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초조함은 개성공단 철수에서 시작됐다
<기고>국제사회 제재만 구걸하는 것은 더이상 안돼
개성공단 사업은 감시・통제가 불가능한 김정일・김정은 정권의 외화 획득 창구가 되어왔다. 개성공단이 2005년에 문을 연 이래 근로자들의 최저임금은 미화 50달러에서 초기 2년과 가동이 중단되었던 2013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5%씩 인상되어 2015년 상반기에 70.55달러까지 올랐다.
그런데 이 임금의 15%를 사회보험료로 한국 측 고용주가 북한당국에 추가로 지불해왔다. 그리고 근로자들의 급료 중에서 30%를 사회문화시책비로 북한정부가 공식적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남은 급료도 달러화는 북한당국이 가져가고 그 액수만큼 암시장에서 통용되는 실제 환율이 아닌 공식 환율을 적용하여 북한 돈으로 지급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북한당국은 그나마도 월급을 ‘대체상품’으로 지급하기 때문에 앞의 계산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개성부 제1선(개성지역 휴전선) 민경(민사행정경찰, 국경수비대)으로 8년간 근무했던 이광수 씨의 증언으로는, 개성공단 노동자들에게 북한정부가 월급 대신 ‘대체 상품’을 국정 가격으로 지급하고, 심지어 전담 사무소까지 두어 그 ‘대체 상품’을 집단적으로 시장에 내다 팔아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대체상품이 한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대북원조 식량 혹은 물품이라는 데 있다. 즉, 북한정부는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월급은 미국 달러화로 고스란히 다 챙기고, 그들에게 원조물자만 주는 ‘2중 사기극’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근로자들을 극빈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고 노동착취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세계노동기구(ILO)의 기본정신과 규정들을 완전히 도외시 한 것이다.
개성공단 노동규정 제32조에 의하면 입주한 한국기업은 북한 근로자들에게 현금으로 직접 임금을 지급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북한정부의 요구에 따라 한국의 기업들은 폐쇄 조치 직전까지 임금지급을 북한정부에 위탁하고 있었다. 개성공단 근로자들에 대한 임금갈취는 일차적으로 북한정부가 자행하는 것이지만, 이를 용인한 우리정부 당국자들의 책임도 크다.
북한정부 당국자들의 임금갈취를 제도적으로 용인하는 것은 세계노동기구의 규정뿐만 아니라 최저임금에 대한 개성공단 노동규정도 위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당국이 임금으로 지급된 미화를 갈취하는 것을 막지 않는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1718호의 제8조 (d)항을 위반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그간 개성공단 사업이 “핵, 대량살상무기, 탄도미사일 관련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자국 내 자금과 기타 금융자산, 경제적 자원들”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강변해왔다. 그러나 개성공단 근로자들에 대한 임금갈취가 북한의 몇몇 부정 공무원들이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정부차원에서 총체적으로 자행하는 것이어서 그 돈이 정권의 정책적 목적에 쓰일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도 북한정부의 임금갈취를 호도하며, 그 용도에 대한 증거 불충분 운운하는 것은 제3의 사기극을 연출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들에게 임금과 15%의 사회보험료로 한국 측에서 2012년에 8380만 243달러, 가동이 중단되었던 2013년에는 4587만 548달러, 2014년 8월 현재 북한 근로자 5만 4171명의 급료와 사회보험료로 6293만 2379달러가 지급되었다.
이 미국 달러화 모두가 현금으로 북한의 최고 지도자에게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북한당국은 개성공단을 통해 최소 6억∼7억 달러의 경화를 획득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돈이 김정은 정권의 통치자금,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자금으로 쓰였을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인데, 이를 방관하면서 국제사회에서 대북 제제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 모두의 직무유기다. 그러므로 이번에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폐쇄를 단행한 것은 잘한 일이다.
글/허만호 경북대학교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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