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의 지리산 산책 ⑧] 생명 싹트는 악양 ‘무딤이 들판’ 모내기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8.06.05 13:00  수정 2018.06.05 09:44

“엊그제 아침에도 나오시고 오늘 또 나오셨네요.”
“그럼 여기가 내 사무실이고 공장인데요. 매일 출근해야지.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공장이 많아요.”

“부자시네요.”

“부자는 뭐, 그만큼 힘들지.” 연신 바쁘게 모를 심으며 대답도 잘하신다. 지혜로운 몸짓이다.
이양기로 모내기를 하면 더러 빈곳이 있기 마련인데 그 자리를 찾아다니며 손으로 모를 심고 있는 아주머니와 큰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내일도 또 나와요?”
“그럼 당연히 내일도 출근 해야죠.”

굽은 허리 한번 펴지도 않고, 고개 한번 돌리지 않아서 얼굴도 못보고 인사하고 헤어졌습니다. 농사는 ‘농사꾼’이어야 해낼 수 있습니다. 부지런한 농사꾼에게는 나쁜 땅이 없다는 옛말은 백번 지당합니다.


‘평사리 들판’으로 알려진 하동 악양의 무딤이 들판은 악양의 상징적인 곳입니다.


들판 한 가운데 있는 부부송(소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있어 그렇게 부릅니다)과 무딤이 들판, 그리고 왕버드나무가 아름다운 동정호는 악양을 상징하는 랜드마크입니다.


예전에는 섬진강 물이 들어와 ‘물이 드는 들판’이라 무딤이 들판으로 불렀습니다.

무딤이 들판은 어느 한순간도 머물지 않고 꿈틀거리는 땅입니다. 요즘이 농사꾼한테는 가장 바쁜 맥추, 보릿가을 시절입니다.


누렇게 익은 밀, 보리를 거두어들이면 트랙터로 논을 갈아엎고 로터리(써레질)를 칩니다. 로터리 칠 때면 근처에 있는 백로나 황로가 날아들어 지렁이나 벌레를 잡아먹기 바쁩니다.


그리고 논에 가득 물을 채우고 나서 이양기로 모내기를 합니다. 이양기로 모내기했다고 끝이 아닙니다. 우리 동네 아주머니처럼 질척거리는 논에서 쑥쑥 빠지는 힘겨운 걸음걸이로 모를 보식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이 들판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납니다. 생명력이 넘쳐나는 무딤이 들판을 걷다보면 걷는 이도 농사꾼의 마음이 됩니다. 한 뼘의 논도 갖고 있지 않지만 들판의 모든 것이 다 소중하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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