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오픈]랭킹 1위 롤모델과의 대결에서 완패
경기 중 정현 실력에 '엄지 척' 자신감 충전
테니스 정현, 조코비치에게 받아낸 커다란 신년 선물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승리 이상의 커다란 것을 얻었다.
남자프로테니스(ATP)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호주오픈’ 1회전에서 세계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와 한판 승부를 벌인 정현(세계랭킹 51위·삼성증권 후원)의 이야기다. 정현은 18일(한국시각) 호주 멜버른 로드 레이버 아레나서 개막한 호주오픈 단식 본선 1회전서 조코비치에 0-3(3-6 2-6 4-6)으로 패했다.
예상했던 결과지만 지난 시즌 같은 상황을 떠올려 볼 때 아쉬움은 남는다. 정현의 현재 위상이 지난 시즌 같은 시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정현은 이번 호주 오픈을 앞두고 외신을 통해 달라진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미국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은 지난 8일 ‘밝은 미래가 예상되는 선수’ 7명을 추려 소개했는데 이 가운데 정현의 이름을 세 번째로 거명하면서 “2015년 ATP 투어 기량발전상을 받은 선수”라고 소개한 것.
지난 시즌을 세계랭킹 173위로 시작한 정현은 한 시즌 동안 챌린저급 대회 4차례 우승과 투어 대회 8강 진출,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승리 등의 성과를 거두며 시즌 막판까지 세계 랭킹을 무려 122계단이나 끌어 올렸다. 그 결과 정현은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ATP 투어 기량발전상을 수상하며 2015 시즌을 화려하게 마쳤다.
정현이 이번 조코비치와의 호주오픈 1회전을 앞두고 막연하지만 특별한 기대를 갖게 했던 이유는 역시 지난 시즌 US오픈 남자 단식 2회전에서 스탄 바브린카(스위스)를 상대로 펼친 명승부 때문이기도 하다.
2014 호주오픈-2015 프랑스오픈 우승자로 작년 9월 당시 세계랭킹 5위에 올라 있던 바브린카를 상대로 정현은 0-3 완패했지만 내용상으로는 바브린카가 혀를 내두를 정도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매 세트 승부를 타이브레이크까지 몰고 가는 선전을 펼쳤다. 경기 전 "정현이라는 선수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다"는 식으로 말했던 바브린카는 정현과의 경기 직후 기자회견에서 정현을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했다.
경기 전 주목하는 사람이 별로 없던 바브링카와 정현의 당시 경기는 일약 세계 주요 언론이 소개할 정도로 인상 깊은 경기로 남았다. 정현이 작년 ATP 투어 기량발전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바브린카와의 맞대결이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고도 보인다.
작년 바브린카가 정현을 모른다고 했던 반면 올해 첫 그랜드슬램 대회 1회전에서 정현을 만나게 된 조코비치는 정현을 잘 알고 있었다.
17일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정현에 대해 알고 있느냐’는 물음에 "물론이다. 그는 테니스계에 떠오르는 스타"라고 답했다. 이어 "정현처럼 젊은 선수는 사실 져도 잃을 것이 없는 입장"이라며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해 보이려 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상황이 전개되면 내가 곤란해질 수 있을 것"이라며 경계심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하루 뒤 결과는 조코비치의 완승이었다. 타이브레이크까지 갔던 세트도 없었다. 내용이나 플레이의 질을 놓고 보면 정현은 분명 지난 시즌과 비교해 성장해 있었다.
단점으로 지적되던 서브는 강도가 다소 약하고 첫 서브 성공률이 들쭉날쭉했지만 코트 구석구석 찌르는 코스 공략이 지난 시즌에 비해 한층 날카로워졌다.
베이스라인에서 펼치는 스트로크 플레이와 결코 주눅 들지 않는 패기로 멋진 샷은 수차례 조코비치의 진영에 꽂아 넣었다. 하지만 백핸드 스트로크에 비해 상대적으로 범실이 많은 포핸드 스트로크에 발목을 잡혔고, 또 조코비치의 노련한 경기 운영에는 역부족이었다.
재미있는 장면은 경기 중 정현을 향한 조코비치의 태도였다. 경기 중 정현의 스트로크가 절묘하게 성공되거나 멋진 플레이를 펼친 대목에서 조코비치는 정현에게 박수를 보내거나 엄지를 올렸다. 같은 프로선수로서 보기에 따라서는 무례한 행동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누가 봐도 그 장면은 정현에 대한 조코비치의 애정 어린 시선이 담겨 있는 행동이었다.
자신의 롤모델로부터 기량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정현에게는 결코 잊지 못할 한판 승부였다. 국내 테니스 팬들에게도 이날 정현과 조코비치의 맞대결은 승패를 떠나 자부심을 가지기 충분한 경기였다는 점에서 정현 본인은 물론 한국 테니스 팬들에게도 커다란 신년 선물이 됐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