나이'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다.

병영체험에 참여한 여성 출연자들이 하사관의 엉덩이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냥 언급한 것이 아니라 성적인 관점에서 언급을 했기 때문에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이 발언에 대해서 제지하는 출연자도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도 없었고, 제작진도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다. 그냥 내보낸 정도가 아니라 '그녀들의 은밀한 토크'라는 제목을 달고 '화난 엉덩이'라는 이미지에 맞게 특수효과까지 넣었다. 여성의 엉덩이를 남성 출연자들이 언급했다면, 여성의 엉덩이를 이런 방식으로 편집 강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 이는 다른 때와 달리 참 독특한 사례였는데, 성희롱을 당한 남성의 누나와 약혼녀에게 제작진이 사과했다. 본인에게는 사과 안하는 형국이 되었는데 누나와 약혼자가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이다. 여튼 남성들도 이 상황에서 본인이 말하기는 정말 힘들다. 누나와 약혼자가 불쾌했다면, 본인은 더욱 그럴 수 있다. 여성들이 성희롱에 시달리듯이 남성들도 얼마든지 성희롱에 시달릴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더구나 그럼에도 군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공론화하는 것 자체가 제한이 있을 수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무엇보다 성적인 담론이나 농담의 대상으로 적절한가도 봐야 한다. 이 프로그램은 다른 것도 아니고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국군들의 공간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국군의 공간에서 그들을 섹시한 성적 대상으로 삼는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 방식이 정말 타당한지 의문이 든다. 더구나 여군들을 남성 출연자들이 이런 식으로 다룰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예능 프로그램이 연성화되고 금기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다지만, 최소한 지켜주어야할 원칙들이 있다.

'매직아이'와 '진짜 사나이'는 방송에서 남성들의 성희롱은 많이 개선하려하지만 여성의 남성 성희롱은 아직 미진한 것을 보여주었다. 예능 방송프로그램에서 이렇게 연이어 여성 출연자의 남성 성희롱 문제가 계속 이어지는 것은 아직 성희롱에 대한 인식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성희롱은 남성만이 하는 것도 아니며 얼마든지 여성들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근원적으로 성희롱은 남성과 여성의 문제라기보다는 권력의 문제이다. 누가 주체이고 중심인가에 따라 무감각하게 자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직의 역학 관점에서 보자면 담론의 중심축이 누군가에 따라 성희롱은 더 빈번하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분별하는 것이 방송 제작진의 당연한 의무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무엇보다 근원적인 이유로 방송 환경의 악화를 들 수 있다. 매체간 경쟁은 격화되었고, 이를 위해 시청률 잡기에 나선 제작진들이 19금 발언에 둔감해졌기 때문이다. 성적 대상으로 삼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분별도 흐려지고 있는 것이다. 출연자들도 웃겨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이런 성희롱적인 발언을 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고 여성출연자들에게도 그 부담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희롱에 대한 인식 개선만이 아니라 방송환경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 참고로 '매직아이'는 곽정은의 발언이 있고나서 곧 프로그램 폐지가 결정되었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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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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