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해빙' 이청아 "처음 보는 내 모습 뿌듯"
간호조무사 미연 역 맡아 조진웅과 호흡
"기교, 욕심 부리지 않고 편하게 연기"
간호조무사 미연 역 맡아 조진웅과 호흡
"기교, 욕심 부리지 않고 편하게 연기"
"제 기분이 좋은 걸 보니 영화가 마음에 드나 봐요."
'해빙'(감독 이수연)으로 인터뷰에 나선 배우 이청아(32)의 입에선 말이 끊이지 않았다. 영화와 캐릭터에 푹 빠진 듯했다. 하나의 질문을 던지면 진심을 담은 답변을 술술 풀어놓았다.
대중에게 이청아는 강동원, 조한선과 호흡한 '늑대의 유혹'(2004) 속 발랄한 여고생으로 익숙하다. 두 남자의 호흡을 듬뿍 받은 그는 귀엽고 여성스러운 이미지다. 이 작품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는 '호박꽃 순정'(2010), '꽃미남 라면가게'(2011), '원더풀 마마'(2013), '뱀파이어 탐정'(2016), '운빨로맨스'(2016) 등에 출연했다. 최근작인 '운빨로맨스에'서는 차가운 도시 여자로 분했다.
개봉을 앞둔 '해빙'은 이청아에게 중요한 작품이다. 그간 선보인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미스터리한 이미지를 표현한다. 이청아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영화는 살인 사건의 공포와 맞닥뜨리는 한 내과의사 승훈(조진웅)의 이야기를 그린 심리 스릴러물로, 박신양 전지현이 주연한 심령스릴러 '4인용 식탁'(2003)의 이수연 감독이 14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극 중 간호조무사 미연을 맡은 이청아를 최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영화 인터뷰에 나선 그는 "내 연기가 아쉽다고 느낄 때 인터뷰를 하면 자괴감과 싸우면서 해야 할 때도 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며 "'해빙'은 정말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미소 지었다.
주인공의 시선으로 따라가는 이 영화는 극 중반을 넘어서며 사건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낸다. 극 말미 드러나는 반전과 이후 또 등장하는 비밀을 보는 재미가 있다. 이청아가 맡은 미연은 미스터리한 인물로 극에 긴장감을 조성한다.
이청아는 "승훈을 통해 불안하고 초조한 현대 사회를 나타냈다는 이 감독님의 말씀이 와 닿았다"면서 "짜임새 있는 이야기와 캐릭터에 끌려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고 밝혔다.
영화 속 승훈은 이혼 후 숨이 꽉 막힐 것만 같은 답답한 집에서 산다. 이청아는 "조진웅 선배 집에서 촬영할 때 기분이 묘했다"며 "이삿짐이 정리되지 않은 채 사는 승훈을 보고 독특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이청아는 어느덧 연기 경력 16년 차다. 구체적인 숫자를 언급하자 그는 깜짝 놀라 했다. 연기에 만족하는 편인지 물어봤다. "연기하면서 스스로 뿌듯할 때가 있어요. 이런 부분을 관객들, 시청자들과 나누고 싶어 연기하는 거고요. 근데 좋은 연기가 매번 나오는 게 아니더라고요. 좋았던 순간들은 왜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을까요? 마음에 드는 장면이 계속 이어지면 좋은데 잘 안됐어요. 그래서 일부러 노력했는데 그러면 '연기하는 '티'가 나더라고요."
이번 작품에서는 이런 '티'를 안 냈다고 털어놨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캐릭터와 이야기를 따라갔다고. 영화를 본 지인들의 반응은 새로웠다. '이청아도 욕심,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배우'라는 호평이 잇따랐다. "훌륭한 선배님들은 힘을 들이지 않고 연기하시잖아요. 대단하신 것 같아요. '해빙'에서는 최대한 연기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어요. 많이 자중했답니다."
미연은 속에 '꿍꿍이'가 가득한 인물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은, 정의롭지 않은 인물이다. 미스터리한 인물을 '착한' 이미지의 이청아가 과연 소화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는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었다"며 "감독님과 상의하면서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털어놨다.
외적으로 변화도 줬다. 단정한 간호조무사 이미지를 벗어나 화려하게 표현했다. 혀 짧은소리를 내며 '느끼한' 말투를 뱉었다. 미연이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게끔 신경 썼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신은 동네 슈퍼에서 재훈과 우연히 만나는 장면이다. 이 장면 전후로 재훈에 대한 미연의 감정이 변한다. 의상에도 신경 썼고, 상황에 맞는 애드리브도 했다. 감독은 이 장면을 걷어내지 않고 고스란히 남겨뒀다.
배우가 속을 알 듯 말 듯 한 미연이를 어떻게 해석했을지 궁금했다. "미연이는 꿈이 없고, 철없는 친구예요. 저와는 완전히 다른 친구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제가 학창시절 때 미술, 글쓰기 등 이것저것 많이 했는데 진득하게 한 적이 없어요. 이런 모습을 떠올리며 미연을 받아들였어요. 연기할 때 뭔가를 많이 하지 않아도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 수 있었던 작품은 오랜만이에요. 정말 편하게 연기했습니다."
배우가 꼽은 '해빙'의 관전 포인트는 무엇일까. 그는 "요즘엔 규모가 크고, 자극적인 영화가 많은데 '해빙'은 그렇지 않다"면서 "공포 장치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아서 궁금하게 하는 점이 매력이다. 불안과 초조함을 활용한 속도감 있는 전개, 감독님의 매끈한 연출도 볼거리다. 너무 진지하지도 않은, 킬링 타임으로도 괜찮은 영화"라고 강조했다.
작품에 대한 애착이 커 보인 그는 감독에게 이런 말을 했단다. "현장에서 엄청 혼나고 깨져도 자존심 안 상해요. 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 됐으면 합니다. "
배우의 애정과 노력 덕에 이전 작품보다 호평이 잇따른다. VIP 시사회 때도 어느 때보다 많은 지인을 불렀다고. 엄마 기일에 시사회를 열게 된 그는 "동생이 유학 중이라 아버지가 혼자 계셔서 못 오시게 됐다"며 아쉬워했다.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은 것 같은 엔딩 장면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엔딩을 좋아해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잖아요. 연출에 대한 감독님의 자신감이 드러난 부분입니다. 배우들도 대단하고요."
배우들끼리는 각자 맡은 캐릭터대로 자연스럽게 호흡했다. 이청아는 "진웅 선배님은 외로운 평상시에도 외로운 승훈의 분위기였다"며 "극 중 캐릭터처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연기했다"고 했다. "수간호사 역을 맡은 윤다경 선배님과는 붙는 신이 많아서 친하게 지냈어요. 호호. 제가 선배님들한테 싹싹하게 잘하는 편이거든요. 이번 작품에선 캐릭터 탓에 조심스럽게 접근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진중하게 말을 하는 이청아에게 '늑대의 유혹' 속 발랄한 여학생은 없었다. 차분하고 '여성여성'한 분위기만 있을 뿐. "'늑대의 유혹' 때문에 절 귀여운 여동생 이미지로 보는 분들이 많아요.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당시 총 세 작품의 섭외가 들어왔는데 '늑대의 유혹'을 하게 됐어요. 만약 다른 작품을 선택했으면 다른 이미지로 살았겠구나 싶죠. 지금은 나이와 성격이 조금씩 맞아가는 단계인 듯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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