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백' 손흥민이 남긴 쓰디쓴 메시지
FA컵 4강서 EPL 데뷔 첫 윙백 출전..결정적 실책
연속골에도 케인-알리-에릭센 보다 신뢰도 떨어져
[토트넘 첼시]한국 축구팬들은 2007-08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잊지 못한다.
AS 로마와 바르셀로나를 물리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결승에 진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박지성(은퇴)이 벤치에도 앉지 못했기 때문이다. 승부차기 접전 끝에 맨유가 우승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당시의 박지성과 한국 축구팬들은 활짝 웃지 못했다.
23일 오전 1시15분(한국시각)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서 킥오프한 ‘2016-17 잉글리시 FA컵’ 준결승 토트넘-첼시전 선발 명단도 한국 축구팬들을 당황하게 했다. 최근 6경기 8골을 터뜨리며 토트넘 상승세를 이끌던 ‘공격수’ 손흥민이 ‘윙백’으로 선발 출전했기 때문이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프리미어리그(EPL) ‘선두’ 첼시를 맞아 스리백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고, 부상에서 복귀한 ‘주포’ 해리 케인과 델레 알리,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이끄는 공격진에 변화를 주기도 어려웠다. 최상의 몸 상태를 자랑하던 손흥민을 제외하는 것 역시 어려웠다.
‘윙백' 손흥민이 던져준 메시지
토트넘이 에릭센의 날카로운 크로스와 케인과 알리의 득점력을 앞세워 마지막까지 첼시를 괴롭혔지만 2-4로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손흥민은 프로 데뷔 이후 처음 나서는 윙백에 적응하지 못했다. 공격 가담을 최대한 자제하고 수비에 집중했지만, 위치를 잡는 것도 힘겨웠다. 몇 차례 상대 뒷공간을 파고들기도 했지만, 공격에 가담할 타이밍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전반 막판에는 뼈아픈 실책까지 저질렀다. 전반 41분 손흥민이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파고든 빅터 모제스를 막는 과정에서 시도한 태클이 페널티킥으로 이어졌다. ‘수비수’ 손흥민이 중앙에만 집중하다 측면의 모제스에 공간을 내주면서 발생한 상황이다. 모제스의 ‘다이빙’을 의심할 수도 있었지만, 그의 영리함이 ‘윙백’ 손흥민의 미숙함을 잘 이용했다.
손흥민은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공격에 힘을 실어보려 했지만, 윙백으로 공격에 가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페널티박스 부근으로 진입하는 모습은 보기 어려웠고 슈팅도 없었다. 측면에서 뒷공간을 파고들거나 크로스를 올리는 것이 이날 그에게 주어진 공격 임무였다.
결국, 손흥민은 후반 22분 ‘진짜 윙백’ 카일 워커와 교체됐다. 5경기 연속골과 시즌 20호골을 기대했지만, 그의 도전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마무리됐다. 손흥민 교체와 함께 균형을 이루던 경기도 첼시 쪽으로 기울었다. 교체 투입된 에당 아자르와 네마냐 마티치가 연속골을 터뜨리면서 토트넘은 고개를 숙였다.
이날 경기는 손흥민에게 두 가지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토트넘의 스리백 전술에서는 손흥민이 뛸 수 있는 자리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케인이나 알리, 에릭센 중 한 선수가 부상을 당하지 않는 이상, 손흥민은 공격에 위치할 수 없다. 윙백 역시 대니 로즈가 부상에서 돌아온다면 출전하기 어렵다.
두 번째는 손흥민에 대한 포체티노 감독의 신뢰가 주전 공격진(케인-알리-에릭센)과 비교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손흥민이 4경기 연속골을 터뜨리며 팀에서 가장 좋은 몸 상태를 자랑했음에도 공격의 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것은 신뢰의 차이 때문이다.
토트넘에서 케인과 알리, 에릭센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마어마하다. 리그 24경기 출전 20골을 기록하고 있는 케인은 부동의 원톱이고, 시즌 20호골(시즌 16골)을 터뜨린 알리도 손흥민보다 득점이 많다. 알리는 기복도 적다. 올 시즌 첼시전 3골, 맨체스터 시티전 2골이란 기록이 증명하듯 큰 경기에서도 강하다.
에릭센도 마찬가지다. 정확한 킥과 노련한 경기 운영을 바탕으로 케인과 알리, 손흥민의 득점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날 역시 정확한 크로스 능력을 뽐내며 케인과 알리의 득점을 만들어냈다. 시즌 11골로 손흥민보다 득점은 적지만, 14도움이란 기록이 그가 주전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증명한다.
시즌 19골과 4도움. 손흥민 역시 훌륭한 선수임은 틀림없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 경쟁을 벌이는 토트넘이란 팀에 그보다 훌륭한 선수들이 존재할 뿐이다. 꿈같은 시간을 보내다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다. ‘윙백' 손흥민이 던져준 메시지는 참으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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