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난 이정현의 '이유있는' 민생행보
기존 문법과는 확연히 다른 정치행로…야당서 경계하는 요주의 인물?
기존의 문법과는 확연히 다른 정치행로…야당서 경계하는 요주의 인물?
취임 일성으로 "서번트(섬김) 리더십으로 당을 수술하겠다"고 했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최근 틈만 나면 민생 현장을 누비고 다닌다. 일하고 싶다던 바람대로 그는 취임 한 달 가까이 학교와 시장 등 민생현장을 쉼없이 누비며 광폭행보를 펼쳤다. 언론에 알리지 않고 대변인이나 수행비서 없이 혼자 조용히 다녀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여의도 정치권의 기존 문법에서 벗어난 당 대표상을 정립한 것이다.
이 대표의 현장 행보는 가히 살인적이다. 리우올림픽 당시엔 정몽규 선수단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격려하는 것은 물론이고, 울릉도 물난리에는 울릉군수와 관련 부처의 장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지원을 당부했다. 당 대표실은 친절하게 이런 행보 하나하나를 모두 보도 자료로 만들어 언론에 제공하고 있다. 폭염이 한창이던 지난달에는 충남 서산 가두리 양식장을 찾아 주민들을 만났고 정부 지원을 약속했다. 당일 오후에는 보령으로 넘어가 현장 행보를 이어갔다.
높은 곳에서 군림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보다 낮은 자세로 민심의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는 입만 열면 ‘민생’과 ‘정책’을 말한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폭염으로 인한 고교의 집단 식중독 사고와 이례적인 콜레라 발병, C형 간염 확산 등에 대해선 직접 당정협의회를 주재하면서 정부 대책을 요청했다. 보통 당정협의는 당 정책위의장이 준비하고 주재한다.
지난 6일과 7일 1박 2일의 일정으로 전방 한 포병부대를 찾아 병영체험에 나선 것도 과거와는 달랐다. 보여주기식 행보와는 달리 1박 2일동안 병사들과 식사, 좌담회, 야간 훈련 참관, 아침 점호와 구보에 나서며 애환을 나눈 것. 이 대표는 “군복입고 코스프레식으로 잠깐 왔다가는 것보다는 적어도 안보 문제에 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고 말했다.
매년 명절 연휴가 다가오면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서울역이나 용산역 등에 나가 시민들에게 귀향 인사를 해왔던 관행도 과감히 없앴다. 이 대표는 "우리 새누리당은 금년년에 역에 나가서 홍보물을 돌리는 대신 모든 당직자와 의원들이 곳곳에서 민생 현장을 살펴보겠다"고 했다. 이러한 발언은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민생행보 덕에 힘을 얻는다. 당에 따르면 당초 이 대표가 계획한 추석 현장방문은 9건에 달한다.
추석 선물 역시 편지로 대신했다. 그동안 당은 명절 때 전직 대통령과 당 소속 전직 국회의장, 국무총리, 당대표 등 주요인사 100여명에게 선물을 보내왔다. 이 대표는 이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김영란법 시행으로 이번 추석부터 선물 돌리는 것을 자제하고, 그 비용으로 힘든 일을 하는 분들과 정을 나누고 어려운 시설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5일 당사에서 근무하는 경비원.청소노동자 약 15명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추석 선물을 전달할 예정이다. 낮은 데를 돌보겠다는 취지다.
이 대표는 취임 직후 당 지도부 회의에서 최고위원들이 모두 발언을 못하도록 했다. 각자 자기 할 말만 하는 '봉숭아 학당'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다. '비주류'격인 원외 인사를 당직에 중용하겠다는 약속도 최대한 지키려 애쓰고 있다. 현재 원외 인사 기용 비율은 40%를 상회한다. 이 대표의 지난 5일 국회 대표 연설도 과거 여당 대표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보통 '연설비서관'손에 작성된 연설문을 감수·보완했던 과거 대표들과 달리 이 대표는 인터넷 댓글과 언론보도를 뒤져 가며 연설문을 직접 작성했다.
이 대표의 정치 행로는 기존의 문법과는 확실히 다르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광주 시의원에 도전한 그는 2600여 표, 10% 정도의 득표로 낙선했다. 17대 총선에선 광주 서구을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720표, 1%대 득표율에 그친다. 하지만 18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으로 입성한 뒤 2014년 7월, 네 번째 도전 만에 전남 순천곡성에서 재보선으로 당선된다. 득표율 49.3%였다. 국회의원 비서를 시작으로 17단계를 거쳐 대표 자리에 올랐다.
그래서일까, 이 대표는 단 한번도 고자세나 고압적인 태도를 보인 적이 없다. 늘 "도와달라" "살려달라"고 말한다. 그의 워딩에서 명령체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대선 정국이라는 '전시상황'에서 지금까지 새누리당에서 겪어보지 못한 캐릭터는 야당에 위협적인 인물로 일컬어진다. 역대 대선 정국 당대표의 대표적 사례를 살펴보면 본인 자체가 중도 성향이거나 당내 계파 갈등으로지금의 이 대표와 같이 소신있는 행보를 펼치지 못한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황우여 대표최고위원은 2012년 5월 15일 선출됐다. 당시 황 대표는 '친박계'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원내대표가 된지 1년 만에 당권을 손에 넣었다. 본래 황 대표는 무계파 중도성향이었다. 황 대표의 행보에 대해 화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호평도 나왔지만, 우유부단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2006년 7월 11일엔 친박계의 지지를 받은 강재섭 대표가 친이계의 지원을 받은 이재오 전 원내대표를 꺾고 당권을 잡았다. 친박계의 도움으로 당권을 잡은 강 대표였지만 대선 경선과정에서 '박근혜-이명박' 양강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형국에 빠지곤 했다.
실제로 한 야당 관계자는 본보에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누가 나오건 이 대표가 역할을 톡톡히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야당 입장에서는 경계해야할 요주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이 대표는 항상 겸손하고 아랫사람같은 자세를 유지한다"며 "사람들은 이런 태도에 감동하고 이런 사람을 좋아한다. 새누리당의 불모지라 불리는 전라도에서 그냥 재선이 된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추석연휴 전날도, 당일도 민생 현장에서 전투를 치른다. 추석 당일에는 지역구인 순천에 내려가 민심을 청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나 정치권은 항공모함이에요. 한 번씩 움직이려면 시간이 걸리고, 일이 벌어지고 난 뒤에 움직이면 뭐합니까? 그러려면 현장의 소리를 들어야 해요. 내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 때 경청과 스피드, 행동 세 가지의 박자가 맞아야 돼요. 내가 그래서 빨리빨리 움직이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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