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열 "내 삶의 기준은 사랑, 꼭 잡아야죠"
tvN '응답하라 1988' 정환 역으로 스타덤
"소외된 이웃들 돕는 기회 생겨 행복"
사범대를 꿈꾸며 재수 중이던 스무 살 청년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너무 졸린 나머지 서서 공부하다 그 자세로 두 시간을 잤다.
'서서 잠들 정도면 공부는 내 적성에 안 맞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뭘까 고민했다.
다양한 영화를 섭렵했던 청년은 영화 배우가 되자고 결심했다. 연기로 방향을 튼 그는 딱 한 달 연기 학원에 다녀 수원대 연극영화과에 합격했다.
데뷔는 2014년 단편영화 '미드나잇 썬'. 또래 배우들보다 한참 늦었다. '동심', '급한 사람들' 같은 독립영화에만 출연하다 2015년 '소셜 포비아'로 장편 영화에 얼굴을 내밀어 강한 존재감을 뽐냈다. 그해 행운의 작품이 찾아왔다. tvN '응답하라 1988'.
극 중 츤데레(겉으로 무뚝뚝하나 속은 따뜻한 사람을 뜻하는 일본식 신조어) 정환 역을 소화한 류준열(29) 얘기다.
데뷔 2년 만에 스타덤에 오른 류준열은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그가 출연한 작품은 '류준열'이라는 석 자 하나만으로 홍보가 된다.
류준열은 '응팔' 종영 후 tvN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에 다녀왔다. 감기몸살로 목소리가 쉰 그를 최근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약 20일간 인터뷰 대장정을 이어온 류준열은 "오늘이 마지막 인터뷰 일정"이라며 웃었다. 거의 똑같은 질문, 1시간 마다 이어지는 인터뷰에 지치지 않냐, 솔직히 지겹지 않냐고 묻자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며 "매번 재밌다"고 미소 지었다.
'꽃청춘'서 드러난 매력
'응팔'에서 츤데레 매력을 보여준 그는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에서 여행에 최적화된 '가이드' 같은 역할을 해냈다. 능숙한 영어 실력은 기본,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이 한껏 묻어나온다. "같이 간 재홍이, 경표, 보검이가 저를 잘 따라줬어요. 저도 편한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드러냈고요."
류준열은 실제로도 여행을 좋아한다. 동남아는 이미 정복했고 미국, 캐나다, 일본 등 해외 여러 나라도 다녀왔단다. 아직 유럽을 안 가봐서 유럽 여행을 꿈꾼다고.
자신의 여행 기록을 본방 사수 중이라는 그는 "영화, 드라마는 전개를 알고 찍는데 '꽃청춘'은 그야말로 리얼이었다"며 "어떤 장면이 방송에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화제가 된 영어 실력을 언급하자 쑥스러운 듯 웃은 류준열은 "생존 영어"라며 "회화 학원, 미드 등을 통해 배웠다. 자세히 들어보면 완벽하지 않은 영어"라고 겸손해했다.
평소 아프리카에 가고 싶어 했다는 그는 이번 여행을 통해 소원을 이뤘다. "비행기 표도 끊어주시고...사실 준비할 게 없었어요. 가는 사람 입장에선 편했답니다. 하하. 함께한 친구들이 각자 역할을 잘해줘서 재밌게 놀다 왔어요."
동물원에서만 보던 동물을 거대한 대자연 속에서 보는 느낌이 궁금해졌다. "동물들의 터전을 우리가 찾아간 거잖아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이었답니다."
2화에서 류준열은 박보검과 대화하던 중 "아빠랑 축구 여행 다니고 싶다. 아빠에게 돈을 벌면 뭐 하고 싶으시냐고 여쭤 봤는데 빚 갚고 싶다고 하시더라. 우리 집이 밥 굶고 그런 집이 아니다. 그런데 아빠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구나 싶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애틋한 가족 사랑이 드러났다고 하자 류준열은 "전 국민이 우리 집 빚 있는 거 알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웃은 뒤 "여행에서 보검이랑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얘길 한 것 같다"고 했다.
뒤늦은 데뷔…꾸준하게 연기할 계획
늦은 나이에 대중의 사랑을 받은 류준열은 "이런 인기가 부담되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하던 대로 묵묵히, 꾸준하게 연기할 계획"이라고 했다. "큰 작품이고, 기대작이라서 일부러 힘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변하지 않는 자세로 연기에 임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조금만 더 일찍 인기를 얻었으면 어땠을까. "지금만큼 잘 안 됐을 것 같아요. '응팔'이라는 좋은 작품을 만나서 한 번에 알려지는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 같고요. 뜻깊게 생각합니다."
주변에서 "류준열 '떴네'"라는 말도 자주 들었겠다, 인기에 취해 자칫 자만해질 수도 있다. 본인이 변한 것 같으냐고 묻자 그는 "주변 사람들이 날 대하는 게 변했다"며 "항상 조심히, 신중하게 행동하려고 한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조곤조곤 얘기하는 류준열에게서 정환이의 모습이 겹쳤다. 정환이와 닮은 점을 묻자 "츤데레 매력은 닮았지만 사랑에 소극적인 정환이와는 다르다"며 "마음을 표현하지 않은 정환이가 답답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응팔' 촬영 전까지 류준열을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었다. 일어나서 운동, 명상 등을 하고 책도 읽는다. 집중력이 좋은 오전에 바쁘게 지낸단다. 취침 시간은 11시. 잠들기 전에는 '손일기'까지 쓴다. 손편지 쓰는 것도 좋아한다고. 낭만적인 면도 있으니, 여성 팬들이 좋아할 만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드문 남자라고 하자 그는 "나같은 남자들이 의외로 많다"며 "밤을 새우면서 종이학 천마리 접는 정봉이 같은 친구들이 있다. 일기장엔 그 날 기억나고 느낀 것들을 쓰는데 두 박스 정도 모았다"고 했다.
감수성 넘치는 이 청년은 책을 좋아한다고도 했다. 최근 읽은 책은 '지식e' 시리즈. 팬들이 추천하는 시집도 즐겨본단다. 매력이 끝이 없다.
'사랑꾼' 류준열
'응팔' 촬영 전까지 류준열은 초등학교 방과후교실에서 연극과 뮤지컬 등 연기를 가르쳤다. 연기라고 하면 거창하다고 수줍게 웃은 그는 "학생들과 연극 놀이와 게임을 했다"며 "전공을 살리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다"고 했다.
처음에 시작한 방과후교실 활동은 점점 늘어났다. 뿌듯함도 배가 됐단다. 아이들을 위한 목표도 세웠다. "가정 환경이 어려운 친구들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교육자라는 말은 부담스러워요. 교육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전 학생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고 싶을 뿐이랍니다(웃음)."
류준열은 지난 1월 17일 네이버 V앱에서 '응답하라 류준열!'이라는 제목으로 2시간 30분가량 생방송을 진행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누적 재생수는 90만8000여건, '좋아요'에 해당하는 하트수는 약 2800만개에 달했다. 폭발적인 인기를 반영한 수치다.
방송에서 류준열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데 기회가 생긴 것 같아서 신이 난다"고 했다. 따뜻한 마음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는 "학교를 짓고 싶었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 보니 다른 쪽으로 생각 중이다"고 했다.
류준열을 평소 팬들의 말을 경청하고, 조곤조곤 상담해주기로 유명하다. 꿈이 없다고 낙담하는 학생들에겐 이렇게 조언했다. "꿈이 없다고 걱정하지 말아요. 천천히 여유를 갖고 여러 경험을 하다 보면 삶의 기준이 보여요. 꿈보다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뭘까 생각하는 게 중요해요. 멀리 보고 큰 그림을 보다 보면 뭔가 보일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 삶의 기준이 사랑이라고 정의하며 사랑 예찬론을 펼쳤다. "사랑이라는 한 마디로 모든 게 해결돼요. 우리가 기적이라는 얘기하는 순간들이나 어려움을 극복하는 순간들의 힘은 사랑입니다. 꼭 사랑하셨으면 좋겠어요. 사랑이라는 힘으로 자동차를 굴리고 전기도 켜는,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
그야말로 '사랑꾼'이다. 사랑이 희미해진 요즘, 이런 보석 같은 가치관과 사고 방식을 어떻게 지녔는지 물었다.
"사랑은 항상 주변에 있어요. 근데 모르고 지나가는 거고 묻을까 봐 피해 다니는 거예요. 바쁘게 살면 그렇게 돼요.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이 있는데 그걸 잡자는 거죠. 어떻게 보면 정말 쉬운 일인데 어려운 일처럼 돼서 안타까워요. 사랑은 큰 힘이 있어요. 꼭 붙잡길 바랍니다."
류준열은 오는 4월 팬 미팅을 연다. 행사 1500석이 티켓 판매 2분 만에 매진된 데 이어 2차 티켓 예매는 5분 만에 매진됐다. '개정팔' 후폭풍이 거세다.
류준열은 팬들을 자랑하고 싶다고 했다. "팬들이 활동을 기부로 하는데 정말 감동받았어요. 배우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죠. 팬들은 제 자랑거리랍니다(웃음)."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