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월드컵을 지켜본 국내외 스키 관계자들도 정선 스키 코스가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연합뉴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2년 앞둔 시점에서 열린 첫 테스트 이벤트는 알파인 스키대회였고, 그 결과는 모든 대회 관계자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지난 6~7일 16개국 58명의 선수들이 출전한 가운데 강원도 정선 알파인 스키 경기장서 열린 2016 아우디 국제스키연맹(FIS) 알파인 스키 월드컵은 슬로프는 물론 출전 선수들의 기량, 대회 운영 등 모든 면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지난해 2월 정선 스키 월드컵 준비 상황을 점검한 뒤 “대회 개최가 어렵다”고 우려했던 FIS 지안 프랑코 카스퍼 회장은 “한국이 약속을 지켰다”고 기뻐했고, 구닐라 린드버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조정위원장도 “대회 운영에 100점을 주고 싶다”고 높이 평가했다. 정선 스키 슬로프를 경험한 선수들도 대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내렸다.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가리왕산에 위치한 정선 알파인 경기장은 전장 2852m, 표고차 825m의 코스로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과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 비해 길이는 짧지만 가리왕산 하봉(해발 1370m) 정상에서 출발해 최고 경사각 33도, 평균 경사각 16도로 내려오면서 4곳의 점프 지점에서 최고의 활강 기술을 펼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정선 알파인 경기장은 원래 남녀 코스를 별도로 건설할 예정이었지만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일 코스에서 남녀 경기를 모두 치르기로 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활강 동메달, 슈퍼대회전 금메달을 차지했고, 이번 대회 활강에서 우승한 크예틸 얀스루드(노르웨이)는 연습경기 일정을 소화한 뒤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선 알파인 코스에 대해 “코스가 아주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다. 설질(雪質)이 훌륭하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TV 중계방송 화면을 통해 본 정선 코스와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의 모습은 스키의 본고장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대회에서 볼 수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이런 대단한 코스가 국내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게도 여겨졌다. 중계 캐스터는 “정선 코스를 스타트라인에서 아래로 내려 볼 때 마치 낭떠러지를 보는 듯하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가파르고 정선 스키 코스는 난이도 최고의 코스라 할 만하다.
이처럼 훌륭한 시설과 멋진 경기 장면을 보면서도 마음 한편에 여전히 불편한 부분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난 이후에는 더 이상 정선 알파인 코스를 볼 수 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가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 이후 정선 스키 코스를 철거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평창동계올림픽조양호 조직위원장은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올림픽이 끝나면 자연환경을 복원하기로 약속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정부, 환경단체와 합의한 내용을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 위원장의 언급대로 정선 스키 코스가 만들어진 가리왕산의 자연 생태계를 복원하려면 스키장은 온전한 모습을 유지할 수 없다. 철거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에 관계 없이 온전한 올림픽 코스는 유지되기 어렵다. 사실상 철거다.
무려 1600억 원을 투입해 만든 세계적 수준의 스키장을 단 며칠 사용한 뒤 또 만만치 않은 비용을 들여 철거해야 하는 낭비적 상황인 셈이다.
지금이야 말로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가리왕산과 한국 스키계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제3의 길’을 찾아볼 때다. ⓒ 연합뉴스
‘견물생심’이라 했던가. 스키장이 건설되기 전 환경파괴 논란을 빚은 탓에 정선 스키 코스가 좋게만 보이지는 않았으나 막상 완성된 작품을 보니 스포츠팬의 한 사람으로서 욕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정선 월드컵을 지켜본 국내외 스키 관계자들도 정선 스키 코스가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카스퍼 회장은 "코스가 계속 유지돼야 한다"며 "우리는 아시아에 더 많은 다운힐 코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한국과 중국에 다운힐 코스가 생긴다면 일본과 함께 3개 나라에서 월드컵 시리즈를 개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선 월드컵을 중계한 허승욱 MBC 스키 해설위원 역시 경기 중계방송 중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선 코스의 유지가 필요함을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외 스키인들의 하나된 목소리가 그대로 반영될 수 있을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다. 정부와 환경단체의 합의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스키장 운영과 유지관리에 소요되는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지 확실한 대책이 서지 않는 이상 스키장을 유지하는 것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데는 IOC의 대회 분산개최 요구나 가리왕산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최고의 슬로프를 조성할 수 있는 대체 장소를 환경단체를 비롯한 관련 전문가들이 제시했음에도 현재의 장소에 건설을 고집한 평창조직위의 책임이 가장 크다. 일말의 재논의 가능성이 있다면 이 세계적인 스키코스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토론하고 접점을 찾아 봤으면 좋겠지만 지금으로선 약속 이행 외엔 대안이 없어 보인다.
정선 월드컵 대회를 지켜보며 한국도 이제 저런 훌륭한 코스를 갖게 됐다는 자부심이 생기고 세계적인 선수들의 수준 높은 스키실력에 매료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예정된 정선 스키 코스의 슬픈 운명이 떠올라 영 불편했다. 지금이야 말로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가리왕산과 한국 스키계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제3의 길’을 찾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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