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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천우희 "왜 사연 많은 역할만 하냐고요?"


입력 2017.04.05 09:01 수정 2017.04.07 09:11        부수정 기자

영화 '어느날'서 1인 2역 소화

"밝고 다채로운 캐릭터 하고파"

영화 '어느날'에 출연한 천우희는 "청순가련형 여주인공의 이미지를 깨고 싶었다"고 밝혔다.ⓒ데일리안 김나윤 기자

영화 '어느날'서 1인 2역 소화
"밝고 다채로운 캐릭터 하고파"


배우 천우희(29)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범상치 않음'이다.

2004년 '신부수업' 단역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천우희는 '마더'(2009), '써니'(2011), '카트'(2014), '한공주'(2014)', '해어화'(2016), '곡성'(2016) 등을 통해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줬다.

필모그래피를 뜯어보면 평범한 캐릭터는 없다. 사연도, 이야기도 많다.

이번엔 주연한 영화 '어느날'(감독 이윤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후 영혼이 돼 세상을 보기 시작하는 미소 역을 맡았다.

'어느날'은 혼수상태에 빠진 여자의 영혼을 보게 된 남자 강수(김남길)와 뜻밖의 사고로 영혼이 돼 세상을 처음 보게 된 여자 미소(천우희)가 서로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현실에 발붙인 듯, 아닌 듯한 비범한 캐릭터를 맡은 천우희를 3일 삼청동에서 만났다.

스크린에서 하늘색 니트 원피스 하나만 소화한 천우희는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취재진을 반겼다. 작품 속 이미지와 달리 천우희는 실제로 만나 보면 밝고, 소녀소녀한 배우다.

영화 '어느날'에 출연한 천우희는 "인간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작품에 더 끌린다"고 전했다.ⓒ데일리안 김나윤 기자

그런데 맡은 역할이 이렇다 보니 대중은 그를 '무언가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 이미지로 본다.

천우희에게 '곡성'에 이어 또 영혼 캐릭터를 맡았다고 했더니 "이번엔 내면적인 고뇌를 하는 캐릭터"라며 "그간 맡은 캐릭터가 어둡다 보니 밝은 역할을 하고 싶어 '어느날'을 선택했다. 근데 밝지 않더라"고 웃었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보고 '낯간지러운 캐릭터'라 거절했다는 그는 "낚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처음에는 크게 끌리지 않았고, 캐릭터가 정형화된 느낌이라 주저했다. 이후 감독님과 김남길 오빠를 만나서 불안감이 해소됐고, 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고 설명했다.

김남길은 천우희에게 '어느날'이 한국 영화계에서 '허리'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했단다. "어찌 됐든 제가 선택한 영화입니다. 청순가련한 여주인공 캐릭터를 깨보고자 했어요. 평소 밝은 제 모습도 캐릭터에 녹였고요."

요즘 천우희의 미모는 물이 오른 듯했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예쁘다. 극 중 입은 하늘색 니트 원피스 설정에 대해선 환자복과 다른 의상 중 선택한 거라고. 가장 '미소다운 옷'이란다.

영화 '어느날'에서 미소로 분한 천우희는 "예전보다 밝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털어놨다.ⓒ데일리안 김나윤 기자

영화의 원래 제목은 '마이엔젤'이었다. 천우희는 "'마이엔젤'이 조금 낯간지러운 느낌이 있다"며 "다들 '어느날'이 더 낫다고 했다"고 말했다.

'어느날'은 누구나 지닌 상처와 아픔에 대한 이야기다. 남녀 간의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와는 결을 달리하는 작품으로 사랑을 넘어 상처, 외로움, 아픔 등 삶 전반을 다룬다.

강수와 미소는 서로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천우희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서로의 아픔이 보는 관계"라며 "정말 간절했고 필요했기 때문에 상대방을 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 사이에 연인이 품은 감정은 없다"며 "만약 로맨스가 주가 됐다면 영화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녀 둘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로맨스 영화가 될 필요는 없지 않냐. 남녀 간의 감정을 사랑으로만 구분 짓는 건 고정관념이다. 영화를 찍을 때 이 부분을 최대한 신경 쓰며 촬영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연기는 큰 숙제였다. 편견으로 다가갈 수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흉내 냈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표현하려고 했어요. 열심히 분석하고 준비했습니다. (시각장애인이)일반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더라고요. 다만 디테일한 묘사에 있어선 아쉬움도 느껴요."

천우희는 눈물 한 방울, 눈빛 연기만으로도 관객의 심장을 건드리는 묘한 마력이 있다. 눈물 연기 철학이 궁금해졌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려고 해요. 우리가 울 때는 감정도, 울음도 참으려고 하잖아요. 마냥 눈물을 펑펑 쏟아야 한다는 압박은 없어요. 어떤 사람에게 슬픈 일이 생기면 표정만 봐도 알잖아요. 연기도 똑같아요. 슬픈 마음이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담기는 듯합니다."

영화 '어느날'에 출연한 천우희는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다"고 고백했다.ⓒ데일리안 김나윤 기자

시사회 때 천우희는 '어느날'에서 인생 연기를 했는데 발만 나와서 아쉽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그는 "지금까지 찍은 모든 영화의 매 신, 테이크를 다 기억한다"고 털어놨다. "현장, 느낌, 감정이 다 기억나요. 같이 연기한 배우들끼리 합도 생각나고요."

영화의 마지막 설정은 생각할 거리를 던지기도 한다. 천우희는 "의견이 분분하다"며 "그 상황에 대해서 '맞다', '그르다'라고 쉽게 말할 순 없다. 내가 그 상황이 닥쳐 봐야 알 듯하다"고 강조했다.

작품을 마칠 때마다 '딸'을 시집보내는 느낌이라는 그는 "(작품을) 보내기 시를 때가 있다"며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드는데 촬영이 끝난 후에는 하루빨리 캐릭터나 작품을 털어버리려고 한다"고 했다.

'어느날'은 천우희의 밝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천우희는 "밝은 역할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다채로운 캐릭터에 도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제가 칙칙한가 봐요. 호호. 분위기를 좀 바꾸려고요. 어두운 캐릭터만 맡으니깐 절 아는 사람들이 걱정해요. 팬들도 그렇고요. 비슷한 캐릭터만 들어와서 '나한테 다른 면도 있는데 왜 궁금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은 더 쉽고 밝고 예쁜 캐릭터 하는데 난 항상 이렇게 어려운 것만 할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근데 결국엔 다 제가 그런 작품을 선택한 거였죠."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배우 같은 천우희는 "인간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작품에 더 끌린다"면서 "그래도 예전보다 밝은 작품이 들어와서 감사하다. 작품이 잘 될수록 더 쉽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제작 환경 등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있다. 이런 고민은 내가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예전보다 좀 더 큰 그림을 보게 됐다"고 웃었다.

영화 '어느날'에 출연한 천우희는 "앞으로 더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데일리안 김나윤 기자

예능이나 TV 드라마 출연을 권유했더니 "예능은 겁이 나고, 드라마는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하고 싶다"고 했다. "'한공주' 이후 웹드라마에 출연했는데 다들 '천우희, 왜 저래' 반응이었어요. 절 멀게 느끼시더라고요. 하하. 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대해 두렵지 않은데 보시는 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어요. 정답이 있는 건 아니라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요. 이미지가 소모될 수도 있지만 과감하게 도전할 겁니다."

연기 잘하는 천우희 앞엔 '믿고 보는 배우'라는 타이틀이 온다. 쑥스러운 듯 웃은 그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면서 "감사한 수식어인데 작품 선택을 잘못해서 (대중을) 실망시킬까 봐 부담된다. 앞으로 작품 선택을 잘해야겠다. 난 이제 막 시작한 배우일 뿐이니 왕성하게 활동할 계획이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남자 배우들이 장악한 충무로에서 여배우로서 고민하는 부분도 있다. 배우로서 신념을 지켜야 하느냐, 아니면 대중이 원하는 작품을 보여줘야 하느냐의 고민이다.

"다양한 작품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특히 완성도가 있는 작품을 보여드려야 하잖아요. '신여성' 캐릭터에도 관심이 많지만 제작이 쉽지 않기도 하고요. 의견을 피력하는 게 맞는지, 아닌지도 헷갈리고요. 괜히 나섰다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여배우들이 소모적인 캐릭터나 남자 배우들을 받쳐주는 캐릭터를 맡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까워요. 그냥 기다려야 하나, 아니면 무언가를 해나가면서 변화를 보여줘야 하나 고민합니다."

배우로서 '걸어가고 싶은 길'에 대해선 "예전엔 거창하게 세웠는데 지금은 주어진 만큼 최선을 다하고, 책임감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목표를 세웠다고 해서 그걸 다 이루는 건 아니더라고요. 연기할 때는 완벽하게 하려고 해요. 어렵지만 언젠가는 될 거예요.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연기 잘하는 배우이자 좋은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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