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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좌파정권이 30년짜리 대못을 박아선 곤란하다


입력 2017.05.23 01:14 수정 2017.05.24 00:23        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 (kwonhs1234@dailian.co.kr)

시장이 정부 개입 의도대로 늘 움직이는 것 아니다

정규직화 막차 올라타고 후속 차편 끊어버리는 결과

22일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열린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출범식에서 현판을 제막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5년의 밑그림을 그릴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문 대통령의 후보시절 공약을 정리하고 국정 청사진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게 되고 향후 최장 70일간 국정 목표와 국정과제를 구체화하고, 위원회 운영 종료 시점에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확정·발표할 예정이다. ⓒ데일리안

문재인 정부 색깔 가장 진하게 드러낸 정책,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권의 색깔을 드러내는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으뜸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임기 내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화답한 정일영 인천공항 사장은 “금년 내 공항 가족 1만명(올 연말 기준 9924명) 모두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공약했다. 이를 위해 공공 부문에서 상시·지속적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은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생명·안전 분야는 공공과 민간 부문을 가리지 않고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인천공항공사 발(發)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선언’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정부가 노동시장 개입…좌파정부의 본색

정부가 노동시장에 직접 개입하려 한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좌파 정부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간 보수 진영에선 정부 주도 일자리 만들기에는 한계와 부작용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며, 민간 주도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같은 차원에서 박근혜 정부에선 산업규제 완화와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추진해왔으나 야당의 반대로 관련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대표적인 법안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안,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법 개정안 등이다.

인천공항공사는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1조원(9650억원) 가까이 되지만 부채 규모가 3조 6천억원 대에 이른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 당장은 이익이 줄어드는 부담에 그칠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정규직 호봉 상승에 따른 인건비 증가로 흑자경영을 위협하는 또 다른 불안 요소가 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공공기관 정상화 로드맵에 따라 대규모 누적적자 감축계획을 세우고 세부과제를 실천해 왔던 정책도 추진 동력이 떨어지고 흐지부지될 공산이 높다.

경영성적이 적자인 공공기관은 여건이 더 불리하다. 정부 지정 332개 공공기관 중에서 지난해 흑자가 난 곳은 101곳으로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적자를 기록한 230여 개 기관은 정부 지원 없이 정규직 전환을 추진할 경우 적자 폭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정부 시책에 못이기는 척하며 정규직화를 추진하되 뒤로는 정부재정에 손 벌릴 개연성이 적잖다.

인천공항공사 정규직화 발표 이후 다른 공공기관은 말할 것 없고 민간부문에서도 정규직화 요구가 비등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사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 철폐에 시선이 꽂혀 정규직화를 추진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차별의 시작이다. 같은 직종에 근무하면서도 공공기관 비정규직은 부자 오너 덕분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데 반해 민간기업 종사자가 그렇지 못하면 그 자체가 사회적 차별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의 정규직화가 민간부문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우리나라 전체 임금 근로자 1962만명(2016년 기준) 가운데 비정규직은 644만명이고 이중 300인 미만 중소기업 소속이 611만명으로 94.8%에 이른다. 대기업 중심으로 일부 기업들이 정부 시책에 호응해 정규직화를 추진한다면 다행이지만, 경영 사정상 그렇지 못한 기업에선 노사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이 될 것이다. 정부가 이를 중재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개입한다면 세금 보따리를 들고 나설 수밖에 없어 결국 국민 세금 부담으로 귀결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청와대에서 국회 5당 원내대표와 첫 오찬 회동을 갖고 있다. ⓒ청와대

시장이 정부 개입 의도대로 늘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다고 해서 시장이 항상 정부 의도대로 호락호락 움직여주지는 않는다. 비근한 예로 참여정부 임기만료 3개월 전인 2006년 12월에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법’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동법 제4조에서 ‘사용자는 2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기간제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고,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근로자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기간제근로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동법이 2007년 7월1일부터 처음 시행될 때는 기업은 비정규직을 2년까지만 사용하고 2년 넘어갈 경우에는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시장의 현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기업은 2년 만기 직전에 근로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근로자와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법망을 피해갔다. 과도기적 현상도 아니고 지금도 관행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2년도 못 채우고 해고를 당해야 하는 근로자 입장에선 오히려 고용안정을 해치는 독소조항과 다를 바 없었다.

정규직화 막차에 올라탄 선배들이 후속 차편을 끊어버리는 결과 초래 우려

이번 정규직화 조치도 경우에 따라선 고용시장을 오히려 악화시키는 악재로 귀결될 수도 있다. 위정자 입장에선 정규직화를 하더라도 고용 규모에는 변함없이 양질의 일자리가 계속 시장에 공급되길 바라겠지만 결코 장담할 수는 없다. 노동생산성은 그대로인데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 인건비 부담만 늘어나게 된다. 경영자 입장에선 자연히 신규 채용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뒤늦게 노동시장에 뛰어드는 후배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게 된다. 선배들이 정규직화 막차에 올라타면서 부지불식간에 후속 차편을 끊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거부한 강성 노조 때문에 국내기업들이 사업체를 동남아 등지로 옮겼고 그 바람에 국내 고용시장은 얼어붙어 청년세대의 일자리 부족으로 이어진 작금의 현실에서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분향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자리보존에 급급한 기관장들, 정부 시책에 쌍수를 들고 맞장구 쳐야할 처지

공공기관 기관장들은 정권이 바뀌면 자리가 위태롭다. 임기는 대부분 3년으로 정해져 있지만 역대 정부에서 보듯, 이를 보장하고 말고는 사실상 정권 의지에 달려 있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으면 무슨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필요하면 임기 도중에 쫓아내곤 했다. 자리보존에 급급한 기관장 입장에선 새 정부 시책에 쌍수를 들고 맞장구를 쳐야할 처지다. 하지만 그들은 임기를 마저 채우고 퇴직금 두둑히 받아 물러나면 그만이지만 뒷수습은 국민들 몫이다. 공공기관이 인건비 부담 증가를 핑계로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바란다거나, 흑자를 유지하기 위해서 서비스 요금인상이라도 추진한다면 이래저래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는 길이다.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저성과자 해고 요건 완화 등 경영자 측 요구에도 관심 가져야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소득주도성장론’의 일환이다. 노동소득을 증가시켜 개인소비를 끌어올리고 기업투자를 활성화시켜 경제를 선순환시키겠다는 의도다. 정책의 성패 여부는 두고 볼일이지만, 근로자의 소득증대가 1차 목표라면 정규직의 노동유연성 제고와 경쟁 활성화도 병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현안인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과 더불어 저성과자 해고 요건 완화 등 경영자 측 요구에도 정책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규직의 기득권 양보 없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만 이뤄진다면 경영 부담이 높아지고 일부는 국민 부담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는 단임 5년이다. 그 기간 동안에 세대에 걸쳐 국민부담으로 작용할 대못을 박아놓아선 곤란하다. 선심성 경제정책 남발로 국가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었던 남미의 포퓰리즘과 방만한 재정운용에서 비롯된 막대한 국가채무가 원인이었던 남유럽의 재정위기를 반면교사로 삼아야할 것이다.


권혁식 기자 (kwonhs123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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