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음 속 BIFF, 장률 감독의 흑백 세상 '춘몽'

이한철 기자

입력 2016.10.07 09:01  수정 2016.10.07 09:40

베일 벗은 개막작, 장률이 그린 극과 극 세상

기자회견장 무거운 공기 '양익준 쓴소리'

장률 감독의 영화 '춘몽'이 6일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첫 공개됐다. ⓒ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계속된 논란과 태풍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장률 감독의 영화 '춘몽'으로 시작을 알렸다.

5년 만에 쟁쟁한 작품들을 제치고 개막작 타이틀을 따낸 '춘몽'은 한 여자를 두고 벌어지는 세 남자의 독특한 사랑이야기를 그린 장률 감독의 첫 번째 휴먼 코미디 영화다. 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언론에 첫 공개된 '춘몽'은 가장 개막작다운 개막작이라는 평가 속에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영화 상영 후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장률 감독은 "영화를 만들다가 '춘몽'이라는 제목이 떠올랐다"며 "꿈을 꿀 때는 색깔이 선명하지 않다. 또 수색역에 갔다 온 뒤 생각해봐도 어떤 색깔이 떠오르지 않았다. 평소 꾸는 꿈과 공간의 질감 등을 생각했다"고 제목과 흑백으로 촬영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사실 작품 공개 전까지는 이 작품의 개막작 선정이 의외라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보통 영화제 개막작은 대중들이 좀 이해하기 쉽고 규모가 큰 작품들이 선정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장률 감독은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상업영화"라고 강조해온 장률 감독의 말대로 앞선 작품에 비해 친절해진 장률 감독의 면모를 읽을 수 있었다. 장률 감독은 "선정 소식을 접하고 나도 놀랐다"면서도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무겁지 않은 작품이라 선정된 것 같다"고 밝힌 이유다.

장률 감독이 6일 오후 부산시 해운대구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 컨벤션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영화 '춘몽'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춘몽'은 세 명의 감독들이 배우로 출연했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끌었다. 강수연 집행위원장 또한 "(양익준, 박정범, 윤종빈은)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대단한 감독들이다"며 "세 감독의 작품을 보는 것도 행복하지만, 세 감독의 연기를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한 일이다"고 기대감을 전했다.

특히 세 감독의 대표작 속 캐릭터를 고스란히 작품 속으로 옮겨왔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익준은 '똥파리'의 주인공, 종빈은 '용서받지 못한 자'의 이등병, 정범은 '무산일기'의 탈북자와 닮아 있다.

이에 대해 장률 감독은 "세 감독의 질감이 작품 안에서 묻어나도록 했다"며 의도된 연출임을 강조했다.

영화 속 배경은 극과 극 분위기를 풍기는 디지털미디어시티(DMC)와 수색역이다. 최첨단 디지털 도시로 상징되는 DMC와 서울에서 가장 낙후된 곳 중 하나인 수색역은 장률 감독이 이 작품을 구상한 계기가 됐다.

장률 감독은 "내가 현재 DMC에 살고 있는데, 사람들 표정에서 희로애락이 보이지 않고 준비된 표정만 있다"면서 "하지만 철길 하나만 지나 수색역에 가서 만나는 사람들에겐 희로애락이 보인다. 준비되지 않은 표정들이 있다. 가끔 거친 행동도 하지만, 거친 행동 이면에는 따뜻함이 있다"고 얘기했다.

그는 "왜 자꾸 그 동네를 건너갈까라는 의문점에서 출발했다. 서로 다른 공간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배우 한예리가 영화 '춘몽' 기자회견에 참석해 환하게 웃고 있다. ⓒ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극중 한예리는 '예리바라기'로 분한 대한민국 영화계 대표감독 양익준, 박정범, 윤종빈 감독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이색 케미를 선보인다.

한예리는 "너무 중요한 시점에 있는 영화제에 개막작으로 초청돼 기쁘고 감사하다"며 "좋은 배우들 감독님과 함께 해서 즐거운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예리는 "세 명의 감독을 한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 감독들의 전작들을 보면 더 재밌을 것"이라며 "한 번 보실 때보다 두 번 세 번 볼 때마다 보는 포인트가 달라질 것이다. 처음에 가볍게 그 다음에 무겁게 보셔도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관람 포인트를 전했다.

그러나 영화인들이 보이콧을 선언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은 탓인지, 이날 기자회견 분위기는 무거웠다.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참석 여부를 놓고 심한 갈등을 겪었다고 고백한 바 있는 양익준은 외압논란에 대한 거침없는 쓴소리를 남겼다.

양익준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저에게 영화(세계)의 시초를 만들어 준 고향 같은 곳"이라면서도 "(그동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픈 사건들이 많이 있지 않았나. 혜화동 근처에 사는데 먼발치에서 보면서도 나도 거미줄 안에 놓여 있는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고 고민이 깊었음을 털어놨다.

이어 양익준은 "앞으로 부산국제영화제가 3~40년 정도 되면 안 건드리지 않겠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표현이 중요한데 선택에 대해 관여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며 "왜 만드는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정치 얘기를 하고 잘 때도 대통령 꿈을 꿔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는 69개국 301편의 영화가 상영되며, 이 가운데 월드 프리미어는 96편, 인터내셔널 프리미어(자국 제외 최초 개봉)는 27편을 선보인다. 특히 '뉴 커런츠(New Currents)' 섹션에서 상영될 11편은 모두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될 예정이어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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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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