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하연수의 가장 순수한 순간
첫 사진집 '온 더 웨이 홈(on the way home)'
"뿌듯하면서 민망해…지금은 배우는 단계"
첫 사진집 '온 더 웨이 홈(on the way home)'
"뿌듯하면서 민망해…지금은 배우는 단계"
"사진 찍을 때 가장 솔직하고 순수해져요. 걱정, 고민 없이 렌즈를 통해 사물을 바라보죠. 연기할 때는 항상 고민하는데 사진 찍을 때는 본능이 앞서요. 아무 생각 없이 사진 찍는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갑니다."
지난 6일 첫 사진집 '온 더 웨이 홈(on the way home)'을 낸 배우 하연수(본명 유연수·26)는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사진의 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하연수는 데뷔 때부터 알고 지낸 포토그래퍼 리에와 함께 사진집 작업에 참여했다. 약 1년에 걸쳐 알프스, 포르투갈, 폴란드를 여행한 여정을 사진집에 담았다.
사진집 중간에는 반쪽 분량의 에필로그가 있다. 사진집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었다. 27일 서울 신사동에서 사진작가로 첫 발걸음을 내디딘 하연수를 만났다.
사진의 재미에 푹 빠진 듯한 그는 인터뷰 내내 '소녀 소녀'한 미소를 지으며 사진집을 소개했다. 사진집은 벌써 1쇄가 팔려나갔다. 하연수는 홍대 근처 카페에서 전시회도 열어 독자들을 만났다.
하연수는 "상업적인 가치보다는 경험에 중점을 두며 사진집을 기획했다"며 "운이 좋게 사진집을 내게 됐는데 막상 결과물을 보고 나니 뿌듯하기도 하고, 부족한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처음엔 독립출판으로 책을 내려고 했단다. 그러다 한 출판사와 인연이 닿았고, 하연수·포토그래퍼 리에·출판사 대표가 머리를 맞댄 결과, 사진집이 빛을 보게 됐다.
하연수는 기회부터 편집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했다. 사진 4000여장 중에 책에 들어간 100장 정도를 골랐고, 고른 사진을 1만번 정도 보면서 검토하고, 또 검토했다. 배열, 디자인도 직접 한 터라 출간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지난해 여름 다녀온 포르투갈·스위스를 위주로 올해 1월 초 사진집을 낼 예정이었으나 겨울에 다녀온 폴란드(자코파네·크라쿠프·바르샤바) 사진까지 넣으면서 출간이 늦어졌다.
제목 '집으로 오는 길'은 리에가 지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여행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연수도 동의한 제목이다. 글자 하나부터 표지 디자인 등 출판 전 과정에 참여했으니 애착이 클 수밖에 없다.
쑥스러운 듯 웃은 하연수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사진집을 내게 돼 민망하다"며 "사진을 훑어보면서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어딘가에 다시 간다면 '어떤 사진을 찍을까'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될 것 같다"며 "어떤 자리에서든 안주하면 발전이 없다. 앞으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두 눈을 반짝였다.
리에의 권유로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게 된 하연수는 "필름 카메라가 주는 아날로그 분위기가 좋다"며 "계속 보고 싶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했다.
포르투갈과 폴란드를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전 화려한 것보다 소박한 분위기에 끌려요. 손때 묻은 듯한 오래된 분위기가 그 자체만으로 매력 있거든요. 두 나라의 울적하고 쓸쓸한 감성도 좋아한답니다. 호호. 사연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렌즈에 담는 것도 좋아하고요."
포르투갈엔 무려 세 차례나 갔다. '제2의 고향' 같은 느낌이란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보고 포르투갈에 매력을 느낀 하연수는 드라마 '전설의 마녀'(2015) 종영 후 독일에 유학 중인 친구 집에 머물면서 유럽여행을 했다. 이후 필름 카메라를 들고 본격 여행을 시작했다.
폴란드에 끌린 것도 영화 때문이다.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문라이팅'을 보고 폴란드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 영화는 런던에 밀입국한 폴란드 건설인부 4명이 한 아파트의 내부 수리를 하며 보내는 약 두 달간의 생활을 담았다. 영화를 열심히 소개한 하연수는 폴란드의 여름과 겨울을 카메라에 또 담고 싶다고 했다.
'나홀로 여행'이 외롭지 않았는지 물었더니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갔을 땐 외로워서 울기도 했다"며 "가는 곳마다 커플이어서 그랬다"고 웃었다.
하연수는 주로 할아버지, 할머니,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렌즈에 담았다. 그의 사진을 보노라면 지친 마음이 따뜻해진다. 하연수의 맑은 시선과 감성이 오롯이 느껴진다. "어르신들과는 언어가 다른데도 대화가 돼요. 짧게 몇 마디 나누고,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많은 걸 배우고 느낀답니다. 그분들을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리워요. 아이들에겐 특유의 발랄함, 순수함, 사랑스러움이 있고요(웃음)."
하연수는 가장 '하연수다운 시간'이 사진 찍는 순간이라고 정의했다. "음...나다운 게 사실 뭔지 잘 모르겠어요. 아마 지금 찾는 과정이겠죠. '스물여덟의 하연수'는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고, 생각한 건 꼭 행동으로 해야 하는 사람이에요. 즉흥적인 성향이 사진과 잘 맞는 듯해요. 가장 '하연수다운' 성향이 사진에 투영된 거지요."
하연수는 그림을 10년 넘게 그렸다. 다섯 살 때 친오빠가 미술학원에 다니는 걸 부러워하던 소녀는 학원 대신 집에서 낙서만 했다. 그러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하는 미술 강좌를 들었지만 백화점이 부도나는 바람에 이마저도 관뒀다. 울며불며 미술 도구를 챙겨온 소녀는 얼마 지나, 드디어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배우게 됐다. 당시 9살이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열심히 노력했어요. 예중을 졸업하고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4시간만 자면서 그림에 매달렸어요. 그땐 '그림'에 미쳤다고 생각했으니까요(웃음)."
한국에서 그림으로 먹고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는 그는 당시 좌절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포기를 후회하진 않는다고 했다. "유학 가면 어땠을까 생각한 적도 있는데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요. 10년 동안 할 만큼 했으니까요."
동화작가가 되고 싶었다는 그에게 예술 분야에 '끼'가 있는 것 같았다고 했더니 "아니오"라는 단호박 답변을 들려줬다. "그림을 10년, 연기를 5년 했는데 평생 직업이라는 게 있을까 싶어요. 전 제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그게 연기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지금은 다 배우는 단계예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어요. 많이 생각해서 제가 이룰 수 있는 걸 해보고 싶어요. 요즘엔 글쓰기에도 관심 있어요!"
앞으로 찍고 싶은 사진에 대해선 "'가족'을 주제로 찍고 싶다"며 "우연히 알게 된 프랑스 아이들도 렌즈에 담고 싶다"고 미소 지었다. "지금은 제가 무엇을 찍고 싶은지 고민하고 찾는 단계예요. 여러 사진집과 전시회를 보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열심히 찍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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