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 금기의 대표 감독…동성애로 4년만
원작 '핑거스미스'서 한국정서로 재탄생
명불허전. 박찬욱 감독을 설명하는데 무슨 수식어 따위가 필요할까.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로 작품성, 흥행성까지 사로잡은 감독”이라는 사족을 굳이 달 필요는 없다.
복수 3부작과 ‘박쥐’, ‘스토커’ 등 금기와 파격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스토리텔링과 연출로 독보적인 감독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는 박찬욱 감독이 신작 ‘아가씨’로 영화팬들을 만난다. 이번에는 이미 세계 175개국 선판매까지 마친 상태여서 세계적인 거장이라는 표현도 어색하지 않을 전망이다. 물론 영화 ‘아가씨’에 대한 평가는 관객들의 몫이지만.
어찌됐던 기존 영화의 룰을 깨는 과감한 시도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이 또 다른 스릴러 ‘아가씨’를 선보이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엔 동성애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서로 속고 속이는 4명의 인물들간의 ‘관계’를 박찬욱표로 포장해 영화계에 또 다른 큰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국영화로는 4년 만이자 세 번째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의 쾌거를 이룬 ‘아가씨’는 원작의 재해석을 통해 완전히 다른 개성과 스타일로 완성, 관능과 매혹 그리고 팽팽한 긴장감과 서스펜스가 살아있다.
그동안 15년 동안 감금된 남자, 살인 복역 후 복수를 꿈꾸는 여자, 뱀파이어가 된 신부 등 독보적 캐릭터를 창조해 온 박찬욱 감독은 이번에는 거액의 상속녀와 그 돈을 노리고 접근한 하녀의 파격 멜로를 담고 있다.
칸국제영화제에 이어 국내 언론 시사 후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일단 우려 보다는 기대감이 높은 분위기다. 언론들 반응 역시 “가장 돋보이는 연출력”, “박찬욱 영화의 결정판”, “친대중적인 영화”라고 치켜세우고 있다. 물론 잔인한 장면과 더불어 동성간의 베드신은 여전히 갑론을박, 의견이 분분하다.
이와 관련해 서울 삼청동 모처에서 만난 박찬욱 감독은 “사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난 항상 상업영화라고 생각하며 영화를 찍었다. 하지만 어떤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고 그렇지 않은 영화도 있더라. 그 기준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이번 ‘아가씨’를 통해 상업영화가 무엇인지 그 의미를 조금 알게 됐다”고 운을 뗐다.
# 박찬욱 감독 영화는 어렵다? “상업영화만 만들었습니다”
박찬욱 감독하면 ‘파격’ ‘금기’ ‘기존 영화의 파괴’ 등이 꼽힌다. 근친상간부터 뱀파이어가 된 신부, 동성애까지 박찬욱 감독이었기에 가능했고 관객들은 “역시 박찬욱”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박 감독은 파격과 금기를 다루면서도 지극히 상업영화를 만들고자 했고 그 마음은 여전히 변함없다고 입을 모았다.
“영화 ‘올드보이’가 잘 될 줄 몰랐어요. 근친상간이라는 소재가 상업적으로 성공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 역시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반대로 기대했던 ‘박쥐’ 등은 또 잘 안됐단 말이죠. 그 기준을 모르겠더라구요. 그러다 이번 칸 영화제에 출품하기 위해 ‘아가씨’ 영상본을 만드는데 ‘아 내가 생각하는 상업영화란 이거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렇다고 상업영화라는 점만 고려해서 엔딩을 이끌어내진 않는다는 게 박 감독의 설명이다. 이번 ‘아가씨’ 역시 원작에서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삭제하고 한국인 정서에 맞는 장면은 충분히 살렸다. 엔딩 역시 박찬욱 감독이 꿈꾸는 원작소설의 결말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과거 출생의 비밀 부분이나 어머니 세대의 이야기는 분량으로도 그렇고 썩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어요. 반대로 1부에서의 반전, 서로 다른 시각으로 바꿔 보는 장면들, 이 갈아주는 신, 두 여성의 첫 정사신과 대사 등을 잘 살리려고 했죠. 척하는 게임 같은 것에서 오는 설렘과 떨림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게 교묘한 재미가 있지 않나요.”
심혈을 기울여 촬영한 장면 못지않게 감독이 추천하는 신에는 ‘히데코가 흰 기모노를 입고 살롱에서 채찍질 하는 신’ ‘히데코와 숙희가 한 편이 되는 신’, ‘객실에서 히데코가 백작에게 억지로 와인을 먹여 재우는 신’ 등 세 장면이다. 왜 감독이 ‘애착’을 가지는 지는 영화를 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듯 하다.
“하정우를 캐스팅한 결정적 장면이기도 한데요. 평화호텔이라는 객실에서 히데코가 백작을 속여 와인을 먹이는 신이 있죠. 롱테이크였는데 카메라와 배우들의 호흡이 잘 맞은 신이었어요. 백작 본인은 여자들을 잘 다루고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라는 근자감이 있죠. 그에 반해 히데코는 빨리 와인을 먹이려고 하는데 안되는, 그런 가운데 생기는 서스펜스. 특히 김민희의 본색 드러내는 순간 등이 아주 인상적이에요.”
# 왜 제목이 ‘아가씨’인지 아세요? 박찬욱 감독이 밝힌 숨은 뜻
영화 ‘아가씨’의 주인공은 상속녀와 하녀 숙희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하녀가 모시는 아가씨가 제목으로 됐구나 하는 빤한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도 없진 않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에게 의미 그 이상의 의중이 있었다.
“각본을 쓰기 전인 한참 지난 이야기에요. 어떤 식으로 써야 하나 회의를 하다가 ‘하녀는 하녀고 히데코 쪽을 뭐라고 부르나’ 생각을 했죠. 당시 시대적 배경을 봤을 때 ‘아씨’ ‘아가씨’라고 불렀죠. 상류 계급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 쓰던 말인데 아주 쉽고 예쁜 말이기도 하고 사랑스러운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또 다른 의미도 있죠. 남성들에 의해 오염된 단어이기도 하죠. ‘00아가씨’ 등. 그런 오염으로부터 되살리고 싶은 아름다운 말 ‘아가씨’를 쓰고 싶었어요.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원작은 ‘하녀’를 가르키는 말인데 한국의 제목은 ‘아가씨’를 가리키는 말이어서 동등한 균형이 아닌가 싶더라구요.”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기존 영화들의 그 이상의 파격적인 시도도 돋보이지만 무엇보다 장면, 단어, 대사 등이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관객들 사이에서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상업적이지 않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찬욱 감독은 이번 인터뷰에서 “식민지 시대 한일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은 갖고 만든 영화다”라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과연 아가씨와 한일관계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영화 속 그 포인트를 짚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될 듯 하다. 아가씨가 갖는 그 이상의 의미가 담긴 장면들은 곳곳에 숨어있다.
# 박찬욱이 말하는 캐스팅 그리고 동성애 베드신
박찬욱 감독 영화의 또 다른 묘미는 캐스팅이다. 여기에 파격적 새 얼굴 발탁 역시 영화 팬들의 또 다른 관심의 대상이다. ‘올드보이’ 강혜정 역시 영화 개봉과 동시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주목을 받았고 톱배우로 성장했다.
이번 김태리 역시 몇 천명의 경쟁자를 누르고 박찬욱 감독의 뮤즈가 된 것에 대해 기대감이 높은 가운데 거두절미한 캐스팅 비화는 “그저 직감”이었다. 캐스팅 현장에서 만난 지 얼마 안됐음에도 불구하고 직관적으로 임자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자연스러운 외모와 솔직한 태도, 상투적이지 않은 연기 등이 박 감독을 사로잡은 김태리의 매력이었다. 그 느낌은 강혜정과 비슷했다는 전언과 함께.
하정우 조진웅이라는 충무로 막강 스타의 조합에 대해서는 “내가 원한 백작과 이모부 캐릭터는 극단적으로 사악하거나 비열하기만 한 쉬운 인물이 아니었다. 관객들에게 분노를 자아내면서도 불쌍한, 어떤 면에서는 정이 가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한 복잡한 내면의 연기가 필요했다. 아주 절묘한 경계에 있는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여야 했고, 그 결과는 대만족스럽다.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박찬욱 감독의 특유의 연출력도 빛을 발하지만 무엇보다 그런 박 감독의 연출을 밑받침 해준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때문에 어느 장면에서는 극찬을 이끌어낼 수도 있고 어떤 장면에서는 논란이 예상되기도 한다. 자신이 아끼는 책을 모두 잃은 이모부의 분노 장면이나 백작을 가해하는 신 등은 잔인성과 관련해 지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의견이 분분할 것으로 보인다.
“어떤 분들은 더 심했어야 했다고 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는 장면이에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장 가학적인 장면은 이모와 어린 히데코에게 치욕감을 주는 이모부의 장면이죠. 촬영하면서도 너무 싫고 몸이 오그라들어서 외면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두 여성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흔들리는 모습이 정말 기분 나빴죠. 문소리의 연기가 정말 빛난 장면이기도 했어요.”
곳곳의 가학적인 신들에 대한 의견이 분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무엇보다 동성애 파격 베드신이 특히 논란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언론 시사 후 남성적 시각에 입각한 베드신이라는 지적과 더불어 사랑에 빠진 두 여성의 아름다운 정사신이라는 평으로 나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남성적 시각에 입갑했다는 지적은 너무 쉽게 하는 말 같아요. 그런 표현은 감독이 남성이니까 그럴 것이다 라는 선입견 아닌가요. 그 이상의 주장이 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샷에 어떤 장면이 어떻다는 분석적인 지적이어야 나도 거기에 대해 나도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해명을 할텐데 그런 것도 아니고. 저로서는 그런 말 듣지 않으려고 아주 조심했던 장면이었어요. 단순히 노출이 많아서 그렇다는 식의 발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극의 흐름에 입각해 두 사람의 사랑은 망설임도 없이 흘러갔고, 그렇게 속이려던 사람들에게 통쾌함을 준 장면이라 생각해요. 이 영화는 억압에 맞서는 사람의 이야기예요. 그 억압은 구조적이고 내면화된, 그렇기 때문에 철저한 억압이었는데 그걸 끝내는, 벗어나는 그런 사람의 이야기에요. 그것이 주는 아름다움, 그 용기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박찬욱 감독의 ‘상업영화’들은 관객들 사이에서 뜨거운 화두가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뻔할 거 같은 소재에도 뻔하지 않고, 예상되는 장면에서 예상되는 신이 등장하지 않는다. 난해할 수도 있고 지루할 수도 있다. 허를 찌르는 반전이 있기도 하고 잔인함 폭력성도 있다. 베드신 역시 관객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연출해내며 또 다시 ‘논란의 도마’(?) 위에 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가씨’는 전 세계 175개 국가의 영화 팬들과 만난다. 해외 팬들은 과연 박찬욱의 영화를 어떻게 평가할까. 파격과 금기로 대변되는 박찬욱 감독의 이번 신작이 더욱 기대되고 설레는 이유다.
“이렇게 까지 제작비가 많이 들 줄 몰랐어요. 무슨 폭파신이나 추격신도 없고, 2천명 넘는 엑스트라도 없는데 100억 원이 넘는 영화가 될 줄 몰랐죠. 19세 영화라는 점까지 생각해보니 막상 걱정이 되더라구요. 하지만 선판매도 잘 되고 예매율도 높아서 일단 그 부담을 좀 덜었어요. 이젠 발 뻗고 잘 수 있을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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