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미운 여우의 여유 “한국전 사력 다할 것”
조 1위 이란 케이로스 감독, 기자회견서 무실점 자랑
확정한 상태에서 편하게 치르는 승자의 여유 부러워
“한국전에서 사력을 다해 뛸 것이다. 무실점 행진도 이어가겠다.”
이란 축구대표팀 케이로스(64) 감독이 한국전을 앞두고 밝힌 각오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국가대표팀 감독의 지극히 당연한 선언도 '여우' 같은 케이로스가 지르면 얄밉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을 보좌하기도 했던 케이로스 감독은 이란 축구 최장수 A대표팀 사령탑이다. 2회 연속 이란을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올려놓았다. 그만큼 자신감이 넘친다.
'난 놈' 신태용 감독도 잔뜩 경계하는 여우 중 여우인 케이로스를 넘어야 하는 것이 한국 축구의 운명이다.
한국 축구대표팀(FIFA랭킹 49위)은 31일 오후 9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이란 대표팀(FIFA랭킹 24위)을 상대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지역 A조 최종 예선 9차전을 치른다. 9월 6일 0시에는 우즈베키스탄과 최종예선 최종전에 나선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여부가 달려있는 마지막 2연전이다.
한국은 4승1무3패(승점13)점으로 A조 2위지만 3위 우즈벡(승점12)과는 1점 차이다. 한국이 31일 이란을 꺾은 뒤 우즈베키스탄이 중국 원정에서 패한다면, 남은 우즈벡전 결과와 상관없이 러시아월드컵 티켓을 거머쥔다. 하지만 확률이 크지 않다.
경우의 수를 따지고 벼랑 끝에 몰린 심정인 한국축구와 달리 조 1위 이란(승점20)은 이미 러시아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했다.
한국을 상대로도 홈에서 1-0 승리하는 등 한국과의 최근 4경기에서 실점 없이 모두 이겼다. 지난 6월 우즈벡을 2-0 완파하면서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6승 2무로 A조 6팀들 중 유일하게 무패 행진을 달리며 본선행 티켓을 따냈다. 실험을 해도 되는 여건이다. 사르다르 아즈문도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다.
하지만 케이로스 감독은 30일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 강당서 열린 한국-이란전 공식 기자회견에서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이기는 경기를 해야 한다. 이번 경기에서도 사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실점-무패 행진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이란은 8경기에서 한 골도 내주지 않았다. 수비 전술을 손질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케이로스 감독과 체격 조건이 뛰어난 이란 선수들이 조화를 이뤄낸 결과다.
한국도 이란의 골문을 좀처럼 열지 못했다. 2011년 이란 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한 케이로스 감독은 그동안 4차례 한국전을 모두 이겼다. 4경기 모두 스코어는 1-0이었다.
케이로스 감독은 한국과 우즈벡 중 어떤 팀과 러시아월드컵에 나가고 싶냐는 질문에는 “답하기 곤란하다. 친구를 잃을 수 있다. 더 나은 성적을 올린 팀과 나가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바른 태도지만 그의 캐릭터를 생각하면 뒷맛이 개운치 않다.
얄밉지만 승자의 여유가 부럽다. 최종예선 10차전까지 살얼음판을 걷는 한국 축구가 놓인 현 위치를 보면 더 그렇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