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지는 중진들 잠행, 언제까지 입 다무나
새누리 재선 의원 "쇄신 열의 그렇게 떨어지면 집권 못해"
전문가 "암중모색 끝내고 때 맞춰 설득의 리더십 보여야"
새누리당 중진들의 끝을 알 수 없는 '잠행'이 장기화되고 있다. 당내 쇄신의 목소리가 사라졌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김무성 전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와 다선 의원들은 침묵모드에서 좀처럼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당이 위기일 때마다 '중진 역할론'이 부상했지만 지금 새누리당에는 '중진 무용론'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다.
11일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국회 초선의원 의정 연찬회' 오찬에는 초선 의원들에게 축하와 조언을 해주기 위해 각 당의 중진 의원들이 참석했다. 하지만 유독 새누리당 중진 의원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현역으로는 다른 일정으로 불참한 정진석 원내대표를 대신한 정갑윤 국회 부의장뿐이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에선 우상호 원내대표와 이석현 국회 부의장이, 국민의당에서는 안철수 천정배 공동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가 자리했다.
당 진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회의 때도 저조한 참석률을 기록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같은날 오전 비대위 구성 등 당 쇄신방안 논의를 위해 개최한 4선 이상 중진 연석회의에는 참석대상 18명 중 9명만 모습을 드러냈다. 회의 시간에 맞춰 원내대표실에 나타난 이는 김정훈·신상진·심재철·정갑윤·정병국·조경태·한선교·홍문종 의원 등 8명에 불과했다.
친박계 맏형 서청원 의원과 친박계 좌장 최경환 의원, 비박계 수장 김무성 전 대표를 비롯해 원유철 전 원내대표,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 원내대표 경선에서 패한 나경원·유기준·김재경 의원, 충청 맹주를 노리는 정우택 의원 등은 불참한 것이다.
20대 총선에서 당선되며 8선의 고지에 오른 서 의원은 전면에 나서기보다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태세다. 그는 오는 17일 4선 이상, 19일엔 3선의 당내 의원들과 연이어 만난다. 김 전 대표는 총선 직후 잠행에 들어가 정치 관련 행사는 일절 피하고 있다. 간혹 정치와 무관한 행사엔 얼굴을 내비치고 있다. 진박 마케팅의 중심에 있던 최경환 의원 역시 원내대표 경선에 참석해 투표한 이후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선 의원들의 공백기가 길어지자 원로급 인사들이 그 빈자리를 대신하는 모양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12일 당 상임고문단 오찬을 주재했다. 자리에는 김수한·김용갑·이해구·박희태·유준상·권철현 고문 등 21명이 참석했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오찬 직후 기자들과 만나 "총선이 끝난지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지도부 체제가 이렇게 안 갖춰져서야 되겠나"라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박 전 의장은 혁신위원장 인선과 관련해선 당 출신의 원로그룹에서 선출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동안은 총선 참패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중진들의 잠행에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총선 결과를 두고 '이한구 책임론'과 '김무성 책임론'이 충돌할 때 어떤 변명도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동정론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슬슬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당이 이처럼 진공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중진들이 잠행해버리는 것은 매우 무책임하다"며 "왜 괜히 최고위원을 뽑아줬나 생각이 들 정도"라고 비판했다. 이어 "누군가는 확실한 비전과 전략을 갖고 당 쇄신을 추진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내가 중진은 아니지만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다"고 했다.
또다른 의원은 "당 쇄신에 대한 설문조사의 응답률 저조, 중진회의 참석률 저조 등에 대해 굉장히 실망스럽다"며 "쇄신에 대한 열의가 중진 의원들에게서부터 떨어져서 당이 과연 집권을 하겠나하는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하태경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 나와 "당이 총선 참패하고 나서 책임지고 '내가 백의종군이라도 하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김무성 대표가 백의종군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임기는 끝났지 않나"고 지적했다.
당 밖에서도 이제는 침묵을 깨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용철 부산대학교 교수는 "쇄신의 대상이 본인들이다보니 나서면 공격을 받을까해서 암중모색하는 상황이지만 타이밍을 빨리 맞춰서 설득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조건 잠행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며 "지탄의 대상이 되더라도 반성할 부분은 반성하고 사과하면서 적극적인 당 쇄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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