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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보수의 심장' 대구 예산소위 홀대 논란


입력 2019.11.14 02:00 수정 2019.11.14 05:18        정도원 기자

한국당, 文정권 대구예산 홀대논란 제기하며

정작 예산소위에는 대구 의원 이례적 배제해

'자기모순'에 민심 실망·격앙 심각한 수준

한국당, 文정권 대구예산 홀대논란 제기하며
정작 예산소위에는 대구 의원 이례적 배제해
'자기모순'에 민심 실망·격앙 심각한 수준


황교안 대표가 지난달 16일 대구 북구의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을 찾아 둘러보고 있다. ⓒ데일리안 송오미 기자 황교안 대표가 지난달 16일 대구 북구의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을 찾아 둘러보고 있다. ⓒ데일리안 송오미 기자

흔히 대구를 '보수의 심장'이라 부른다. 자유한국당이 아쉬운 게 있어 대구에 몰려갔을 때는 으레 이러한 명칭으로 치켜세우며 말문을 연다.

근거없는 칭호는 아니다. 18대 대선에서 투표율 80%에 득표율 80%를 달성하자는 '80-80' 슬로건을 내걸고서 내건 사람들조차 반신반의하고 있을 때, 대구시민들이 79.7% 투표율에 박근혜 후보에게 80.1%의 득표를 몰아줘 당선시켰다.

19대 대선 때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여파로 전국 시·도가 모두 엎어지고, 자유한국당 후보가 3위로까지 내려앉은 권역이 있었는데도 대구는 45.4%의 득표를 홍준표 후보에게 보냈다. 한국당의 궤멸적 패배로 끝났던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권영진 시장을 재선시켜준 곳 또한 대구다.

대구시민들의 이러한 사랑에도 현실은 냉정하다. 공천만 하면 당선되는 곳이라 생각하는지, 수중에 완전히 들어와 있는 곳이라 여기는지, 홀대 정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정서의 뿌리는 깊다. 한 전직 당대표는 대구 국회의원들을 겨냥해 '동메달'이라고 비유했다가 사과했다. 저변의 정서를 경솔히 입밖으로 꺼낸 것에 사과는 했으되, 그렇다고 그 정서가 사라진 것은 또 아닌 것 같다.

황교안 대표는 지난주 대구 엑스코를 찾아 예산 편성에서의 대구 홀대론을 꺼내들었다. 이를 받아들이는 대구 지역 정가는 코웃음을 치는 분위기다. 한국당이 국회 예결위 예산소위 구성 과정에서 대구 지역구 의원들을 전면 배제했기 때문이다. 대구 지역구 의원들이 예산소위에 한 명도 들어가지 못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가뜩이나 지역에서는 민주당이 '대구가 한 정당만 계속해서 뽑아주다보니 경제적으로 쇠락했다'고 흔들어대고 있는데, 한국당의 예산소위 홀대 소식을 접하는 지역 민심의 실망과 격앙은 이만저만이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황 대표가 본격적으로 장외집회에 시동을 걸던 지난 5월, 한국당은 서울역·대전역·동대구역·부산 서면을 하루에 도는 강행군을 펼친 적이 있었다.

서울에서 당대표·원내대표 '투톱'이 내려온다기에 동대구역 광장에 당원 수만 명을 모아놓고 열기를 고조시키고 있던 대구 지역 의원들은 사전 연설에서 행정안전부장관을 지낸 김부겸 민주당 의원을 격렬히 규탄했다. 대구에서 당선돼 장관을 하면서도 지역 출신들이 고위직 승진과 핵심부서 인사에 전부 배제되고 핍박받을 때 한 게 없다는 이유였다.

친노·친문도 호남 홀대하다 '뜨거운 맛' 봐
'민주화의 성지''보수의 심장' 말의 성찬뿐
民水 끓어넘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5월 2일 동대구역 광장에 수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대구 지역구 의원들과 함께 서서 문재인정권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정도원 기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5월 2일 동대구역 광장에 수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대구 지역구 의원들과 함께 서서 문재인정권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정도원 기자

그런데 정작 한국당이 예결위의 '노른자위'인 예산소위에서 대구 지역구 의원들을 배제했다. 지도부가 지역 의원들이 지역민들 앞에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게 만든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면서도 대구를 '보수의 심장'으로 추어올리며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당원을 동원해내라고 하는 것은 여간 후안무치한 일이 아니다.

민주당이 천년만년 야당할 것처럼 어지럽던 시절, 친노·친문의 호남홀대 정서가 이와 같았다. 호남에서 당선된 의원을 '동메달'로 여기며 당대표도 불가하다하고 온갖 핵심 당직에서 소외시키니, 호남의 서운함과 분노가 점점 차올랐다.

임계점에 다다른 줄을 모르고 친노·친문의 오만이 이어지니 그 정점이 2015년 2·8 전당대회에서 '호남에서 당대표 좀 내보자'던 박지원 의원을 친노 세력이 '룰'까지 바꿔가며 떨어뜨렸던 사태였다.

그 결과, 이듬해 호남이 엎어졌다. '민주화의 성지'라는 친노·친문들의 허울좋은 '말의 성찬'을 받던 광주는 8석 모두에서 민주당 후보를 떨어뜨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광주 충장로우체국 앞에 서서 "호남이 지지를 거둔다면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고 대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배수진을 쳤는데도 소용 없었다.

'죽어보고서야 저승 맛을 알게 된' 친노·친문은 그제서야 호남홀대 정서를 거둬들였다. 문 대통령이 정권을 창출한 뒤, 초대 국무총리와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을 다 호남출신 인사로 기용한 것은 이유 없는 일이 아니었다.

한국당도 강재섭 전 대표 이후 10년 넘게 대구 출신 당대표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번 예산소위 사태에서 보듯 대구홀대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행히도 아직 대구의 민심이 임계점에 다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한 중진의원은 "대구 민심이 문재인정권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 보수 분열과 신당 태동의 여지는 전혀 없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조차도 보수분열의 길을 걸으려 한다면 대구시민들에게 심판당할 것이라 보일 정도"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진단이 '계속 홀대를 해도 된다'는 '그린 라이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흔히 민심을 물에 비유해 민수(民水)라 한다. 민심은 조용히 끓다가 임계점에 도달하는 순간 확 넘어버린다.

황교안 대표는 13일 예산소위에서의 대구 홀대와 관련해 "인지하고 있다"며 "다시 챙겨보겠다"고 했다고 한다. 격앙된 민심을 고려해 사려깊은 접근이 요구된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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