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민이 야구팬들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순간은 역시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활약했던 2008 베이징올림픽 전승 우승이었다. ⓒ 연합뉴스
‘베이징의 영웅’ 고영민(33)이 은퇴를 선언했다.
2002년 프로야구에 데뷔해 15년 동안 두산 베어스 유니폼만 입고 뛰었던 고영민은 30대 초반의 다소 이른 나이에 현역생활을 정리하게 됐다.
고영민은 2006년부터 주전 2루수로 활약했고 국가대표에도 수차례 발탁될 정도로 기량을 인정받았다. 2007~2008시즌에는 2년 연속 30도루 이상 기록하는 등 스피드와 창의적인 수비를 바탕으로 ‘고제트’ ‘2익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내야수와 테이블세터의 고정관념을 깬 파격적인 스타일로 KBO리그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유형의 선수였다.
고영민이 야구팬들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순간은 역시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활약했던 2008 베이징올림픽 전승 우승이었다. 고영민은 한국야구가 금메달을 확정했던 쿠바와의 결승전에도 출전했다. 9회 1사 만루라는 위기에서 구리엘의 내야 타구를 그림 같은 병살 플레이로 연결시켜 극적인 우승에 일조했다.
2루수 고영민이 유격수 박진만의 송구를 이어받아 먼저 2루 베이스를 받고 선행주자를 잡은 뒤 다시 그림 같은 러닝스로우로 1루에 송구해 병살을 완성시킨 장면은 베이징올림픽 우승의 대미를 장식한 명장면으로 지금도 회자된다.
고영민은 올림픽 우승 이후 이듬해부터 부상과 부진으로 하향세를 겪었다. 고영민의 2루 주전 자리는 어느새 오재원에게 넘어갔다. 두산은 지난 시즌까지 2년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프로야구의 새로운 왕조로 등극했지만 세대교체와 ‘화수분’으로 일컬어지는 두꺼운 선수층 때문에 고영민은 자리를 잃었다.
고영민은 지난해 11월 30일 발표된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며 친정팀 두산과의 결별을 선택했다. 이후 한동안 현역 연장 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내며 새 팀을 찾았지만 결국 둥지를 찾지 못했다.
고영민 은퇴로 베이징올림픽 우승의 주역 24인 중 벌써 5명이 그라운드를 떠났다.
고영민을 비롯해 김동주(전 두산), 김민재(전 한화), 박진만(전 SK), 진갑용(전 삼성)이 이미 은퇴를 선언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간 다른 선배들에 비해 고영민은 아직도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였기에 이렇게 일찍 은퇴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흐르는 세월은 잡을 수 없지만 고영민은 순리를 받아들이고 또 다른 야구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2012~2013시즌 두산 사령탑으로 고영민과 사제의 연을 맺었던 kt 김진욱 신임감독의 부름을 받고 지도자로 새출발하게 됐다.
선수로는 일찍 물러났지만 지도자로서는 남들보다 빠른 출발선에 서게 됐다. 고영민의 환상적인 수비는 더 이상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지만 지도자로서 후배 양성에 기여할 그의 활약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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